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왜 정당인가
10강. 1부의 결론 : 민주적 정당정치를 위하여
1) 벌써 10번째 강의다. 오늘은 지금까지 했던 1부의 강의를 종합하는 시간이다. 처음 이야기한대로, 본격적인 “민주주의 정당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사회에서 정당에 대해 말하게 된 여러 “문제 상황”을 주마간산 격으로 빠르게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주요 논점을 다시 강조해 말하면 다음과 같다.
2) 정당정치를 좋게 하는 문제와 관련해 민주주의 이론 안에서 하나의 규범적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정당체계는 다원화되고, 정당조직은 강해져야 한다’는 데 있다는 말을 했다. 체계와 조직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서로 다른 원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해 말했다. 정당체계는 사회 ‘전체’의 모습을 닮아야 하고 정당조직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사회 ‘부분’의 모습을 닮아야 함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그간 우리의 정당정치 개혁은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방향으로 실천되었다. 그 결과 정당체계의 폐쇄성은 완고하게 유지된 반면, 정당조직은 계통도 질서도 없이 개방되면서 이름만 정당이지 실제는 의원들의 사적 클럽 같아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3) 정당체계란 복수의 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경쟁과 연합의 패턴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단순한 구분에서부터 일당우위제, 온건다당제, 양극화된 다당제, 제한다당제, 극단다당제 등등 더 세부적인 분류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정당들이 어느 정도의 계층적·이념적 대표의 범위를 갖고 상호작용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민주화 혹은 민주정치의 발전이란, 기존에는 협애한 범위에서만 허용되었던 대표의 범위를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개방이나 다원화는 이 차원의 중심 가치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표와 의석 사이의 비례대표성은 높아져야 하고, 기존 정당체계에서 소외된 사회적 요구들이 정당으로 표출될 수 있는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독과점적 정치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정당체계는 이념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더 개방되고 다원화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4) 정당조직의 차원이란 정당 내부에서 권력이 배분되고 작동하는 방식, 즉 조직 내 권위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제도화되어야 하는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말한다. 리더십의 자율성은 얼마나 크고 작은지, 규칙 제정 능력은 어떻게 분산되어 있는지, 재원 형성과 인적 충원의 채널은 누가 통제하는지, 집합적 유인과 선별적 유인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조정되는지 등은 정당조직에 대한 비교 연구에서 늘 초점이 되는 주제들이다.
예컨대 선출직 공직 후보가 조직에서 길러지는지 아니면 정당 밖에서 영입된 외부자로 채워지는지, 정당 운영을 당비로 하는지 아니면 국고지원에 의존하는 바가 큰지, 당원의 역할과 참여 범위는 어떤지 등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정당이 좋아진다는 것은, 이 여러 문제들이 절차적으로나 제도적으로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와 규범의 측면에서 안정화됨을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갖는 미덕은 각기 다양한 수많은 사회적 요구를 몇 개의 단순한 대안으로 집약함으로써 공적 논의와 결정을 최적화하는 데 있다. 정당조직이 약해지면 그런 집약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최근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여야 간 실력과 열의의 격차가 점점 커져 이러다 집권당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될 것 같아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권당의 경우는 의원 개개인의 부족함을 당 조직이 뒷받침해주고, 당을 통해 일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측면이 살아 있는 반면, 야당 의원들의 경우는 당을 통해 일하는 풍토를 보기 어렵고 대부분은 의정 활동을 등한시하며 재선을 위해 "개인 정치"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회 속에서 중상층을 구성하고 있는 자신의 지지 집단을 보호할 이유가 적은 보수적 정당일수록 당 조직보다는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이 크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야당들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정당조직이 약해지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스스로 내건 가치와 정체성은 빈말이 되기 쉽다. 그래서 누군가 본 강사에게 야권에 어떤 정치가가 필요하다고 보느냐를 묻는다면, 자신의 정당조직을 더 강하고 튼튼하게 결속시킬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단순화해서 답하고 싶다. 어떤 “개인”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 집권해야 할까를 따질 수 있을 때, 민주정치는 좋아진다.
5) 늘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야당이 중심이 되어 정당개혁론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 시도를 분류한다면 크게 5가지다. ① 첫째는 네트워크 정당론이다..이는 정당을 조직이나 유기체가 아닌 시스템 내지 플랫폼으로 다루는 접근으로, 일반 시민에게 참여를 개방하고 이를 통해 지도부도 결정하고 정책도 결정하고 공천도 하자는 것이라 하겠다. ② 둘째는 개헌론이다. 이는 권력구조 내지 정부형태에 대한 입헌적 기획의 효과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내각제와 온건다당제의 길을 내자는 주장과 중임제 대통령제를 통해 양당제와 동시에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눠져 있다. ③ 셋째는 선거제도 개편론이다. 여기에는 비례대표제 도입 주장과 중대선거구제 도입 주장이 제출되어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정당의 분화시키고 군소정당의 진입 장벽을 낮춰 다당제의 길을 열자는 것이다. ④ 넷째는 기존 정당 밖에서 전문가와 지식인을 중심으로 정치쇄신 국민운동을 벌여보자는 주장이다. ⑤ 다섯째는 국민운동을 한편으로 하면서 동시에 기존 정당으로부터 이탈해 나온 세력을 묶어, 제3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⑥ 여섯째는 지금 정당의 조직 틀 안에서 통합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노력하자는 “정당강화론” 내지 “정당 정상화론”이라고 할 만한 주장이다. 솔직히 이 여섯 번째 주장을 대표하는 정치가나 정당, 세력이 뚜렷하게 있는 것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본 강사의 입장에서는 이 주장이 더 강해지고 분명해지길 바란다. 그럴 때만이 의미 있는 변화가 가능하리라 보기 때문이고, 이 강의 전체는 이를 정당론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수강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 우리는 정당체계와 정당조직을 둘러싼, 지금과 같은 논쟁 지형을 염두에 두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게 될 것이다. 각각의 주장과 논쟁에 대한 분명한 답은 말할 수 없을지 모르나, 이번 강의를 통해 판단의 근거를 튼튼하게 하는 것에서 좀 더 진전된 인식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7) 정치학은 현실 정치의 문제에 대해 답을 주는 데 무능력하지만, 반면 정치 이론을 벗어난 대안을 추구할 때 직면할 재앙에 대해서는 유의미한 “경고”를 말해준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쳐온 셀던 월린(Sheldon Wolin)이 강조하듯, 정치학의 임무는 그런 경고를 통해 문제를 더 깊고 넓게 자각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치의 문제를 다루는 개념과 논리, 표현을 더 수준 있고 명료하게 다루는 것이 갖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민주정치는 말의 힘을 다루는 것이고, 우리가 다퉈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더 설득력 있게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민주정치는 기회를 준다. 정당의 발전이나 민주주의의 성숙을 말하며, 좀 더 깊이 있고 수준 있는 대화가 정치권 안팎에서 가능할 날을 기대해본다.
이상으로 1부의 강의를 마친다. 1부 강의는 정말 빠른 속도로 여러 문제를 살펴보느라, 본 강사도 숨이 차고 아마 수강자 여러분도 “아니 처음부터 뭐 이리 빡빡하지” 하며 힘들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2부에서부터는 “오늘의 한국정치”라는 상황적 압박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민주적 정당정치론의 여러 차원을 차분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모두들 정말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