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강.
40강. 정치 양극화, 무엇이 왜 문제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1) 40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애초 4부 강의의 마지막 시간에 다룰 예정이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주제를 다룬다. 그것은 흔히 ‘정치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사실 정치 양극화가 정치학적 개념인지는 조금 애매한 점이 있다. 아직까지는 언론 공론장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정치 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언론에서 말하는 정치 양극화란, 정당정치가 내용 없이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어 버린 것 혹은 여야 간 혹은 계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적대와 증오를 동반한 정치적 언어나 행태’의 문제를 가리킨다. 일단 여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그러면서 이러한 정치현상을 그간 우리가 살펴본 정당이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보기로 하자.
2) 정치 양극화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 논리는 “싸우는 정치,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싸우는 정치’와 ‘싸우지 않는 정치’로 단순화하는 것은 사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개선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정치에서 싸움과 갈등을 없앨 수는 없다. 갈등을 없앨 수는 없으나 줄일 수는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조차도 다루기에 따라서는 조정 가능한 의제로 만들 수 있다. 이게 민주주의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에 대한 민주주의자의 접근은 ‘갈등 극복론’이 아니라 ‘갈등 절약론’이 되어야 한다. 극복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해서 없애겠다고 하는 접근이 갈등 상황을 개선하기보다 심화시킬 때가 많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근대 이전의 정치철학은 갈등극복론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에서 마키아벨리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주의 갈등이론과 데이비드 흄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갈등이론이 가져다 준 기여는 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등이 가져다주는 유해함을 줄이는 한편 갈등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동시에 “갈등을 통해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접근을 열었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갈등론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3) 모든 갈등이 공적 의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에서 갈등은 전략적으로 선택된다. 정치 전략의 핵심은 갈등을 선별적으로 선택하고 선별적으로 동원하는 데 있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갈등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갈등 사안이 될 때도 많다. 갈등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정당정치를 접근한 대표적인 이론가는 [절반의 인민주권] 저자인 샤츠슈나이더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파괴적인 정치 전략은 강한 갈등을 불러들여 기존 갈등을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야당의 지도부가 여당과 조정 가능한 갈등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 상황에서 야당 내 어느 한 세력이 여야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 강한 갈등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보자. 그 결과 타협적인 지도부가 무너지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최대화하는 갈등 동원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민주 대 독재’라는 갈등을 동원해 여야를 양극화시키는 것이 제3의 목소리 내지 제3당의 성장을 봉쇄하는 효과를 낳는 것도 유사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경제적 갈등을 중심 의제로 삼고자 하는 정치 세력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정당정치가 이런 식이 되면, 여야 간 혹은 개별 정당 내부에서 공격적인 언어만 남발될 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정책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4) 복잡해 보이지만 이상의 논의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갈등과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싸움의 방법 내지 갈등을 선택하는 방법이 중요한데, 그런 방법 가운데 정치 양극화는 정치도, 사회도, 시민도 사납게 만들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들고, 합의 쟁점으로 다뤄질 문제도 많은 데 모든 정치 쟁점을 갈등 쟁점이 되게 함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키기만 하는 유해한 싸움의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5)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확실한 단점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평등한 정치적 발언권을 갖게 된 보통사람들의 ‘의견 위에 서 있는 체제’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를 날카롭게 문제 삼은 사람을 꼽으라면 플라톤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그가 본 것은, 민주주의란 언제든 잘못된 억지 의견(doxa)에 휘둘릴 위험이 있는 정치체제라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 가운데도, 민중의 의견 위에 서 있는 공화정을 진흙 위에 집을 세운 것에 비유한 사람도 있었다. 마키아벨리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주제가 익숙할 것이다. 아무튼 의견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확실한 진리에 기초를 둔 이상적 정치체제를 추구한 플라톤의 비전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참된 지식을 바탕으로 공익을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철인 왕(philosopher king)의 통치 하에서 시민들 각자가 가진 재능을 잘 발휘하게 해 갈등보다는 조화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유기체주의적 정치관은 확실히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약점에 대한 그의 지적은 핵심을 때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자라면 ‘의견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좋은 대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6)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정당이란 조직된 의견”이라고 정의한 이래로, 정당으로 조직된 사회적 의견이 두 개면 양당제, 그 이상이면 다당제라고 보게 되었다. 그 뒤 크게 두 개의 의견이 경합하는 (영국식) “웨스트민스터 민주주의 모델”이 우월한가 아니면 (대륙식) 다당제 민주주의 모델이 우월한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양당제와 다당제의 이분법이 단순하다며 민주정치의 유형을 좀 더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나눠볼 것을 요청하는 다양한 주장도 있었다. 정당론 분야에서 이 문제를 가장 잘 다룬 사람은 이탈리아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라 할 수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는 양극화(polarization)를 기준 변수로 삼아, 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단순한 기준을 넘어, 나라별 정당정치의 특징을 좀 더 풍부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정당이론을 중심으로 정치 양극화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자.
7) 사르토리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의견의 차이와 의견 간의 갈등을 ‘공존 가능한 이견’으로 다루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지 않고 갈등이 공존 불가능한 차이나 적대로 양극화되면 어느 정치 공동체도 통합성을 유지할 수 없다. 과도한 양극화로 인해 민주정치가 통합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는 나치즘으로 귀결된 독일의 바이마르 체제와, 베를루스코니의 집권으로 귀결된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가 있다.
양극화된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차이와 갈등이 공존 불가능하게 정의됨으로써 정당정치를 통해 사회적 합의와 신뢰를 제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르토리 이론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어떻게든 양극화된 다당체계를 온건한 다당체계로 전환하는 일이 중요하다. 과도한 정치 양극화 체계에서는 공적 관심을 이끄는 논쟁이 있기 어렵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유익한 공적 논쟁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란 공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혹은 과도한 파당적 경쟁만이 지배하는 정치를 가리킨다. 정치가 해당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경쟁 혹은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적나라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일관된다면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규범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통의 자산이 될 수 없을 것이다.
