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어떻게 하면 정당 정치를 좋게 만들 수 있을까
34강. 개헌론 비판
1) 34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세간을 풍미하고 있는 개헌론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생각이다. 그 가운데 개헌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적 합의는 강하고, 따라서 이 기회를 활용해 내각제 개헌을 하고 다당제와 합의제 민주주의를 만들자는 주장을 주로 살펴볼까 한다. 입헌적 제도디자인을 통해 정당 정치를 바꾸자는 것인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선 개헌과 관련된 여론조사는 지금의 정치에 대한 불만적 평가를 반영하는 측면이 강해서, 그 자체로 개헌에 찬성하는 시민의 크기로 환원해서 볼 수 없다. 또한 여론조사는 참고할만한 “소극적 지식 내지 정보”일 뿐 그것으로 정치체제나 정부형태 문제를 결정하려 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여론조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치는 절제되어야 한다. 매사 그런 식이라면 민주주의도 정치도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개헌론은 대체 뭘까?
2)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개헌론은 늘 제기되는 이슈였지만, 개헌이 “의제(agenda)”였던 적은 없었다. “개헌론의 정치”는 있었어도 “개헌의 정치”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개헌이 유사 의제 혹은 개헌 정치에 가까이 갔던 사례가 있었다면 “90년 3당 합당과 내각제 개헌 밀실 합의” 정도다. 당시 3당 합당을 통해 의회 내 개헌 선을 상회하는 70% 이상의 의석과 득표율을 가진 거대 정당이 출현했지만, 역시 개헌 정치는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개헌론의 정치만 있을 뿐 개헌의 정치는 없다. 각 당의 개헌 안 내지 분명한 당론도 없는 상황에서 개헌 이슈만 있는 상황이다. 앞서 말했듯, 개헌을 진짜 의제로 삼겠다면 각 당은 당론 결정 과정을 거쳐 선거 공약으로 시민의 위임을 받고자 하거나 개헌안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개헌론의 정치는 무책임하다. 헌법이라고 하는 정치경쟁의 규칙과 규범을 가볍게 대하고 무책임하게 다루는 것만큼 유해한 정치는 없다고 본다.
3) 누가 개헌론을 말하나. 정치의 영역 안에서는 두 유형이 있었다. 첫째는 현재의 정치 경쟁 규칙 하에서는 대통령후보를 내기 어려운 세력들, 혹은 다른 방법으로는 이슈 점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약한 세력들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이재오 의원이 그 중심이고 민주당의 경우는 속칭 비노로 분류되는 의원들의 일부가 제기하기 시작한 이슈였다. 둘째는 현직 대통령 내지 집권세력이 개헌론 제기하는 경우이다. 민주화 이전 야권 분열을 위해 집권당이 제기한 이원집정제론, 퇴임 후 안정된 조건을 갖기 위해 제기된 노태우의 내각제 개헌론, 여야 모두로부터 고립된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분권형 대통령제론과 중임제 개헌론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대부분 정세 전환용 내지 변형된 정계 개편론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정치를 잘해서 상황을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판을 흔들어서 기회를 갖고자 하는 정치를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연구와 논의를 하자는 것도 문제인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겠지만, 모든 인간 행위는 희소성/기회비용에 의해 제약된다. 다른 일에 정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희생된다는 것인데, 더 문제는 정치를 학술 세미나처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치는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을 위한 행위이지, 대학원생들이 발제문 만들 듯 할 수는 없다. 정치학 안에서도 제도의 문제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제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자각하게 되는 분야이다. 정치는 제도적 이성보다 실천적 이성이 훨씬 더 넓고 깊게 적용되는 인간 활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술적 논의와 판단만으로 개헌을 말하고 이를 국민운동을 동원해 정치의 영역을 계도하려는 것은 무모하고도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5) 헌법 및 정치 제도에 관한 기본 논리나 법 형식적 측면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은 정치가로서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치하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과거 권위주의도 헌법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고, 오늘날과 같은 답답한 정치도 헌법 때문이 아니다. “헌법 1조에도 불구하고” 과거 권위주의 통치가 이루어졌고, 영토 조항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하고 교류하고 6자회담 했다. 