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정의당 STORY] 31. 안전을 책임진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31. 안전을 책임진 업무에 비정규직 고용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 정의당, ‘안전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상시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 금지를 주장하다.


 

 

 

 

세월호 참사의 여러 가지 원인을 따져 보는 것은 앞으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제대로 공론화 되어야 하는 중대한 문제 중 하나는 선박직 직원 15명 가운데 9명이 계약직이었다는 것, 심지어는 출항 당일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사고가 터지자 이들 중 박지영씨를 제외하고는 승무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갖고 행동한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자기 한 몸 챙기기에 급급했다.

 

정의당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2주 후 ‘돈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사회로 대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의 ‘세월호침몰사고대책위’(위원장 정진후 의원)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이 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인력에게 직업상의 책임감과 윤리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6개월에서 1년 단위의 계약직 직원들에게 숙련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팀웍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렇듯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상시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하고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인력에 대해서는 정규직 고용을 법으로 강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상시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한다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2014년 12월 ‘생명, 안전 핵심 업무에 기간제와 파견근로 사용을 제한한다’며 ‘선장, 기관장, 기관사, 조종사, 관제사 업무’를 열거했다. 그러면 안전해질까? 대규모 운송수단인 KTX는 어떤가? 기관사 1명과 열차팀장만 정규직이고 나머지 승무원은 비정규직이다. 외주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승무원의 매뉴얼에는 ‘사고 발생 시 승객들과 같이 대피하라’고 나와 있다고 한다. 안전업무는 400미터 당 1명 씩 배치돼 있는 열차팀장의 소관으로 모두 떠넘겨졌다. 철도시설 유지보수 업무 노동자들은 외주업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선로 보수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무려 96%에 달한다.

 

핵심 업무만 정규직으로 고용한다고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건 사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법 개정이 쉽지 않다. 노사정위에서 재계의 반발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폭발이나 화재 위험성이 있는 유해, 위험 작업의 도급 제한과 원,하청 공동 안전 보건 의무, 안전관리자 외부 위탁 제한 등도 재계의 반발에 밀렸다. 원래 유해, 위험 업무는 전면적인 도급 금지가 거론되었으나 경총의 반발에 밀려 실효성도 없는 ‘도급인가제도 강화’ 대책으로 왜곡되었다.

 

노동부는 안전보건관리자를 외주화하는 걸 금지하자고 했다. 조선, 철강, 건설 등 위험한 업종에 한해, 그것도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자는 것이다. 사실은 300인 이하 중소기업의 작업조건이 훨씬 열악하고 위험한 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고위험업종’에만 지극히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것으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틀어버렸다. 이쯤 되면 노동부의 제안이 마치 엄청나게 과격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경총이 막무가내로 버티던 2015년 4월 3일 인천 현대제철에서 20대의 청년 노동자가 쇳물을 쇳물분배기 주입구에 쏟는 작업을 하다가 2m 아래의 용광로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터졌다.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세상이 젊은 생명을 시뻘건 쇳물에 밀어넣은 것이다.

 

참사의 기억이 펄펄 끓는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지면 또 다른 펄펄 뛰는 생명이 용광로 쇳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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