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왜 정당인가
7강. “지역주의 망국론”은 왜 잘못인가 1
1) 일곱 번째 시간이다. 지난 강의에서는 정당체계가 더 폐쇄적이 되면서 양극화 정치 혹은 양극화된 양당제가 심화된 문제를 다뤘다. 그러면서 민주화이후 정당체계를 “지역주의 때문”으로 환원해 설명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해석일 뿐이라는 지적을 했고, 이에 대해 오늘 따로 살펴보겠다고 했다. 사실 “지역주의에 의해 압도되는 정치”라는, 우리사회의 지배적 해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은 채 정당론 강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강의를 듣는 여러분 가운데도 우리의 정당체계를 “망국적 지역주의를 동원한 정당과 그에 부응한 유권자의 지역주의 때문에 형성된 지역주의 정당체계”라는 주장을 당연시 했을 듯싶은데, 따라서 조금 복잡하더라도 여러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겠다. 말할 내용이 좀 많아, 두 시간에 나눠 진행하겠다.
2) 우리 정치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를 다른 나라 말로 옮길 때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용어 그 자체에 해당하는 외국어를 찾아 그대로 옮기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주의”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지역주의(regionalism)란 크게 두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이 공통의 이해관계와 상호 의존에 기초해 교류와 협력, 통합을 증진시켜 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국제정치 개념이다. 유럽연합이나 나프타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겠지만, ‘동아시아공동체’ 등에서 보듯 우리에게도 그런 지역주의 개념은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문화적 일체감을 공유하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일체감 내지 충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지역당 혹은 지역주의 정당이란 이들 지역공동체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정치조직으로서, 이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대안은 분리 독립과 자치, 분권이 일반적이다. 그 밖에도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주들에게 부여된 비토권, 스위스와 같이 정부 형성에 지역 대표가 공동 통치자로 참여하는 협의체주의(consociationalism) 등이 있다.
한국정치에서 지역을 둘러싼 갈등이 이러한 성격과 내용을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은 “지역으로 분권화된 통치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봉건제의 경험을 갖지 않았다. 적어도 고려 시대 묘청의 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자치나 분리를 지향하는 지역주의 운동이 없었다. 권위의 중앙 집중화와 지방의 강권적 통합을 동반하면서 지역 균열을 만들어 냈던 서구의 근대 민족국가 성립 과정과는 달리, 한국의 경우는 근대 이전에 이미 강한 관료 체제를 통해 민족의 실체적 요소들을 유지해 왔다.
긴 식민 지배와 냉전 체제에서 분단과 전쟁을 경험함으로써 지역을 단위로 한 정체성이 자극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가진 것도 아니다. 자율적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지역주의가 집단적 갈등 내지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사례도 없다. 지역주의 강령을 갖는 지역당이 존재한 적은 더더욱 없다. (스페인의 바스크 문제나, 최근 영국에서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겠다고 나선 사례에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나는 일이지만) 한국의 지역 균열은 중앙을 향한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동원된다는 점에서, 자치나 분리 독립을 앞세우며 국가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일반적인 원심적(centrifugal) 지역주의와 다르다. 그보다는 정권의 향배를 두고 중앙의 국가를 향해 진격하면서, 그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누가 소외되고 누가 혜택 받는가를 다투는 ‘여야 균열’의 다른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선거만 있으면 지역주의라는 말이 제대로 된 정의나 성격 규명도 없이 함부로 사용되곤 한다. 쓰는 사람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담아 어떤 이는 전라도의 투표를 보고 지역주의라고 비난하기 위해서 쓰고, 어떤 이는 영남의 투표 성향이 문제의 지역주의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충청의 지역주의도 큰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특히 심한데, 전근대적 지역 연고의식으로 투표하면 안 된다고 야단치고, 그런 식으로 투표하니까 정치인들이나 정당들이 그러지 않느냐며 고압적 태도로 말하고, 지역주의로부터 벗어나 보편적 시민의식을 가지라고 가르치려 들 때가 많다.