헌법에 있는 수많은 의회의 행정부 및 대통령 견제 조항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일방적 통치가 허용되는 문제가 더 중요하지, 모든 것을 헌법의 탓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고 공정한 논리로도 보이지 않는다. 헌법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역할을 통해 상황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정치가이지, 그 반대는 “법률가가 정치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6) 많은 사람들이 현행 헌법을 제왕적 대통령제로 등식화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헌법 자체만 놓고 보면 의회가 행정부와 대통령을 견제할 수단이 아주 많은 것도 우리 헌법의 특징이다. 집권당과 대통령이 결심만 한다면 현행 헌법으로도 내각제에 가깝게 국정을 운영할 수도 있을 만큼 정부 형태와 관련해 우리 헌법은 탄력적인 내용이 많다.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정당이 약한 반면 국가가 강하고 권력 자원이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화되어 있고 경제력을 통제할 수 있는 재벌이 강하고 검찰과 같은 권력 기구가 강하고 주류 언론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는 서구 1세대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국가형성-산업화를 거치고 계급구조 및 직업 관료제, 기업제도, 노사관계, 언론시장 등의 구조가 모두 자리 잡은 다음에 민주화되었는데, 그로부터 발생하는 구조적 제약은 강하다. 게다가 한국의 민주화 이행 역시 권위주의시기에 형성된 협애한 정당 대안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 뒤 야당의 경우 정치 개혁 내지 정당 개혁이란 이름으로 그나마 있던 조직적 기반마저 스스로 해체시켜 버렸다. 엄밀히 말해 대통령이 강하다면 그것은 정당들 스스로에 의한 “자해적 정치 개혁”의 결과 의회가 가질 수 있는 행정부 견제력이 심각하게 약화된 것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한국의 대통령제가 엄밀히 제왕적인 것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는 강하고 제도화된 영향력을 갖지만 선출직 대통령과 정권은 늘 레임덕의 두려움 앞에 노심초사하며 서 있는 것이 한국정치다. 임기 말에는 집권당에 의해 대통령이 버림받거나 소외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한국정치다. 규범화되고 제도화된 실체로서 “국가”는 강하지만, 국가의 일시적 관리자로서 개별 “정권”과 “대통령”은 무능하고 약한 것이 한국정치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7) 제도 중심의 접근이 갖는 문제도 생각할 점이 있다. 인간의 제도 가운데 완벽한 것은 없다. 여러 민주주의 제도들도 장단점을 서로 나눠 갖는다. 뚜렷한 제도우월성이란 것은, 말하는 사람의 관점이나 논리로만 가능하지 현실 경험에 기초해 그 인과성 내지 순수 효과를 누구도 안정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다. 내각제(의회중심제)에서 수상의 권력이 대통령보다 반드시 낮은 것은 아니며 반대로 정당이 약할 경우 내각제에서 체제 붕괴나 정치 위기의 사례도 많다. 같은 내각제 사례 안에서 변이는 내각제와 대통령제 사이의 유형적 차이보다 더 크고 넓다. 또한 어떤 제도든 그것이 기대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기초가 되는 헌법 외적 조건과 환경을 가져야 한다. 제도가 인간 행위를 가능하게 하기도 하고 제약하기도 하는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좋은 제도를 찾고 권하는 것이 학자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제도로 인간 행위를 이끌려는 정치는 사양하고 싶다. 제도는 인간 행위를 도와주기 위한 “인위적 산물(artifact)”로 이해되어야 하고, 인간 행위의 성과에 기초를 두고 그것의 유효한 효과를 상황과 조건에 맞게 지혜롭게 선택하고 개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접근해야지, 제도 그 자체가 대안일 수는 없다. 제도에 종속된 정치 실천은 좋지 않다. 우리처럼 제도를 많이 바꾸고 입법 많은 사례도 흔치 않지만 그간 그러한 제도 변화가 정치를 좋게 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잦은 제도 변화는 그에 따른 예산과 인력, 즉 관료제만 확대시켰다고 할 수 있다. 