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헌법의 침략전쟁 반대 조항을 삭제해야 하나?”
: 민주노동당, 이라크 파병 반대, 노무현 행정부와의 갈등
노무현 대통령 임기 첫 해인 2003년 4월 2일 이라크 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79명이 찬성했고 반대 68명, 기권 9명이었다.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점령은 나중에 명백히 밝혀졌지만 명분 없는 전쟁범죄행위였다. 9.11테러 이후 미국 부시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겠다며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다. 이라크 침공의 본질은 미국 텍사스 석유 부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석유 전쟁이었다. 텍사스 석유 부자 부시정권은 이라크가 테러를 비호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거짓 선전을 해대며 전쟁의 구실을 만들었다. 이어서 UN 안보리의 결의도 없이 직접 동맹국들을 상대로 이라크 파병을 강요해 연합군대를 조직했다. 참전을 결정한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이 ‘부시의 푸들’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것도 이 전쟁의 본질인 석유 패권에 한 발을 걸치기 위한 부정한 국익 논리였다.
부시로부터 참전을 요구받은 노무현 행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나중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에 따르면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걸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신의 저서 <운명이다>에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고민은 깊었다. 당시는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미국 일각에서는 북폭을 비롯한 제한적인 대북 공격설이 나오고 있었고 대북봉쇄 등 제재조치도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노무현 행정부는 부시정권의 파병 요구를 받아들이되 파병 규모를 비 전투병으로 최소화하고, 전후재건 사업을 지원하는 쪽으로 대응했다. 청와대와 내각의 외교-국방-안보 라인에서는 1만 명 이상 사단급 전투병을 보내 독립구역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긴 했으나 거부되었다. 노무현 행정부는 “미국의 협력은 북핵 위기 사태 해결의 열쇠다. 파병동의안을 승인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1차로 600명 이내의 건설 공병과 100명 이내의 진료단으로 구성된 자이툰 부대를 파병하겠다는 노무현 행정부의 결정은 노무현을 지지해왔던 진보,개혁적 시민들의 즉각적 반발을 불러왔다.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 관철을 위해 한국 청년을 희생시키려 한다”며 규탄했고 일각에서는 ‘노무현 퇴진’까지 거론하는 상황이었다. 국제 안보의 전문가들도 의문을 표시했다. 설령 미국 강경 보수 네오콘의 대북 압박이 상존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중동과 북한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답이 우세했다.
민주노동당은 명분 없는 석유전쟁에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내모는 참전에 단호히 반대하며“헌법의 침략전쟁 반대 조항을 삭제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자이툰 부대의 출병 환송식 날 민주노동당의 박용진 대변인은 “군악대 몇 몇의 환송만 받은 채 도망치듯 떠나는 젊은이 뒷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착잡하다”는 논평을 내고 파병 중단을 촉구했다. 이렇듯 이라크 파병은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첫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