8) 정치적 양극화가 시민 삶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경쟁하는 정당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도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합리적 논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할 상대를 정형화하고 상호 비난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일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다수의 횡포’뿐이다. 이럴 경우 다수결 민주주의는 사회를 더 깊이 분열시킨다.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이 아니라, 목소리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비난의 소재를 찾는 일로 서로가 갖고 있는 열정의 대부분을 쏟아 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 결과는, 정책적 쟁점보다 도덕주의적 문제나 사생활에 있어서의 인간적 하자가 논란의 소재가 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모두가 강하고 센 표현과 드라마틱한 표현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만 자극하기도 한다.
정치 논쟁에 있어서 “상호성의 원칙”을 공유하는 문제에 관련해 진전이 없으면, 갈등과 분열은 해결 불가능한 상태로 깊어지게 된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대접받기를 원치 않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접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당들 사이의 조정과 타협,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서로 진영을 나눠 상호 도덕성 시비를 번갈아 반복하는 것이 정치의 일상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현실의 정치가 아무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민중의 의지가 대표되고 실천되는 가장 중요한 세계이다. 따라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가에 대한 과도한 경멸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가의 위세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다.
정치를 좋게 만들고 싶다면 상대를 모욕하는 것에 과도한 열정을 쏟기보다는 바람직한 정치 변화의 목표와 내용을 구체화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박정희 현상을 극복하고 싶다면, 친일파와 독재자의 딸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그칠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방법으로도 경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다면, “반신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끝내지 말고 신자유주의의 효과를 제어할 수 있는 대안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 차원에서 성과가 있을 때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유익함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9)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유사 정치 전쟁으로서 정치 양극화가 단순히 행태나 스타일의 문제로 이해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보수적 반작용’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서 왔다. 1930년대 뉴딜과 1950년대 민권운동,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시기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노동문제와 인종문제 그리고 사회복지 문제는 미국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이 무기력했다는 보수파들의 불만과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는 공화당 내에서 강경 보수주의를 앞세운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당 밖에서는 종교와 문화, 애국주의 등을 이슈로 내건 ‘사회적 보수주의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 닉슨과 1980년대의 로널드 레이건, 1990년대의 부시 정부로 이어지면서 극단적이 되었다. 한국의 정치 양극화 역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야당의 집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 두 정부 모두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속하는 등 정책적인 측면에서 기존 여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수파의 공격은 격렬했다. 사회적 보수주의 운동의 한국판이라고 할 만한 뉴라이트 운동과 보수 교단들의 대규모 대중동원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경멸, 이념적 비난, 비이성적 야유가 정치를 지배했고, 보수적 시민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 사이의 대결 역시 심화되었다.
10)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를 보수적 반작용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뉴딜연합이라고 불리는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잘 유지되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 진보파는 전통적인 노동운동과 대립했고 인종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었으며 남부는 공화당 지지기반으로 급변하고 있었지만, 과거의 지지기반을 재결합하거나 새로운 지지연합을 창출하기에 민주당 내부의 통합력은 너무 약했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 역시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파의 재집권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야당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동안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사회 중하층의 지지는 크게 약화되었다.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 가운데 진보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의 불만도 늘었다. 노동운동 등 민중부문과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 복잡한 문제를 다룰 조직적 능력을 키우기는커녕 당직과 공직후보 선출 방법을 두고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분열했고, 결과적으로 당의 조직 자원을 모두 탕진해버렸다. 그 때문에 선거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해 야당이 된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보여준 대응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보수파의 대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경멸과 야유는 반복되었고 공적 논쟁보다는 적대적 상호 대립이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합리적 정책 논쟁보다는 말과 태도를 문제 삼는 정치 양극화 현상은 이렇게 해서 야당 내부적으로도 심화되었다. 요컨대 야당의 실패라는 요인을 빼고 한국의 정치 양극화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야당이 정당 내부적으로 조직적 능력이나 리더십 등 여러 차원에서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훨씬 유연하고 유능하게 정당정치를 이끌 수 있었겠지만, 그럴 조건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이 문제는 중요한지라, 다른 방법으로 좀 더 살펴보자.
11) 많은 사람들이 정치 양극화를 여야 사이 혹은 여야의 지지사들 사이의 당파적 다툼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나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여당과 야당 내부에서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시민 여론에서도 정치 양극화에 대한 비판은 강하다. 따라서 단순히 여야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는 개별 정당 내부 혹은 시민사회 안에서 정치 양극화를 이끄는 “강한 선호를 가진 열정적 소수(passionate minorities)”에 의해 한국정치가 포획된 결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분명 민주주의는 1인1표의 평등한 참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참여의 열정은 시민 개개인의 차이가 크다. 따라서 의견의 크기 문제와는 별도의 차원에서 “강도(intensity)의 문제” 때문에 민주주의는 늘 고통 받는다. 합리적 선택이론의 관점에서 정당론을 펼쳤던 앤서니 다운스가 강조했듯이, 민주주의를 “다수 지배”라고 할 때 그때의 다수는 “관점(view)"에 의견을 같이 하는 다수만이 아니라 "강도(intensity)"에 대한 태도를 같이 하는 다수여야 하는데, 현실에서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늘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정치 양극화 역시 정당과 지지자 일반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가운데 선호의 강도가 강한 소수의 의견이 공적 의견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면이 크다.