사실 더 웃긴 것은,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정치가든 모두가 "반지역주의자"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지역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 글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처럼 모두가 지역주의 극복을 소리 높여 외치는 우리사회에서 지역주의는 발붙일 곳이 있을 수가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도 늘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다는 것이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의 해석을 지배하는 것, 이것만큼 우스운 역설이 또 있을까? 여러분은 어떤가? 지역주의자인가? 혹시 나는 아닌데, 다른 사람은 지역주의자라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4)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지역주의를 영호남 때문으로 비난하거나 혹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라며 모든 지역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구를 배타적이고 맹목적으로 추구한다고 비난하곤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역을 말한다고 모두가 지역주의라고 비난될 수는 없다. 설령 지역 연고와 같은 전통적 가치에 친화적인 의식과 관행을 가진 사람이 좀 있다고 하자.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그 머릿속을 개조하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개발 혜택을 얻고자 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이를 있어서는 안 될 지역주의라고 할 수도 없다. 그 전에 가치에 대한 권위적 배분이 중앙집권적 정부에 의해 압도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부터 문제 삼아야 하고, 정부의 예산 분배 방법을 어떻게 합리화할지를 따져야지 뭔가 나쁜 것으로 가정되는 지역주의로 책임 돌릴 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유해하고 민주적 가치에 상응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 모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 지역주의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호남 출신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그 핵심이 있다고, 본 강사는 본다. 이는 호남 출신에 대해 거리감과 배제적 심리를 동반하면서 엘리트 충원과 경제 발전의 성과를 차별적으로 배분하고 소외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호남이 동질적 투표 행태를 통해 집단적 항의를 나타냈다고 해서 이를 같은 차원의 지역주의라고 일률화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호남의 소외 의식이 있기 이전에 호남에 대한 차별이 선행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지역주의를 무차별적으로 야유하거나 지역 간 맹목적 대립으로 치환해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호남주의라고 부를 만한 유해한 요소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호남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일종의 ‘거울 이미지’로서 과도한 피해 의식이 만들어 내는 지나침 같은 거라고 하겠다. 상대방의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그의 출신 지역 때문으로 확대 해석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지역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아 그런 호남의 지역주의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예는 거의 없기 때문에 과장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5) 한국 지역 문제의 핵심을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고 할 때, 그것을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과 편견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잘못이다. 호남에 대한 편견이 자원 분배를 인위적으로 차별적이게 만들고 지배의 한 수단으로 기능한 것은 지역민의 생활 세계가 아닌 정치체제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 기원은 1972년의 유신 체제였다.
1971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의 선거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호남 출신의 김대중과 영남 출신의 박정희가 경쟁한 지역주의 선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DJ는 “사쿠라 정당”이니 “충성스런 야당”이니 하는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며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적 근간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대중 경제를 주장했고, 향토예비군 폐지를 공약했으며, 중앙정보부를 국회 심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적대적 남북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가져온 반향은 엄청났다.
DJ가 그 이전 1967년 같은 당의 윤보선 후보보다 득표율을 가장 많이 늘린 곳은 전남, 그리고 다름 아닌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DJ는 42.6%를 득표했는데, 이는 이전 선거에서 충청도 출신 윤보선이 얻은 것보다 11%포인트가 많은 표였다. 대구에서도 이전보다 8.8%포인트 더 득표했다. DJ가 고전한 지역은 영남이 아니라 충청·경기·강원이었다. 결국 전남에서만 10만 표 이상의 무효표가 나올 정도의 부정선거에 힘입어 박정희가 96만 표 차로 승리했지만, 이로써 박 정권이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이 있다. 더 이상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서는 재집권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결과는 유신이었다.
6) 유신 체제가 정상적 통치의 방법을 넘어선 극단적 권위주의 체제였던 만큼, 전보다 더 비정상적인 수단이 필요했다. 긴급조치로 대표되는 억압과 통제는 기본이었고 반공주의는 더욱 노골화되었으며, 반대 세력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호남에 대한 편견을 동원하고자 하는 욕구도 커졌다. 박정희정권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나, 권위주의 체제가 지속되길 바랐던 상층 집단들이 이런 욕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정부의 고위직, 재벌 기업의 상층 관리직 등에서 호남 출신의 비율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호남 출신에 대한 편견과 허위의식은 의식적으로 조장되었다. 1979년 부마항쟁과 달리 1980년 광주에서의 항쟁과 비극적 사태가 지역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고, 호남에 급진주의의 이미지를 덧붙이고자 하는 담론들이 작위적으로 동원된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었다.
남들이 다 전라도 사람의 기질을 말한다고 하고, 옛날에도 그런 편견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스스로 지역주의자이거나 아니면 지역주의적 동원에 영향을 받아 허위의식을 갖게 된 것일 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 강사의 책 『만들어진 현실』에서 자세히 다뤘기에 더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권위주의의 재생산이든 기득권의 방어든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욕구를 실현하는 데 그런 편견의 이데올로기 효과를 필요로 하는 체제와 세력이 존재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이를 말하지 않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민의식개혁 운동을 수천 번하고, 지역 화합 행사를 수만 번 해도, 그건 우리 사회 지역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이데올로기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정말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7) 그렇다면 이렇게 시작된 호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단순히 권위주의 체제의 수혜자 집단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대다수 시민들에게까지 수용될 수 있었을까? 달리 말해 사실이 아닌데도 당연한 사실인 것처럼, 진보와 보수를 가로질러 폭넓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선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