78. 민주노동당, 국가보안법 폐지 ‘올인’
: ‘열린우리당 2중대론’ 본격 대두
2004년 17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인 152석을 석권한 열린우리당 당의장 정동영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골자로 사립학교법, 신문법, 과거사법 등 4대 개혁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그해 8월 27일 국가보안법의 전면 폐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틀 후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제7조의 고무 찬양, 이적표현물 소지 및 반포 등과 같은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조항조차 합헌이라고 판시하면서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보안법의 존폐는 2004년 하반기 정치권의 주요 전장이 되었다.
2004년 겨울 국회의사당 앞은 56년간의 국가보안법 체제를 반드시 끝장내자는 열기로 달아올랐다. 대규모 농성단이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4대 개혁 입법 중 국가보안법 폐지의 건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무리로 삭발을 하면서 응원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원내 과반수에 민주노동당이 10석을 갖고 있으므로 열린우리당이 당론만 통일시킨다면 얼마든지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시대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관해야 한다”고 천명하며 열린우리당 내 폐지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내부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정동영 당의장이 통일부장관으로 입각한 이후 당의장을 맡은 이부영 의장을 비롯한 김원기 국회의장과 임채정, 문희상, 유인태, 정세균 의원 등 중진의원들은 열린우리당 내 50, 60명의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해 한나라당과의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국가보안법 수호’에 명운을 걸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회 표결로 가더라도 열린우리당의 이탈표를 단속하지 못하면 국가보안법 폐지가 통과될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웠다. 이 의장은 국가보안법의 전면 폐지가 쉽지 않다고 보고 국회 안에서 농성을 하던 유시민, 임종인, 이광철, 정청래 등 10여명의 강경폐지론자들을 설득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독소조항 일부 개정’으로 방향을 전환하려고 했다. 한나라당의 양해는 사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 등은 전면 폐지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의총에서 이부영 당의장을 “배신자”라고 지목하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사퇴의사를 밝히고 자리를 떴다. 이부영 의장은 이 상황을 회고하며 “열린우리당은 정국주도권을 잃었고, 남북 화해 협력의 동력도 상실하는 계기였다”고 썼다.
그 후 국가보안법은 철갑을 두르고 의연히 유지되었다. 찬양, 고무, 동조, 통신, 회합 등을 불법시하는 국가보안법 7조만 개정하더라도 국가보안법 사범의 90%는 사라질 것이라는 게 ‘민가협’의 조사 결과다. 7조 개정이 사실상 국가보안법을 사문화시킬 수 있는 길이었는데 전면폐지에 ‘올인(all in)’하는 강경 입장을 조율하지 못하면서 국가보안법 체제는 의연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결 정치가 빚은 참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양당 간 힘겨루기 양상이 되면서 차근차근 풀어야 할 오해마저 논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즉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입장에서는 이참에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져야 할 악법이지 부분적인 개정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입장인 반면, 국가보안법 수호론의 입장에서는 한 획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이런 극한의 갈등은 무익한 것이었다. 정치의 공간을 운동이 장악함으로써 아무런 생산적 타협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모의 상태에서는, 상대를 절멸시키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간의 대치국면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당론인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열린우리당이 전면폐지론자들과의 연대와 엄동의 추위 속에서 농성하는 300인의 농성 대열에 사무총장을 비롯한 최고위원들이 삭발농성으로 참가해 시민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을 실질적으로 사문화시키는 절충안을 고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를 둘러싼 ‘정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민들도 피로감을 드러냈다.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정쟁만 일삼는다는 비판이 점점 고조되어갔다. 김윤철 민주노동당 상임정책위원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당구도로 진행되는 현 국가보안법 논쟁에서, 민주노동당을 배제하는 데는 양당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존재감이 전혀 드러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2중대’ 소리마저 듣는 상황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정기국회를 대비해 열심히 준비해 온 민생 관련 법안들도 빛을 못보고 있었다. 김 위원은 “국가보안법 및 과거사 관련법이 매우 중요한 건 분명하지만, 사회경제 사안에서 차별성이 없는 거대 보수정당들이 주도하는 현 국회는 정치경쟁이 주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민노당이 사회경제 이슈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가로막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일어났다. 열린우리당과의 관계에서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포지션을 가져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나 과거사 청산, 언론개혁, 사립학교법 개정 같은 자유주의적 과제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40대의 여당 지지율은 20%대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이들이 현실적 문제로 고민하는 교육, 주거, 노후, 출산, 비정규직 문제 등 절박한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정쟁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독자적 포지션은 이들이 고민하는 민생의제에 보다 더 깊이 천착해야 했던 것이다.
장상환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은 “열린우리당이 주력하고 있는 문제들에 비해서 민생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 물론 국가보안법은 물론 폐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일반 민중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서 표현의 제약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껴서 사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태라고 보아도 좋다. 여기에 지나치게 무게를 싣는 것은 옳지 않다. 이렇듯 과거에 중심을 두었던 이슈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틀을 고집하면서 이슈를 선정하고 정치행동의 방향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당의 전략적 행동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운동정당’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한 민주노동당으로서는 이런 조언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