흥미로운 것은 시민 여론에서 양극화된 의견을 이끄는 이 열정적 소수가 대개는 정당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치를 양극화로 이끄는 티파티 세력과 유사하게 한국의 뉴라이트 역시 정당 밖에서 동원된 현상이었다. 또한 그에 짝을 이루는 야권 진영의 반정부적 열정 역시 인터넷과 SNS 그리고 간헐적으로 광장에서 동원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 열정적 소수들은 인터넷의 익명 세계 속에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싸운다. 공정한 논의, 책임 있는 자세는 당연히 있기 어렵다. 언론도 기사마다 붙는 이들의 반응 때문에 영향을 받고, 정치인들처럼 여론의 반응에 민감한 직업 집단은 더욱 그렇다. 언론사와 정치인 모두 이들 열정적 소수파 시민들이 주도하는 SNS와 인터넷 상의 피드백 시장에 포획되어 있다. 이들 익명의 열정적 소수파들이야말로 이미 선호나 의견이 분명한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민집단인데도 그들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우스꽝스러움이 정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마도 여야 정당들이 나름의 독자적 판단을 갖고, 이들 ‘당 밖의 양극화 세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면 상황은 크게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열정을 정당 내부의 계파 경쟁이나 정당 간 경쟁에 불러들이는 세력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정치 양극화가 만들어지고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조직으로서의 정당”이 응집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현실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당이 정당답게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언제든, 정치 양극화의 효과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이나 계파들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정치 양극화는 여야 모두 서로 적대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동질적 존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가 서로 적대적인 의견으로 동질화되어 있기 때문도 아니다. 정당 내부를 보나 시민 여론을 보나 지금과 같은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강한 선호를 가진 소수의 열정적 시민 집단을 당내 권력 투쟁에 동원하고자 하는 당내 열정적 소수파가 존재하고, 이들이 정치 양극화를 통해 혜택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는, 다수가 반대하는 정치 양극화가 왜 지속되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다.
12) 또 다른 오해 중의 하나는, 정치 양극화를 여당과 야당 사이의 이념적 거리가 커지고 그 결과 진영 논리에 지배된 것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우선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당론에서 말하는 이념적 거리(ideological distance)란 정당의 이념적 위치가 서로에게는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그 위치를 지나서 움직일 수는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분석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진보적인 정당은 보수적인 정당에 이념적으로 가까일 갈 수는 있어도 그 정당보다 더 보수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고 반대로 보수적인 정당 역시 같은 제약이 있다. 안 그러면 유권자들은 기존의 투표 선택을 바꿔 과거 지지했던 정당을 응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정당체계가 갖는 특징은 이념적 거리가 매우 좁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과거 운동권 출신 엘리트들은 여야 어디로든 갈 수 있을 정도로 별 이념적 제약을 받지 않았다. 여야 내부를 봐도, 상대방 정당으로 옮겨 가도 사실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의원들은 많다. 보수적 집권당이 당의 상징 색을 붉은 색으로 정해도 상관없고, 경제민주화와 분배를 약속하고 또 철회해도 유권자로부터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체계의 이념적 거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정치 양극화의 문제는 이념적 거리가 커져서가 아니라 “무이념의 무조건적인 반대”를 불러일으키려는 욕구 때문에 만들어진다. 이념과 신념에 헌신하려는 정치가들이 많았다면 아마 진영 대립 내지 진영 논리 때문이라는 설명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무엇보다도 진영 내부에서 단결과 통합은 훨씬 강해졌을 것이고, 그게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 이념 대립”처럼 보이고 “유사 진영 갈등”처럼 보이는 현상이 커지면 역설적이게도 각 진영 내부는 더 분열되었다. 정치 양극화는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 진영 내부에서의 갈등 때문에 만들어진 측면이 더 컸다는 말이다.
정치 양극화가 이념적 차이가 커져서가 아니라 역으로 이념적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념성을 구체화하는 정책의 차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상호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언어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유사 이념전쟁 같은 외양 이면에서 여야가 만들어내는 실제 정책의 차이를 보면 그야말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둘러싸고 야당 내부에서 극단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그게 진짜 갈등이었다면 최종 타결된 특별법은 유가족과 야당 입장을 더 많이 반영했어야 했다. 최소한 기존 타결안보다 더 후퇴해버린 특별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야당 안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은 데, 중요한 것은 진짜 차이가 크고 심각해서가 아니라, “그들과는 너무 달라서 도저히 관용할 수 없다”는 외양과 알리바이를 필요로 하고 그런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내지 세력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다.
13) 아마 혹자는 그래도 야당이 점차 진보적이 되었고, 이제 한국정치도 진보-보수의 양당 체계가 된 것 아니냐고 응수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치 양극화를 그런 진보-보수 간의 이념적 갈등과 대립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면 간단한 것을 뭘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가를 따져 물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진보’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진보가 ‘좌’나 ‘왼쪽 편’의 이념을 뜻하는 정치 용어로 본격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간 민중, 변혁, 노동, 사회 등의 용어를 앞세운 정당의 실험이 하나 둘 실패하면서 보수나 우파가 아닌 나머지를 뜻하는 일종의 ‘잔여 개념’ 내지 ‘대체 개념’으로 진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유럽이든, 남미든 일반적으로 영어의 progressive나 독일어의 Fortschritt 등 진보를 뜻하는 용어가 정당의 이념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때 대개는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다. 당명에 진보라는 용어가 들어있다면 보수정당으로 간주해도 좋을 정도다. 아마도 도시중산층의 개혁 성향을 상징했던 과거 미국의 진보당(progressive party)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에 약간 가까울까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보의 이념적 의미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따라서 좌파나 사회주의와 관련된 정치 언어가 금압된 한국 정치에서 진보나 보수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이념적 정체성의 구체화에 기여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보편적인 정치 언어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현실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그 역할을 다할 때까지 소진되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본 강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보라는 개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념적 분화가 넓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뿐이다.
