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왜 정당인가
4강. 정당론의 두 축 : 정당체계와 정당조직
1) 네 번째 시간이다. 지난 시간까지는 정당론 강의를 하게 된 상황 내지 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오늘은 정당과 관련된 정치학 이론의 핵심을 빠르게 살펴볼 것이다. 물론 모든 정당론이라기보다는, 적어도 정당론의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이론만을 엄선해 집약해볼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집중해 듣고 잘 생각해보면 이해도 가능하고 또 흥미도 생길 것이다.
2) 정당론은 크게 ① 정당체계(system)론과 ② 정당조직(organization)론으로 나뉜다. 무엇보다도 체계와 조직이란 이 두 용어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3) 먼저 정당체계는 “경쟁하는 복수의 정당들 사이에 패턴화된 관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① 양당제와 다당제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정당의 수”를 기준으로 한 정당체계 정의라 할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② 온건다당제나 분극다당제처럼 정당들 간의 “이념적 거리”가 얼마나 넓은가의 기준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③ 정당들의 경쟁이 중도로 수렴적이냐 아니면 그 반대로 원심적이냐 하는 “경쟁의 방향” 기준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그밖에도 ④ 정당 간 “연합정치”를 중심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⑤ “선거제도”(단순다수제냐 비레대표제냐 혼합형이냐 등등)와 “정부형태”(대통령제냐 내각제냐 등등)와 같은 제도 관련된 문제로 다룰 수도 있다.
4) 오늘 강의에서 이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오늘은 “체계‘와 ”조직”의 차이에만 주목하면 된다.
5) 먼저 정당 “체계”와 관련된 이론은 일종의 “균형”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균형은 유지냐 붕괴냐의 문제로 다뤄지는데, 그것은 서로 다른 지지 기반을 갖는 정당들 사이 - 즉, 복수의 시민집단들과 어느 정도 배타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복수의 정당들 사이 - 에 안정된 구도(format)가 유지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를 말한다. 따라서 마치 자동차 바퀴의 방향을 조정할 때처럼, 정렬(alignment), 탈정렬(dealignment), 재정렬(realignment) 등의 개념이 자주 사용된다(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편성/탈편성/재편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당체계의 최초 정렬을 낳은 선거를 “정초 선거(founding election)"라 부르고, 그때의 균형이 붕괴되어 정당체계가 탈정렬 내지 재정렬되는 전환적 계기가 되는 선거를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부른다. 선거 관련 언론 기사를 보면, 이제 이런 용어들이 사용되곤 하는데, 시간이 될 때 인터넷으로 -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 “정초 선거(founding election)”, 재편성(realignment)“ 등으로 - 색인어 검색을 해보길 바란다.
6) “체계” 즉 시스템(system)의 문제에서는 상호 분리되어 있는 구성단위들(units)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반면 정당“조직”에 관련된 이론은 아주 다른 논리를 갖는다. 기본적으로 조직(organization)은 살아있는 기관(organ)의 결합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런 의미의 조직에서는 “분리될 수 없는 기능들의 유기적 조합”이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정당조직도 하나의 조직이고, 그런 한 정당조직도 하위 기능들 간의 유기적 조합이 어떠냐에 따라 강해질 수도 있고 망가질 수도 있다. 인체의 머리에 해당하는 리더십과 이념에서 시작해 몸통에 해당한다 할 수 있는 상근 당 관료조직과 원내 정당, 그리고 손발에 해당하는 지역 조직과 대중적 지지기반 등으로 이어지는 유기체적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유기체는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7) 체계 이론과 조직 이론을 말하면서 본 강사는 의도적으로 두 개념을 부각시켰다. ① 서로 다른 지지 기반을 가진 복수의 정당들 간의 “균형”과 ② 환경변화에 대한 개별 정당조직의 끝없는 “적응”이 그것이다.
