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당직과 공직은 겸직할 수 없다?
: 민주노동당, 제도권에 등장하자마자 당을 대표하는 리더를 배제하다
민주노동당은 정당문화를 혁신하는 리더였다.
우선 진성당원제가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한나라당이나 새천년민주당 등 기성 정당들은 당비를 내지 않는 페이퍼당원 수백만 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기가 당원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심지어 여당과 야당에 동시에 가입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철저히 당비를 내는 자에 한해 당원의 자격을 부여했고, 이런 진성당원이 2004년 17대 총선을 치를 당시 5만 명에 이르렀다. 민주노동당의 이 같은 당원시스템은 정당운영의 모범으로 인정받았다. 개혁국민정당도 그 뒤를 이었고, 나중에는 열린우리당도 진성당원제를 모방하려 했었다. 진성당원제는 자연스럽게 공직후보에 대한 공천이라는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후보자는 당원들이 직접 선거를 해서 선출하며 선출된 후보에 대해 당원들이 책임을 지는 구조였던 것이다.
진성당원제 말고도 민주노동당만의 독특한 제도 중 하나는 ‘당직과 공직의 겸직을 금지’하는 제도였다. 이 제도의 취지는 당이 이른바 ‘의회주의’로 경도될 가능성을 막자는 것이었다. 당의 대중적 토대인 대중운동과 튼튼히 결합되어 비제도권의 목소리를 제도권으로 투입하는 방식으로 의회 연단을 활용해야 한다는, 변혁적 원칙이 강조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간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으며 대중투쟁과 굳건히 결합해 온 민주노동당의 ‘검증된’ 의원단조차 의회 내의 제도적 틀에 갇혀 변질될 수 있다는 의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오직 시스템과 제도만이 국회의원들을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리더십들이 대거 의회로 진출한 상황에서 이들이 당을 대표할 수 없게 만든 겸직 금지제도는 애초의 취지와 달리 오히려 당과 원내활동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권영길 대표를 비롯해 노회찬 사무총장 등 당의 국민적 대표선수들의 공백을 ‘듣도 보도 못한’ 정파의 리더들로 대체하는 부정적 후과를 낳았다. 당의 설계자들이 선의로 만든 이 제도는 원내 입성 후 권영길, 노회찬 등이 당을 대표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곧바로 당내 논란을 불러왔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5월 6일 7차 중앙위원회를 열고 당직과 공직의 겸직을 금지하는 당규를 일부 완화하자는 내용의 수정안을 검토했다. 중앙위에 앞서 실시한 당원 설문조사에서는 57.5%가 “겸직을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당 중앙위는 당규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의 숱한 기대 속에서 원내 입성하고도 당직과 공직을 분리함으로써 원내 활동의 성과를 당의 성장으로 흡수할 수 있는 계기를 스스로 박차버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당직 선거를 이른바 NL과 PD 간의 대결이라는, 국민들이 보기에 낯선 정파투쟁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작은 성과에 취해 그것을 서로 빼앗으려는 집안싸움과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국민들의 기대는 급속히 식어버렸다. 한 때 20%대를 육박하던 정당의 지지율도 곤두박질쳤고, 북새통을 이루던 기자들도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최고위원회의 다수파를 차지한 소위 ‘자주파’는 반미자주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해 부유세와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같은 민생노선으로부터 동떨어진 정치적 결정을 독점하고 소수파들을 체계적으로 배제시켜나갔다.
3년 후 당직과 공직의 겸직을 금지하는 당규는 폐기되었다. 하지만 원내 입성과 동시에 당을 국민적으로 대표해왔던 리더십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당규는 그 아름다운 취지와 달리 이미 당을 자해한 무서운 독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