14)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본 강사는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이념적 폐쇄성이 내용적으로 더 심화된 것과 상관성이 더 높은 현상이라고 본다. 본 강사는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역설이랄까 비극은, 1997년 야당이 처음으로 집권했을 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제약’이 IMF 이행조건(IMF Conditionality)이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이 그 전인 1992년에 집권했더라면, 그때 역시 혼란과 갈등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한국정치의 이념적 기반이 지금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면 권위주의에 반대했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했던 민주당이 현대 보수주의의 핵심인 신자유주의와의 불편한 결합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훨씬 덜했을 것이고, 이후 한국정치의 이념적 분화 역시 어느 정도 보편적 내용을 갖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념적 정체성 내지 정책적 차이를 정의하는 문제가 복잡하고 모호해질수록, 정치 언어와 행태에서의 적대성은 이상하게도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본 강사는 이명박정부 시기 야권과 반정부 진영에서 만들어진 정치 언어를 매우 당황스럽게 여긴 기억이 있다. 분명 사태의 핵심은 야당의 실패에 있었는데, 그럴수록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 개인에게로 외부화하려는 열정이 공격적 언어를 동반하며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든 그 이후 우리의 정치 양극화는 이념적 차이나 진영 대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제 안에서 그저 세게 싸우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세력들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증오나 적대의 동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15) 스페인 출신 정치학자 후앙 린츠(Juna Linz)는 권위주의 체제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전에는 비민주주의 체제론은 오로지 전체주의 이론만 있었다. 후앙 린츠는 전체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권위주의가 매우 독특한 현상임을 밝혀냈다. 즉, 전체주의가 ① 공산주의나 나치즘처럼 매우 분명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② 시민들을 정치에 전면적으로 동원시키고, ③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정당만이 허용했던 반면, 권위주의는 ① 분명한 이데올로기가 없이 막연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는 멘털리티(mentality)에 의존하고, ②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반정치주의(anti-politicism)를 동원하고, ③ 야당을 인정하지만 집권의 범위 밖에서 늘 야당으로만 존재하게 하는 제한된 다원주의(limited pluralism)를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다.
후앙 린츠의 기준으로 지금 한국 정치가 얼마나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달라졌느냐를 말하라면, 참으로 답하기 어렵다. 분명한 이념성으로 여야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큰 차이도 없는데 막연히 적대하는 정서만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에 대한 혐오는 끊임없이 동원되고 사실상 제한된 범위 안에서 폐쇄적 경쟁만이 허용되는 지금의 정당체계를 얼마나 민주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주기적 선거나 자유로운 의사표현 등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정치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형식 안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실제 내용은 달라진 바가 크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정치 양극화는 외양으로만 뭔가 엄청난 변화를 두고 싸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시끄러운 소란과 먼지가 가라않고 보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정치, 혹은 결과적으로 변화의 가능성만 더 축소되고 마는 정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점에서 정치 양극화는 야당을 끊임없이 약화, 분열시킴으로써 집권당과 보수 우위의 구체제가 큰 도전 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돕는 ‘현상 유지(status quo) 프로젝트’라고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
16)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적 규범의 차원에서 언어와 행태의 문제에 대해선 이미 앞서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치 양극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애초부터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보수의 반작용은 아마도 상수에 가까운 문제일 것이다. 달라져야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야당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당 안팎에서 양극화 정치를 주도하는 열정적 소수에 의해 포획되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과제일 것이다. 그래야 여야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개별 정당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좀 더 넓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비판적 무당파들의 관심과 참여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만으로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본 강사의 생각이다.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말했듯이, 정치 양극화의 다른 짝은, 권위주의시기에 만들어진 낡은 정당체계의 구조가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당들로 대표되는 이념적 범위는 여전히 협애하다. 여야 거대 양당의 독과점 구조는 강화되었다. 제3당의 진입이 지극히 어려울 만큼 폐쇄성도 심화되었다. 이런 협애하고 독과점이고 폐쇄적인 의견의 구조 위에서 공적 논의나 정치 경쟁이 과연 얼마나 다원적이고 개방적이 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서부터 차근차근 변화를 조직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변화가 정치적 대표체계 안으로 자유롭게 투입되는 것을 제약하는 법·제도적 진입장벽은 많이 낮아져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도 문제이지만, 거대 정당들만 경쟁할 수 있게 하는 지금과 같은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나아가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 법과 제도는 정말로 많이 바뀌어야 한다. 주기적 선거가 허용되고 그때마다 간헐적으로 시민이 투표만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내용을 갖도록 발전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양극화를 개선하는 데도 기여하고, 나아가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지금의 정당체계를 좀 더 풍부한 이념적, 계층적 기반 위에 올려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야 정치 양극화를 통해 이득을 보는 경향이나 세력이 구조적으로 제어될 수가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강의 전체를 통해 본 강사가 끊임없이 강조하고 강조한 일이기도 하다.
비록 이런 방향의 변화가 시간이 걸리는 일일지라도, 그 방향에서 오래 갈 성취를 누적해가려는 꾸준한 노력 없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부터가 시작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과도한 정치적 조급성에도 있기 때문이다. 뭔가 특단의 방법을 찾지 말고, 하나씩 단계적으로 사태를 개선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친다.
보강.
40강. 정치 양극화, 무엇이 왜 문제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1) 40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애초 4부 강의의 마지막 시간에 다룰 예정이었으나 그렇지 못했던 주제를 다룬다. 그것은 흔히 ‘정치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사실 정치 양극화가 정치학적 개념인지는 조금 애매한 점이 있다. 아직까지는 언론 공론장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정치 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도 하다. 언론에서 말하는 정치 양극화란, 정당정치가 내용 없이 싸움을 위한 싸움이 되어 버린 것 혹은 여야 간 혹은 계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적대와 증오를 동반한 정치적 언어나 행태’의 문제를 가리킨다. 일단 여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그러면서 이러한 정치현상을 그간 우리가 살펴본 정당이론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보기로 하자.
