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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정당의 민주적 기능과 역할

 

27강. 정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월 10일 오후 4시, 박상훈 학교장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의당 중앙당 회의실에서 만납시다.

읽으시다가 궁금하신 점,
박상훈 학교장님께 직접 질문하세요! 

 

1) 27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3부의 마지막 강의 시간인데, 특별히 정의당을 소재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간의 강의를 통해 강조했듯이, 개별 정당 내부의 문제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나 원리 같은 것은 없다. 정당은 자율적 결사체로서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의 조건에 맞게 개척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강사가 특정 정당을 상대로 문제를 말하고 변화를 주문한 다소 이례적인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2013년 1월로, “통합진보당 사태”로 분당해 나온 진보정의당(이하에서는 정의당으로 표현하겠다.)이 주도한 토론회에서였는데, 그때의 발표한 내용을 같이 보았으면 한다. 아마, 정당도 하나의 통치조직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2) “정당 만들기 없는 선거 정당의 한계” : 애초에 통합진보당에 참여했던 세 세력은 시간 제약 때문에 정당 만들기(party making) 단계를 거친 다음 총선에 나가지 못하고 일단 선거 연합의 단계에서 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했었다. 그 결과 정당 만들기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비용은 총선 이후 치르도록 유예되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내부의 누구도 이 유예된 갈등을 예비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 결과 총선이 끝나자마자 “비례대표 후보 절차를 둘러싼 불법성 시비”가 곧바로 시작되었고, 그 갈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당은 분열되었다. 결국 정당 만들기의 과제는 통진당과 정의당 그리고 애초에 통합에 참여하지 않은 진보신당으로 나뉘어 시도되게 되었다. 그러나 분열된 진보정당들을 합치는 경로는 없어 보인다. 진보통합론이나 제2창당론 같은 듣기만 좋은 구호에 소모적 열정을 사용하지 말고, 당 내부적으로 어떻게 하면 정치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해 성장할 것인지 하는 문제에서 스스로 승부를 봐야 할 것이다.

 

3) “강한 정당조직의 부재” :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당을 바란다. 그걸 이끌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바란다. 첫째도 둘째도 또 셋째도 고민해야 할 것은, 강력한 지도부-강력한 정당의 형성이라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정의당은 정당인가? 법률적으로는 물론 정당이다. 하지만 정당은 특정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집단이기도 하고, 리더십·당 관료·활동가·당원이 체계적으로 연계된 조직이기도 하다. 또 중대 사안마다 집단적 결정을 하고 그것에 따라 시민과 지지자, 당원에 책임을 지는 규범적 실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질문하면 문제가 선명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누가 설명의 책임을 지는가? 최소한 이 점이 명확해야 한다.

 

4) “복잡한 대의 기구의 문제” : 당내 대의기구가 최고위원회, 전국운영위, 중앙위, 대의원대회 등등으로 이루어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작은 정당에서 왜 이런 중층적 대의기구가 필요한가. 당 대표도 왜 늘 공동대표인지 더더욱 알 수 없다. 그것은 책임의 소재만 불분명하게 할 뿐이다. 이런 복잡한 대의 체제에서는 어떤 리더십도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가 없다. 누가 책임 있는 권력을 가진, 통치자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최대한 가시적이어야 하고 그래야 민주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래야 대중권력이 강해진다. 현재와 같은 조직 체계에서는 정파와 계파들이 제도 안에서 숨어 들어가기 딱 좋다. 그런데도 누구도 위험한 결정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니까 정당의 조직 자산은 쉽게 탕진되고 당 생활의 활력은 발휘될 수 없다. 정파 내지 그 유사 대리인들의 결합체 같은 최고위는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양한 계파나 정파의 이익 내지 부문 운동의 대표성을 안배할 필요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모르나, 그것에 희생되는 것은 정당 그 자체다. 어떤 조직이든 신뢰를 제도화할 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간 진보정당들의 조직 체계는 신뢰가 아니라 “신뢰하지 않음을 제도화”한 특징을 가졌다. 더는 안 된다고 본다. 현재의 중층적 대의 체계 내지 조직 체계는 훨씬 더 단순화되어야 하고 무책임을 제도화하는 집단지도체제는 조속히 단일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의 기능이 산다. 그래야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가 분명해 진다. 그래야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할지가 분명해진다.

 

5) “당원에 대한 의존성이 약한 정당” : 국회 의원실의 보좌진들로부터 특별 당비를 의무적으로 걷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아무리 재정 문제가 어렵고 당의 뜻이 그렇다 해도, 권리관계에 있어서 그들은 피고용자들이고 자신의 임금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게다가 그들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정치라는 공익적 역할을 위해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이다. 더 큰 문제는 당의 재정문제를 당원에 의존해 해결해 나갈 유인체계를 약화시킨다는 데 있다. 당장은 어렵다면 최소한 시한을 정해야 하고, 그 뒤에는 의원실의 특별 당비가 아닌 당원의 당비 납부에 의존하는 정당으로 발전하겠다는 약속은 해야 한다. 적어도 그렇게라도 해야 당원 늘리고 당원 교육 열심히 하려 하고 당원의 참여와 당비 납부에 의존하는 대중정당이 되고자 하는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대중 참여가 아닌 국가 예산에 의존해 운영되는 정당을 유사 공기업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진보정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6) “안정된 당 관료제의 부재” : 정당도 좋은 관료제를 필요로 한다. 관료제의 윤리성은 당의 결정과 규정에 철저하게 복무하게 하는 대신 명예와 직업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 위에서만 좋아질 수 있다. 직급과 경력의 체계가 안정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지도부와 함께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는 정무직과 달리 비정무직 당 관료제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중앙당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정치를 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면 안 된다. 정파나 특정 리더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당 관료제를 안정시킬 수는 없다. 관료는 관료다워야 하고 정치가는 정치가다워야 한다. 개인의 발전과 전체의 발전이 양립될 수 있는 안정된 기능 체계를 발전시키지 못하면 어떤 조직도 성장하지 못한다.

