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의 난’
: 21세기의 궁중사극, 정의당이 광화문 앞에서 재현하다
2014년 11월 28일 세계일보에 문고리 3인방 등 십상시들이 청와대를 장악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내용의 청와대 내부 문건이 보도되면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청와대 비선 실세에 관한 유언비어가 떠돌기는 했으나 청와대 내부에서 이런 문건이 만들어져 외부에 유출되었으니 국민들은 “나라 꼴 좋다. 21세기에 웬 궁중사극이냐?”며 혀를 찼다.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대통령의 오른팔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김기춘 비서실장조차 꼼짝 못한 비선 실세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대통령이 다양한 정보 채널을 두고 또 공식 라인만이 아니라 비선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선 조직이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시킨다면 문제가 다르다. 심지어 비선 실세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정윤회씨의 딸을 승마 국가대표를 만들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를 위해 문체부 담당 국·과장을 콕 집어 좌천시키도록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지경이니 국정농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에서 지목하고 있는 십상시와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에 대해 한마디로 근거 없는 풍문일 뿐이며 ‘찌라시’라고 규정하고 오히려 문건유출자를 색출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그것이 대통령의 말대로 ‘찌라시’라고 한다면 청와대가 찌라시나 만들어내는 소굴이라는 걸 자인하는 셈인데 박 대통령은 청와대 체면이고 뭐고 진실 덮기에 급급했다. 구중궁궐의 비선 권력을 두고 박지만과 정윤회가 벌인 암투가 드러나는 순간에 박 대통령은 검찰에 ‘유출이 문제’라며 직접 가이드라인을 정해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에 충실한 검찰은 정윤회 등 비선 실세의 몸통은 철저히 보호하면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의 자작극으로 매듭지어버렸다. 고래 싸움에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최경락 경위가 청와대 민정비서실의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음에도 검찰은 끝끝내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수사 발표를 강행했다.
‘십상시 문건’은 세계일보에 보도되기 훨씬 전인 2014년 3월경에 이미 청와대 내에서 문제가 되었으며, 박 대통령과 각별한 정윤회를 손댈 수 없었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박지만에게 거꾸로 주의를 주고 조응천과 박관천은 옷을 벗기는 것으로 매듭짓고 덮으려 했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의 결론이다. 만약 이 문건이 전혀 사실이 아니고 모함이라면 당시 조응천과 박관천은 엄중한 처벌을 받았을 것인데 어떻게 박관천이 경정으로 복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이 문건이 11월 세계일보에 유출됨으로써 청와대 내부의 권력암투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유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문제지만 문건에서 드러난 국정농단의 실체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였음에도 검찰은 청와대가 3월에 덮었던 그대로 다시 덮고 말았다. 국민들의 눈초리는 무섭지 않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충견에 다름 아니라는 걸 검찰 스스로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정의당은 광화문 앞에서 청와대 ‘비선실세’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과 쌍방향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전달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비선 논란을 만든 것”이라며 “대통령의 태도가 정윤회 게이트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며 십상시의 난을 풍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누리당은 이 모든 요구를 간단히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