2) 정치 양극화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 논리는 “싸우는 정치,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싸우는 정치’와 ‘싸우지 않는 정치’로 단순화하는 것은 사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개선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정치에서 싸움과 갈등을 없앨 수는 없다. 갈등을 없앨 수는 없으나 줄일 수는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조차도 다루기에 따라서는 조정 가능한 의제로 만들 수 있다. 이게 민주주의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에 대한 민주주의자의 접근은 ‘갈등 극복론’이 아니라 ‘갈등 절약론’이 되어야 한다. 극복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해서 없애겠다고 하는 접근이 갈등 상황을 개선하기보다 심화시킬 때가 많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근대 이전의 정치철학은 갈등극복론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에서 마키아벨리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주의 갈등이론과 데이비드 흄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갈등이론이 가져다 준 기여는 컸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등이 가져다주는 유해함을 줄이는 한편 갈등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동시에 “갈등을 통해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접근을 열었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갈등론을 전개했다고 할 수 있다.
3) 모든 갈등이 공적 의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에서 갈등은 전략적으로 선택된다. 정치 전략의 핵심은 갈등을 선별적으로 선택하고 선별적으로 동원하는 데 있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갈등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갈등 사안이 될 때도 많다. 갈등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정당정치를 접근한 대표적인 이론가는 [절반의 인민주권] 저자인 샤츠슈나이더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가장 파괴적인 정치 전략은 강한 갈등을 불러들여 기존 갈등을 대체해버리는 것이다. 예컨대 야당의 지도부가 여당과 조정 가능한 갈등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 상황에서 야당 내 어느 한 세력이 여야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 강한 갈등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보자. 그 결과 타협적인 지도부가 무너지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최대화하는 갈등 동원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민주 대 독재’라는 갈등을 동원해 여야를 양극화시키는 것이 제3의 목소리 내지 제3당의 성장을 봉쇄하는 효과를 낳는 것도 유사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경제적 갈등을 중심 의제로 삼고자 하는 정치 세력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정당정치가 이런 식이 되면, 여야 간 혹은 개별 정당 내부에서 공격적인 언어만 남발될 뿐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정책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4) 복잡해 보이지만 이상의 논의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갈등과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싸움의 방법 내지 갈등을 선택하는 방법이 중요한데, 그런 방법 가운데 정치 양극화는 정치도, 사회도, 시민도 사납게 만들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들고, 합의 쟁점으로 다뤄질 문제도 많은 데 모든 정치 쟁점을 갈등 쟁점이 되게 함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키기만 하는 유해한 싸움의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5)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확실한 단점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평등한 정치적 발언권을 갖게 된 보통사람들의 ‘의견 위에 서 있는 체제’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를 날카롭게 문제 삼은 사람을 꼽으라면 플라톤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그가 본 것은, 민주주의란 언제든 잘못된 억지 의견(doxa)에 휘둘릴 위험이 있는 정치체제라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 가운데도, 민중의 의견 위에 서 있는 공화정을 진흙 위에 집을 세운 것에 비유한 사람도 있었다. 마키아벨리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주제가 익숙할 것이다. 아무튼 의견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확실한 진리에 기초를 둔 이상적 정치체제를 추구한 플라톤의 비전에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참된 지식을 바탕으로 공익을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철인 왕(philosopher king)의 통치 하에서 시민들 각자가 가진 재능을 잘 발휘하게 해 갈등보다는 조화가 실현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유기체주의적 정치관은 확실히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약점에 대한 그의 지적은 핵심을 때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자라면 ‘의견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좋은 대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6)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정당이란 조직된 의견”이라고 정의한 이래로, 정당으로 조직된 사회적 의견이 두 개면 양당제, 그 이상이면 다당제라고 보게 되었다. 그 뒤 크게 두 개의 의견이 경합하는 (영국식) “웨스트민스터 민주주의 모델”이 우월한가 아니면 (대륙식) 다당제 민주주의 모델이 우월한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양당제와 다당제의 이분법이 단순하다며 민주정치의 유형을 좀 더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나눠볼 것을 요청하는 다양한 주장도 있었다. 정당론 분야에서 이 문제를 가장 잘 다룬 사람은 이탈리아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라 할 수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그는 양극화(polarization)를 기준 변수로 삼아, 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단순한 기준을 넘어, 나라별 정당정치의 특징을 좀 더 풍부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정당이론을 중심으로 정치 양극화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자.
7) 사르토리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의견의 차이와 의견 간의 갈등을 ‘공존 가능한 이견’으로 다루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지 않고 갈등이 공존 불가능한 차이나 적대로 양극화되면 어느 정치 공동체도 통합성을 유지할 수 없다. 과도한 양극화로 인해 민주정치가 통합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는 나치즘으로 귀결된 독일의 바이마르 체제와, 베를루스코니의 집권으로 귀결된 전후 이탈리아의 정치가 있다.
양극화된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차이와 갈등이 공존 불가능하게 정의됨으로써 정당정치를 통해 사회적 합의와 신뢰를 제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따라서 사르토리 이론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어떻게든 양극화된 다당체계를 온건한 다당체계로 전환하는 일이 중요하다. 과도한 정치 양극화 체계에서는 공적 관심을 이끄는 논쟁이 있기 어렵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유익한 공적 논쟁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정치적 양극화란 공적 논쟁이 사라진 정치 혹은 과도한 파당적 경쟁만이 지배하는 정치를 가리킨다. 정치가 해당 공동체가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경쟁 혹은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적나라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일관된다면 민주적 제도나 절차, 규범은 그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는 공통의 자산이 될 수 없을 것이다.
