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 투표 용지엔 심상정의 이름이 없었다.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11월 26일,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이다. 심상정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저의 사퇴가 사실상 야권의 대표주자가 된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분석하듯이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사퇴로 대선 구도가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로 굳어진 상황에서 소위 존재감이 약한 ‘군소 후보’가 정권교체라는 야권 지지자들의 열망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꽤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은 본선에까지 뛰어들어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진보적 가치라는 플러스 알파를 끌어내는 역할을 하며 진보정의당의 존재감을 드러내길 바랐다.
심상정은 사퇴 기자회견 도중 몇 차례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철탑에 매달린 현대차 비정규직, 쌍용차 해고 노동자,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부를 때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이기지 못해 목이 갈라지기도 했다. 그들이 눈에 밟혀 차마 떠나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심상정은 “대통령 후보로서 저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만 노동권 강화와 정치개혁을 향한 저와 진보정의당의 노력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정책연대를 통해 계속될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그동안 우리 정치에서 매 선거 때마다 반복돼 온 후보 단일화를 위한 중도사퇴는 이제 제가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회견을 마무리했다.
심상정 후보 사퇴 소식이 알려지자 문재인 후보도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를 위한 결단이자 헌신으로 생각하며 함께 최선을 다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이제 범야권이 하나로 뭉치게 됐다”면서 심 후보 측이 제안한 정책연합에 대해 “성의 있게 적극 검토하겠다”, “심 후보와 조만간 만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이 떠난 후에도 진보 후보는 셋이나 남았다. 본선에 진출한 7명의 대선 후보 중 3명이 이른바 진보 후보였다.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울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도끼 같은 말을 남김으로써 오히려 보수 결집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낳았다. 진보신당의 김순자 후보는 청소노동자도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으며,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무너진 현장’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포부만을 밝혔을 뿐이다. 그뿐이었다.
어찌 보면 2012년 대선에서 진보 정치세력이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지리멸렬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진보 분열의 전시장 같은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는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사퇴함으로써 국고보조금 27억 먹튀 논란을 낳았고, 마지막까지 완주한 김순자, 이소연 후보의 득표율 합은 0.2%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