제도 중심의 정치가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정치 축소와 관료제 강화”의 측면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8) 물론 현행 헌법은 완벽한 것도 아니고 개선해 갈 사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헌법은 기본적으로 80년대 민주화운동과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87년 체제 극복론”이라는 이름으로 개헌론을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헌법이 문제가 있다고 개선하는 방법이 꼭 개헌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 변화의 요청에 맞게 헌법을 해석하고 이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조항은 적용을 하지 않는 등, “정치의 전통적 방법”이 더 중요하다. 많은 미국의 정치학자들이 미국 헌법의 비민주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지만, 그렇다고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헌법에 문제가 있다고 보더라도 개헌에는 반대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입헌주의/헌정주의(constitutionalism) 사이의 긴장에 관련된 문제이며, 정치적 민주주의 대 법치적 민주주의의 논란이 발생되는 지점이다. 민주주의의 역할을 줄이고 그 대신 헌법과 법의 역할을 키워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는 없다. 입헌/헌정주의와 법치주의도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것들의 권능은 확대하고 민주정치의 역할은 줄이는 접근이라면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9) 개헌이 가능하기는 할까? 본 강사는 통일처럼 큰 변화의 계기 없이는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권력 구조를 바꾸는 문제는 “사실상의 만장일치적 의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개헌을 하게 되면 왜 정부 형태에 대한 갈등뿐이겠는가? 다당제를 위한 내각제 개헌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는 대통령 임기만 늘려주는 중임제 개헌이 더 다수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재벌들이 폐지하고 싶어 하는 경제 민주화 조항이 더 큰 쟁점이 될 수도 있고, 그밖에도 영토조항, 연방제와 상원제, 지방 분권 문제 등 감당하기 쉽지 않은 갈등 사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내각제-다당제-합의제 민주주의 등 원하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개헌론은 가끔 딱해 보일 때가 있다.
10) 기본적으로 개헌론을 둘러싼 갈등은, 조기 레임덕을 바라지 않는 친박과 다음번 대선 후보를 만들 기회가 있다고 믿는 친노와 안철수 세력, 그리고 이들과는 다른 비박, 친이, 비노 등등, 일종의 인사이더들이 중심이 되는 전략 게임일 뿐이다. 이런 갈등 구도가 한국 정치를 좋게 만들까? 이게 아니라 개헌 추진 국민운동을 한다고 해보자. 개헌론으로 사회 여론을 이끈다? 글쎄, 어떤 개헌안이 여론전에서 승리하게 될까? 그 이전에 운동의 방법으로 개헌을 하고 정치체제를 바꾸는 일을 추진하는 것이 반정치주의를 부추길 여지만 키울 뿐 어떤 유익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당제를 정말로 원한다면 새로 당을 만들 일이지 개헌에 의지해 다당제로 분열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정치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11) 정치를 잘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하고, 지금 제도나 헌법적 틀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할 일을 안 하고 제도 탓하고 헌법 탓하는 것으로 좋아질 일은 별로 없다. 무망한 기대나 공허한 논쟁으로 시민의 정치에너지를 소모시키기보다는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참여를 제약하는 정치관계법 개선에 관심을 더 가지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우리의 정당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강하게 조직되어 행정부를 좀 더 실질적으로 견제하고, 미래의 대안정부로서 실력을 키워가고, 그래서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능에 대응해 정치체제 전체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입법부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상으로 오늘 강의를 마친다. 다음 시간에는 선거제도를 바꿔 정당정치를 바꾸자는 접근이 어떤 문제를 갖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모두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