8) 정치적 양극화가 시민 삶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경쟁하는 정당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도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합리적 논쟁의 당사자가 되어야 할 상대를 정형화하고 상호 비난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일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남는 것은 목소리 큰 ‘다수의 횡포’뿐이다. 이럴 경우 다수결 민주주의는 사회를 더 깊이 분열시킨다. 건설적인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경쟁이 아니라, 목소리를 더 크게 하기 위해 상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 비난의 소재를 찾는 일로 서로가 갖고 있는 열정의 대부분을 쏟아 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 결과는, 정책적 쟁점보다 도덕주의적 문제나 사생활에 있어서의 인간적 하자가 논란의 소재가 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모두가 강하고 센 표현과 드라마틱한 표현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만 자극하기도 한다.
정치 논쟁에 있어서 “상호성의 원칙”을 공유하는 문제에 관련해 진전이 없으면, 갈등과 분열은 해결 불가능한 상태로 깊어지게 된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대접받기를 원치 않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접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당들 사이의 조정과 타협,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서로 진영을 나눠 상호 도덕성 시비를 번갈아 반복하는 것이 정치의 일상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현실의 정치가 아무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도,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민중의 의지가 대표되고 실천되는 가장 중요한 세계이다. 따라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가에 대한 과도한 경멸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가의 위세가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이다.
정치를 좋게 만들고 싶다면 상대를 모욕하는 것에 과도한 열정을 쏟기보다는 바람직한 정치 변화의 목표와 내용을 구체화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박정희 현상을 극복하고 싶다면, 친일파와 독재자의 딸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그칠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방법으로도 경제를 더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다면, “반신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끝내지 말고 신자유주의의 효과를 제어할 수 있는 대안을 구체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일을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 차원에서 성과가 있을 때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유익함이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9)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유사 정치 전쟁으로서 정치 양극화가 단순히 행태나 스타일의 문제로 이해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1960년대를 기점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보수적 반작용’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서 왔다. 1930년대 뉴딜과 1950년대 민권운동,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시기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노동문제와 인종문제 그리고 사회복지 문제는 미국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이 무기력했다는 보수파들의 불만과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는 공화당 내에서 강경 보수주의를 앞세운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당 밖에서는 종교와 문화, 애국주의 등을 이슈로 내건 ‘사회적 보수주의 운동’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 닉슨과 1980년대의 로널드 레이건, 1990년대의 부시 정부로 이어지면서 극단적이 되었다. 한국의 정치 양극화 역시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야당의 집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 두 정부 모두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지속하는 등 정책적인 측면에서 기존 여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수파의 공격은 격렬했다. 사회적 보수주의 운동의 한국판이라고 할 만한 뉴라이트 운동과 보수 교단들의 대규모 대중동원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경멸, 이념적 비난, 비이성적 야유가 정치를 지배했고, 보수적 시민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 사이의 대결 역시 심화되었다.
10)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를 보수적 반작용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뉴딜연합이라고 불리는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 잘 유지되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 진보파는 전통적인 노동운동과 대립했고 인종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었으며 남부는 공화당 지지기반으로 급변하고 있었지만, 과거의 지지기반을 재결합하거나 새로운 지지연합을 창출하기에 민주당 내부의 통합력은 너무 약했다.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 역시 이명박 정부로 대표되는 보수파의 재집권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야당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동안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민주당에 대한 사회 중하층의 지지는 크게 약화되었다.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 가운데 진보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의 불만도 늘었다. 노동운동 등 민중부문과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 복잡한 문제를 다룰 조직적 능력을 키우기는커녕 당직과 공직후보 선출 방법을 두고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분열했고, 결과적으로 당의 조직 자원을 모두 탕진해버렸다. 그 때문에 선거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해 야당이 된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보여준 대응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보수파의 대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경멸과 야유는 반복되었고 공적 논쟁보다는 적대적 상호 대립이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합리적 정책 논쟁보다는 말과 태도를 문제 삼는 정치 양극화 현상은 이렇게 해서 야당 내부적으로도 심화되었다. 요컨대 야당의 실패라는 요인을 빼고 한국의 정치 양극화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야당이 정당 내부적으로 조직적 능력이나 리더십 등 여러 차원에서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훨씬 유연하고 유능하게 정당정치를 이끌 수 있었겠지만, 그럴 조건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이 문제는 중요한지라, 다른 방법으로 좀 더 살펴보자.
11) 많은 사람들이 정치 양극화를 여야 사이 혹은 여야의 지지사들 사이의 당파적 다툼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나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여당과 야당 내부에서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시민 여론에서도 정치 양극화에 대한 비판은 강하다. 따라서 단순히 여야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는 개별 정당 내부 혹은 시민사회 안에서 정치 양극화를 이끄는 “강한 선호를 가진 열정적 소수(passionate minorities)”에 의해 한국정치가 포획된 결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분명 민주주의는 1인1표의 평등한 참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참여의 열정은 시민 개개인의 차이가 크다. 따라서 의견의 크기 문제와는 별도의 차원에서 “강도(intensity)의 문제” 때문에 민주주의는 늘 고통 받는다. 합리적 선택이론의 관점에서 정당론을 펼쳤던 앤서니 다운스가 강조했듯이, 민주주의를 “다수 지배”라고 할 때 그때의 다수는 “관점(view)"에 의견을 같이 하는 다수만이 아니라 "강도(intensity)"에 대한 태도를 같이 하는 다수여야 하는데, 현실에서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늘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정치 양극화 역시 정당과 지지자 일반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가운데 선호의 강도가 강한 소수의 의견이 공적 의견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면이 크다.
