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규제 기요틴’을 거둬라.
: 박근혜식 규제 완화는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비하는 것일 뿐
2014년 12월 29일 정의당 정책위원회(의장 조승수)는 재벌과 경제단체의 민원을 전격 수용한 114개의 ‘규제기요틴’을 거둬들이라는 정책논평을 발표했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전격적으로 제거해버리겠다는 의미에서 ‘규제 기요틴’이라 명명한 정부의 정책은 9개월 전인 2014년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규제는 암 덩어리고 쳐부숴야할 적”으로 규정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변화하는 조건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나 불필요한 규제는 당연히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재벌들이 요구하고 있는 규제 완화에는 ‘통상임금 부담 완화’나 ‘파견 및 기간제 규제 완화’와 같은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내용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노동자와 서민의 입장에서 볼 때 규제는 공동체와 공익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던 것이다.
‘규제가 암 덩어리’라는 발언 직후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규제 완화야말로 공동체의 적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노후 선박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수직증축을 눈감아 주고, 평형수를 배출해 버리고, 고박을 느슨하게 해도 신경도 쓰지 않은 규제의 무풍지대였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선박과 해운 관련 안전 규제는 지속적으로 완화되어 20건을 웃돌았다. 생명과 안전보다 자본의 이윤만을 앞세운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근혜 정부는 ‘규제기요틴’까지 설치해 114건의 규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규제를 완화해야 투자와 고용이 확대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된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고용이 확대되었다는 증거는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경제양극화만 심화되었고, 가계 부채가 크게 늘어 가계의 소비 여력만 고갈시켰으며 결국 내수 시장마저 죽이는 결과가 되었다. 세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분배정책을 통해 불평등 지수가 낮아지던 시절이었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가 가르치는 생생한 교훈이다.
박근혜식 ‘규제기요틴’에는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규제해 오던 공정거래법을 뜯어 고치겠다는 것, 민간 마리나(marina) 계류시설에 대한 점용 및 사용료의 감면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것, 경제자유구역 내 공장을 설립한 경우 면적에 관계없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지 않도록 개선한다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마디로 국민의 삶의 질이야 파괴되는 말든 기업 편의만 봐주겠다는 말이었다. 요트 정박 시설에 세금을 깎아서 경제 활성화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공정거래법을 손봐서 문어발 확장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겠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규제기요틴’ 114건 중 2015년 5월 현재 79건이 개선 완료되었고, 24건은 국회 심의 중이고, 11건은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기요틴에서 목을 베지 않은 것 중 ‘대체근로 사용을 제한’하는 규제와 ‘파견 및 기간제 규제’ 등과 같은 노동개악이 남아 있다. 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규제의 제거가 ‘노동시장개혁’이라고 선동하며 입법부가 규제개혁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장관들을 거세게 다그쳤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맞장구쳐 학교 앞에도 관광호텔을 지어야 경기가 살아난다며 땅콩 회항의 대한항공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덕성여중과 덕성여고, 그리고 풍문여고 등 3개의 학교가 인접한 경복궁 옆에 관광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뒷배를 보아주고 있다. 오직 기업의 영리활동이 우선이지 아이들의 학습권은 뒷전이라는 얘기다. 세월호 이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인식인 것이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독재”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다. 율리아나(박근혜 대통령의 세례명) 자매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