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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강. 정당정치의 역사 4 : ⑧ 좌파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당

 

 

 

 

2월 10일 오후 4시, 박상훈 학교장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의당 중앙당 회의실에서 만납시다.

읽으시다가 궁금하신 점,
박상훈 학교장님께 직접 질문하세요! 

 

2부. 정당 정치의 원리와 역사

20강. 정당정치의 역사 4 : ⑧ 좌파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당

1) 20번째 강의이자, 2부의 마지막 강의이다. 17강부터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치가 역사적으로 안착되는 과정을 강의했는데, 그 주제의 마지막 순서이기도 하다. 정당정치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① 입헌주의 ② 대의제와 선거 ③ 결사의 자유 ④ 갈등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 ⑤ 보통선거와 대중정당 ⑥ 파당적 참여와 사회 통합 ⑦ 참여에서 조직화로의 전환 과정을 이해해야 하는데, 본 강사가 생각할 때 그 마지막 과정은 좌파 내부의 고민을 통해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2) “좌파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당” : 정당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좌파의 역할은 결정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했다. 모두가 주저거릴 때 정당을 거리낌 없이 내세운 것도 좌파였고, 정당과 대중조직 사이의 연계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대부분의 창조적 아이디어도 좌파에서 만들어지고 또 실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하층의 참여를 포괄하는 현대의 대중민주주의는 좌파의 기여가 없었더라면 실현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좌파 정당의 역할이 커지고 현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면서 좌파 내부에서 고민과 갈등은 커졌다. 특히 대중정당의 성공은 역설적으로 좌파에게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자신들의 정당이 성장하고 민주주의가 점진적 개량의 가능성을 넓히면서, 이 모든 것이 혁명을 더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지켜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절대왕정이나 제정과 싸우는 과정에서 부르주아 공화파들과 연대를 한 경험은 좌파에게도 내각에 참여할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내각참여(밀레랑주의; Millerandism)를 둘러싼 논쟁과 혁명이냐 개량의 논쟁, 민족이냐 국제주의냐 등등 수많은 갈등과 논란이 뒤따랐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좌파 안에서 민주주의를 둘러싼 세 종류의 분화가 이루어졌다.

① 첫째는 사민주의의 길로, 사회주의를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추구하자는 노선이자 사실상 혁명 포기의 길이었다. 지금은 이런 노선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초기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혼란은 엄청난 것이었다. ② 둘째는 볼셰비즘의 길로, 서유럽 안에서는 대개 공산당 노선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려했을 뿐,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프롤레타리아독재로 나아가는 혁명의 길을 추구했다. ③ 셋째는 생디칼리즘(syndicalism)으로, 이는 일체의 조직과 통치를 거부하는 직접행동주의로 나타났다.

3) 생디칼리스트들처럼, 정당과 노조를 포함한 모든 조직은 “과두제의 철칙(iron law of oligarchy)”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면 제도 안에서의 민주주의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조직도 규모가 커지면 제도화는 불가피하고 제도화는 필연적으로 합리화와 관료화를 동반하는데, 이를 소수의 과두세력에 의한 지배로 본다면 그 안에서 대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생디칼리스트들이 찾은 탈출구는 대규모 자발적 운동과 이에 참여하는 “고양된 열정” 그 자체였다. 흥미롭게도 이 운동의 가장 급진적 길은 체제의 모든 제도적 논리에 대한 전면적 거부투쟁과 함께 폭력의 옹호로 이어졌고, 궁극적으로는 파시즘과 같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와 결합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궤적을 잘 보여준 사람이 (반의회주의와 반민주주의를 내걸며 폭력의 윤리성을 주창함으로써 무솔리니로부터 파시즘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렸던) 프랑스의 조르주 소렐(Georges Sorel)과 (진보정당인 사회민주당조차 과두제의 철칙을 벗어날 수 없음을 실증하는 책을 썼고, 말년에 이탈리아로 넘어가 파시즘에 경도되었던) 독일의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였다.

4) 잘 알다시피, 전 간기 파시즘의 경험과 2차대전의 대규모 희생을 거치면서 위의 세 가지 길 가운데 시민적 동의를 얻게 된 것은 첫 번째 사민주의의 길이었다. 볼셰비즘의 길이 실현된 곳은 소련과 동유럽에 한정되었다. 서유럽의 공산당들은 1970년대 들어와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벗어나 자주 노선을 걸었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을 폐기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 사민당과의 연합을 추구했고 기독교 보수파와도 타협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겠다. 당시 이런 변화를 흔히 “유로코뮤니즘”이라고 불렀다. 그들 스스로 소비에트 중심의 공산주의와 유럽의 공산주의는 다르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의 비전은,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등 다른 경쟁적 비전의 도전을 꺾고 비로소 현실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뒤 민주주의는 공고화되었고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복지국가의 제도화도 빠르게 진척되었다. 서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우리 동네의 유일한 게임”이 된 것은 이상 살펴본 과정을 거쳐서 확립되었다. 이렇게 보면 명실상부하게 정당이 중심이 된 민주정치는 2차대전 이후, “좌파는 혁명을 포기하고 우파는 착취를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실현되었다고 하겠다.

5) 그러나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의 끝이라고 보면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면서 혁명적 이상주의를 추구하려는 시도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비조직적이고 비정당적인 운동 중심주의를 통해 참여의 고양된 열정 그 자체를 추구하려는 시도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런 열정은 규모가 커졌다 줄었다는 사이클을 반복할 뿐, 어느 사회에나 늘 존재한다. 아마도 대의제 민주주의 내지 정당과 노사관계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의 길이 혼란에 처할 경우 그러한 도전은 다시 거세질 것이다. 다시말해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는 언제든 도전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의 진보는 정당과 노사관계가 중심이 되는 현대 민주주의의 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정당을 잘 운영하고 경제를 잘 관리하면서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롭게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경우 혁명과 직접 행동적 운동 노선은 진보 안에서 언제든 다시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 안에서 정당정치는 얼마나 사회를 잘 통합하는지의 문제를 둘러싸고 늘 시험받는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상으로 2부의 강의를 모두 마친다. 정당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한 이상적 최선은 아닐지언정 현실적 최선으로 자리 잡게 된 역사적 전개 과정과 그 정당화 논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모두들 고생했다. 3부 강의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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