흥미로운 것은 시민 여론에서 양극화된 의견을 이끄는 이 열정적 소수가 대개는 정당에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치를 양극화로 이끄는 티파티 세력과 유사하게 한국의 뉴라이트 역시 정당 밖에서 동원된 현상이었다. 또한 그에 짝을 이루는 야권 진영의 반정부적 열정 역시 인터넷과 SNS 그리고 간헐적으로 광장에서 동원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들 열정적 소수들은 인터넷의 익명 세계 속에서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싸운다. 공정한 논의, 책임 있는 자세는 당연히 있기 어렵다. 언론도 기사마다 붙는 이들의 반응 때문에 영향을 받고, 정치인들처럼 여론의 반응에 민감한 직업 집단은 더욱 그렇다. 언론사와 정치인 모두 이들 열정적 소수파 시민들이 주도하는 SNS와 인터넷 상의 피드백 시장에 포획되어 있다. 이들 익명의 열정적 소수파들이야말로 이미 선호나 의견이 분명한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민집단인데도 그들의 눈치를 과도하게 보는 우스꽝스러움이 정치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마도 여야 정당들이 나름의 독자적 판단을 갖고, 이들 ‘당 밖의 양극화 세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다면 상황은 크게 개선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열정을 정당 내부의 계파 경쟁이나 정당 간 경쟁에 불러들이는 세력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정치 양극화가 만들어지고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조직으로서의 정당”이 응집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현실의 다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당이 정당답게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언제든, 정치 양극화의 효과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세력이나 계파들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정치 양극화는 여야 모두 서로 적대적인 정치를 지향하는 동질적 존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가 서로 적대적인 의견으로 동질화되어 있기 때문도 아니다. 정당 내부를 보나 시민 여론을 보나 지금과 같은 정치 양극화에 반대하는 의견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강한 선호를 가진 소수의 열정적 시민 집단을 당내 권력 투쟁에 동원하고자 하는 당내 열정적 소수파가 존재하고, 이들이 정치 양극화를 통해 혜택을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는, 다수가 반대하는 정치 양극화가 왜 지속되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다.
12) 또 다른 오해 중의 하나는, 정치 양극화를 여당과 야당 사이의 이념적 거리가 커지고 그 결과 진영 논리에 지배된 것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우선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당론에서 말하는 이념적 거리(ideological distance)란 정당의 이념적 위치가 서로에게는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그 위치를 지나서 움직일 수는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분석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진보적인 정당은 보수적인 정당에 이념적으로 가까일 갈 수는 있어도 그 정당보다 더 보수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고 반대로 보수적인 정당 역시 같은 제약이 있다. 안 그러면 유권자들은 기존의 투표 선택을 바꿔 과거 지지했던 정당을 응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정당체계가 갖는 특징은 이념적 거리가 매우 좁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과거 운동권 출신 엘리트들은 여야 어디로든 갈 수 있을 정도로 별 이념적 제약을 받지 않았다. 여야 내부를 봐도, 상대방 정당으로 옮겨 가도 사실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의원들은 많다. 보수적 집권당이 당의 상징 색을 붉은 색으로 정해도 상관없고, 경제민주화와 분배를 약속하고 또 철회해도 유권자로부터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당체계의 이념적 거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정치 양극화의 문제는 이념적 거리가 커져서가 아니라 “무이념의 무조건적인 반대”를 불러일으키려는 욕구 때문에 만들어진다. 이념과 신념에 헌신하려는 정치가들이 많았다면 아마 진영 대립 내지 진영 논리 때문이라는 설명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무엇보다도 진영 내부에서 단결과 통합은 훨씬 강해졌을 것이고, 그게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 이념 대립”처럼 보이고 “유사 진영 갈등”처럼 보이는 현상이 커지면 역설적이게도 각 진영 내부는 더 분열되었다. 정치 양극화는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 진영 내부에서의 갈등 때문에 만들어진 측면이 더 컸다는 말이다.
정치 양극화가 이념적 차이가 커져서가 아니라 역으로 이념적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념성을 구체화하는 정책의 차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상호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언어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유사 이념전쟁 같은 외양 이면에서 여야가 만들어내는 실제 정책의 차이를 보면 그야말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둘러싸고 야당 내부에서 극단적인 갈등이 있었지만, 그게 진짜 갈등이었다면 최종 타결된 특별법은 유가족과 야당 입장을 더 많이 반영했어야 했다. 최소한 기존 타결안보다 더 후퇴해버린 특별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야당 안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은 데, 중요한 것은 진짜 차이가 크고 심각해서가 아니라, “그들과는 너무 달라서 도저히 관용할 수 없다”는 외양과 알리바이를 필요로 하고 그런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 내지 세력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다.
13) 아마 혹자는 그래도 야당이 점차 진보적이 되었고, 이제 한국정치도 진보-보수의 양당 체계가 된 것 아니냐고 응수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치 양극화를 그런 진보-보수 간의 이념적 갈등과 대립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면 간단한 것을 뭘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는가를 따져 물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진보’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진보가 ‘좌’나 ‘왼쪽 편’의 이념을 뜻하는 정치 용어로 본격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간 민중, 변혁, 노동, 사회 등의 용어를 앞세운 정당의 실험이 하나 둘 실패하면서 보수나 우파가 아닌 나머지를 뜻하는 일종의 ‘잔여 개념’ 내지 ‘대체 개념’으로 진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유럽이든, 남미든 일반적으로 영어의 progressive나 독일어의 Fortschritt 등 진보를 뜻하는 용어가 정당의 이념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될 때 대개는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다. 당명에 진보라는 용어가 들어있다면 보수정당으로 간주해도 좋을 정도다. 아마도 도시중산층의 개혁 성향을 상징했던 과거 미국의 진보당(progressive party) 정도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에 약간 가까울까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보의 이념적 의미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따라서 좌파나 사회주의와 관련된 정치 언어가 금압된 한국 정치에서 진보나 보수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이념적 정체성의 구체화에 기여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보편적인 정치 언어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현실에서는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그 역할을 다할 때까지 소진되지도 않을 것이다. 단지 본 강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진보라는 개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념적 분화가 넓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뿐이다.