 

7) “교육과 리더십의 문제” : 교육이 없는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정당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세계관’이다.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 없이 정당이 넓게 확대되고 넓게 당원을 조직할 수 있을까. 정파보다 넓은 연대가 가능하려면 먼저 그것을 담을 ‘의미 내지 의식의 그릇’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집권세력 내지 보수에 대한 반대만으로 정당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허상이다. 정당에서 교육은 리더십의 요체이다. 교육자는 길러져야 하고, 교육안과 교육자료는 꾸준히 개량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도당이 중심이 되어 다양한 교육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8) “시도당 중심의 발전모델의 문제” : 시도당 혹은 광역을 관할하는 지방당의 강화는 진보정당의 미래이자 요체이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자치 선거 관련 공천을 이들이 주도할 수 있어야 하며, 재정 기반도 더 강해져야 한다. 인사와 재정에서 시도당이 결정권을 가져야 일이 된다. 다양한 민생 관련 조직과 교육 및 문화 사업 모델을 개발해 지역의 당협 활동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시도당이 강해져야 사업을 늘리고 활동가의 역할도 확대할 수 있다. 그래야 시도당에서 정치적 미래를 찾을 수 있는 중견활동가들을 키워갈 수 있다. 시도당이 유능한 활동가와 출마준비자, 적극적 당원들로 넘쳐나야 정당은 산다.

 

9) “예비내각과 당내 자원의 최적화 문제” : 시도당이 강화되면 중앙당의 부담도 준다. 중앙당은 의원실과 유기적인 결합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예비내각(shadow cabinet)의 길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이 개별화되어 있는 의원실의 역량이 당의 역량과 결합되어야 한다. 정책위와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의원실 역량을 통합 운영해 각각의 의원이 주요 정책 권역의 팀장을 맡는 예비내각을, 작지만 내실 있게 운용해야 한다.

 

10) “상투적인 제2창당론에서 벗어나는 문제” : 정당 만들기는 적어도 10년의 비전과 전망이 있어야 가능하지, 당장 눈앞에 일정을 어떻게 할지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당분간 정의당으로 몰려올 노동도 농민도 그 어떤 것도 없다. 말을 앞세워 현실이 된다면, 뭐가 문제겠는가. 실제 그럴 조직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고 꾸준히 쉬지 않고 내실 있게 성과를 누적해가야 한다. 일이 되게 해야지 실현될 수 없는 기대만 키워 좌절과 냉소를 반복하지 않게 해야 한다.

 

11) “정당 만들기의 초점으로서 리더십” : 좋은 진보정당을 기대하는 시민들은 적지 않고 나날이 성장만 한다면 언제까지든 기다려준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인간미 없는 좌파를 싫어하고 민주적 가치를 농단하는 비이성적 진보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민주적 좌파의 길 나아가 인간적 진보의 길에 대한 기대마저 접은 것은 아니다. 정의당이 그 역할을 하려한다면 능력을 키우고 실력을 갖춰가면서 여러 진보 정당‘들’ 가운데 주도적 정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작동가능한 지도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지도부인가? 변명하거나 남 탓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과로 말을 하는 사람이다. 술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다. 시시껄렁한 일로 시간을 소일하지 않는 사람이다.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서로 잘할 수 있는 조직적 조건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들이 알아봐 준다고 자족하는 허영이 아니라 그 기대를 넓고 깊게 물질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에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 길에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12) 이상과 같은 기준에서 볼 때, 지난 2년 간 지금의 정의당은 성장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공동 대표제와 최고위원제가 폐지되었고, 이는 정파들의 부정적 역할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당직자들 사이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고, 점차 정당의 정체성도 서서히 형성되는 느낌이다. 신입당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신강령도 새로 만들어 토론되기 시작했고, 당원 교육의 중요성이나 시도당 체제로의 발전 전망에 대한 합의도 튼튼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더 좋아져야 하고, 그런 점에게 남은 과제도 많다. 본 강사의 입장을 말하라면, 이제 2년 지났다는 말을 하고 싶다. 8년은 더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아직 시련이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회가 사라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성과는 조직이 안정되는 것에 비례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 점을 경시하고 개헌이나 선거제도 변화 내지 다른 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획기적인 기회를 얻고자 하거나 쉽게 정치적 자산을 늘리려 한다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점이다. 정당은 일차적으로 “조직적 현상”이지 “선거적 현상”이 아니다. 간헐적으로 실시되는 선거는 정당들이 조직적으로 얼마나 좋은 성과를 일상적으로 일궈왔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좋은 정당 조직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선거 전략이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 이상으로 3부 강의를 모두 마친다. 이제 4부에서는 정당정치의 변화론을 다루겠다. 모두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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