14)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본 강사는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이념적 폐쇄성이 내용적으로 더 심화된 것과 상관성이 더 높은 현상이라고 본다. 본 강사는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역설이랄까 비극은, 1997년 야당이 처음으로 집권했을 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제약’이 IMF 이행조건(IMF Conditionality)이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이 그 전인 1992년에 집권했더라면, 그때 역시 혼란과 갈등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한국정치의 이념적 기반이 지금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다면 권위주의에 반대했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했던 민주당이 현대 보수주의의 핵심인 신자유주의와의 불편한 결합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은 훨씬 덜했을 것이고, 이후 한국정치의 이념적 분화 역시 어느 정도 보편적 내용을 갖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런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념적 정체성 내지 정책적 차이를 정의하는 문제가 복잡하고 모호해질수록, 정치 언어와 행태에서의 적대성은 이상하게도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본 강사는 이명박정부 시기 야권과 반정부 진영에서 만들어진 정치 언어를 매우 당황스럽게 여긴 기억이 있다. 분명 사태의 핵심은 야당의 실패에 있었는데, 그럴수록 사태의 원인을 대통령 개인에게로 외부화하려는 열정이 공격적 언어를 동반하며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든 그 이후 우리의 정치 양극화는 이념적 차이나 진영 대립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제 안에서 그저 세게 싸우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세력들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증오나 적대의 동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15) 스페인 출신 정치학자 후앙 린츠(Juna Linz)는 권위주의 체제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전에는 비민주주의 체제론은 오로지 전체주의 이론만 있었다. 후앙 린츠는 전체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권위주의가 매우 독특한 현상임을 밝혀냈다. 즉, 전체주의가 ① 공산주의나 나치즘처럼 매우 분명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② 시민들을 정치에 전면적으로 동원시키고, ③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정당만이 허용했던 반면, 권위주의는 ① 분명한 이데올로기가 없이 막연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는 멘털리티(mentality)에 의존하고, ②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반정치주의(anti-politicism)를 동원하고, ③ 야당을 인정하지만 집권의 범위 밖에서 늘 야당으로만 존재하게 하는 제한된 다원주의(limited pluralism)를 특징으로 한다는 것이다.
후앙 린츠의 기준으로 지금 한국 정치가 얼마나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달라졌느냐를 말하라면, 참으로 답하기 어렵다. 분명한 이념성으로 여야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큰 차이도 없는데 막연히 적대하는 정서만을 불러일으키고 정치에 대한 혐오는 끊임없이 동원되고 사실상 제한된 범위 안에서 폐쇄적 경쟁만이 허용되는 지금의 정당체계를 얼마나 민주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주기적 선거나 자유로운 의사표현 등의 기준으로 보면 한국정치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형식 안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실제 내용은 달라진 바가 크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정치 양극화는 외양으로만 뭔가 엄청난 변화를 두고 싸우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시끄러운 소란과 먼지가 가라않고 보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정치, 혹은 결과적으로 변화의 가능성만 더 축소되고 마는 정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런 점에서 정치 양극화는 야당을 끊임없이 약화, 분열시킴으로써 집권당과 보수 우위의 구체제가 큰 도전 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돕는 ‘현상 유지(status quo) 프로젝트’라고 규정해야 할지 모른다.
16) 그렇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민주적 규범의 차원에서 언어와 행태의 문제에 대해선 이미 앞서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치 양극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애초부터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야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보수의 반작용은 아마도 상수에 가까운 문제일 것이다. 달라져야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야당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당 안팎에서 양극화 정치를 주도하는 열정적 소수에 의해 포획되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과제일 것이다. 그래야 여야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개별 정당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좀 더 넓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비판적 무당파들의 관심과 참여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만으로 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본 강사의 생각이다. 앞서 다양한 방식으로 말했듯이, 정치 양극화의 다른 짝은, 권위주의시기에 만들어진 낡은 정당체계의 구조가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정당들로 대표되는 이념적 범위는 여전히 협애하다. 여야 거대 양당의 독과점 구조는 강화되었다. 제3당의 진입이 지극히 어려울 만큼 폐쇄성도 심화되었다. 이런 협애하고 독과점이고 폐쇄적인 의견의 구조 위에서 공적 논의나 정치 경쟁이 과연 얼마나 다원적이고 개방적이 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과제에서부터 차근차근 변화를 조직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변화가 정치적 대표체계 안으로 자유롭게 투입되는 것을 제약하는 법·제도적 진입장벽은 많이 낮아져야 할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도 문제이지만, 거대 정당들만 경쟁할 수 있게 하는 지금과 같은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나아가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 법과 제도는 정말로 많이 바뀌어야 한다. 주기적 선거가 허용되고 그때마다 간헐적으로 시민이 투표만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민주주의가 사회적 내용을 갖도록 발전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양극화를 개선하는 데도 기여하고, 나아가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은, 지금의 정당체계를 좀 더 풍부한 이념적, 계층적 기반 위에 올려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야 정치 양극화를 통해 이득을 보는 경향이나 세력이 구조적으로 제어될 수가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강의 전체를 통해 본 강사가 끊임없이 강조하고 강조한 일이기도 하다.
비록 이런 방향의 변화가 시간이 걸리는 일일지라도, 그 방향에서 오래 갈 성취를 누적해가려는 꾸준한 노력 없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부터가 시작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과도한 정치적 조급성에도 있기 때문이다. 뭔가 특단의 방법을 찾지 말고, 하나씩 단계적으로 사태를 개선해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