균형이라고 하는 상호작용의 패턴은 한번 형성되면 잘 변하지 않는 지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정당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지오바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는 이를 “관성의 법치(law of inertia)"라고 불렀다. 한번 형성된 균형 내지 상호작용의 패턴은 지속성을 갖는다는 것이야말로 사회과학 이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이론이다.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체계를 잘 살펴보면 누구나 이해하겠지만, 일단 만들어진 관계의 패턴은 잘 안 변한다. 부부관계만 봐도 대개는 어떻게 다투고 또 어떻게 화해하는지와 관련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그 패턴이 서로에게 수용되고 안정되면 관계는 유지되고, 그렇지 않으면 더는 유지되지 못하고 일순간 파탄이 발생한다. 가끔 ”87년 체계/체제“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 역시 ”형성기 패턴의 지속성“을 가리킨다. 즉, 민주화 정초 선거에서 형성된 정당체계의 특성이 지금도 변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하며, “어떻게 하면 이 87년 체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할 때 사용된다.
8) 조직과 체계의 문제를 정치학자 피터 마이어(Peter Mair)의 이론을 통해 좀 더 살펴보자. 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정당론의 “사실상 마지막 패러다임”을 구축한 사람인데, 그의 “정당체계론”과 “정당조직론”은 다음과 같이 집약할 수 있다.
“정당조직은 변화하지 않기 위해 늘 변한다. 정당체계는 한번 형성되면 지속력을 갖기에 잘 안 변하지만 한번 변하면 와르르 변화한다.”
잘 안 변화하고 가끔 크게 변화하는 정당체계는 변화와 무변화의 차이가 선명하게 포착될 수 있기에 이론을 만들기 용이하다. 하지만 늘 변하고 결과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정당조직은 다뤄야 할 사례가 나라별로 또 시기별로 너무 너무 많으니 일률화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정당조직은, 샤츠슈나이더 등 많은 정당이론가들이 강조하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비공식적(informal) 행위가 더 지배적이고 중요하다. 공식화된 구조나 패턴에만 주목한다면 전체의 극히 일부분밖에는 파악되지 않는 것이 정당조직이다. 민주주의에서 정당 간 경쟁은 치열하긴 하나 전쟁으로 치닫지는 않는 반면, 정당 내 공천을 둘러싼 갈등은 내전 그 이상의 격렬한 감정과 시기, 질투 등을 동반한다. 느닷없는 각목 다툼과 자살 소동이, 정당 간 경쟁에서가 아니라 정당 내 공천 경쟁에서 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정당 간 관계에 대해서보다, 정당조직 내부를 대상으로 한 분석과 설명, 처방이 훨씬 어렵다. 어쩌면 정당조직은 정치학의 주제로서보다 실제 정치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이성적 지식(episteme)”보다 지혜나 현명함과 같은 “실천적 지식(phronesis)”이 더 중요한 분야인지도 모른다. 정당조직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문제에서 정치학자가 지극히 무력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정치가가 정치학자보다 우월한 것도 바로 이 정당조직 분야이다.
그런데 가끔 보면 정치학자나 연구자들이 정당조직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 저렇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함부로 말할 때가 많다. 학자나 연구자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야임에도 그 짧은 지식을 유감없이 과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정말로 무모한 일이 아닌가 한다. 정당조직의 문제와 관련해서 정치학자는 절제해야 하고, 정치가는 스스로가 처한 문제 그 안에서 진단과 처방을 꾸준히 찾아 실천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9) 민주주의 정치이론에서 정당에 관련해 하나의 지침이 있다면 이렇다.
① 정당체계는 사회의 다원적 갈등구조에 맞게 “폭 넓은 구도(format)”를 가져야 한다. 사회의 다원화된 갈등 구조와 “닮아야 한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정당체계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회의 갈등 구조에 비해 지나치게 좁은 대표의 범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대표되지 않은 사회 갈등이 대표될 수 있도록 정치적 진입장벽을 낮추고 표의 비례성을 높이고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참여가 가능한 방향으로 정치관련 법 제도를 개선해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념적 대표체계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도 폐지되어야 할 것이고, 지난 해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허용되어야 할 정당체계의 범위를 제약하는 일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정당체계와는 달리 ② 정당조직은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단단하게 조직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공통의 정체성도 다져가고 나름의 정당 문화도 형성해 가야하는 것도 이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정당들은 말이 당이지, 실제로는 어떤 정체성과 문화 내지 당 체질을 갖고 있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는 조직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정당체계”와 동시에 “응집적이고 강한 정당조직”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는 정당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간 한국정치에서 정당체계는 더욱 더 폐쇄성이 더 심화된 반면 정당조직의 개방성은 정당 자체를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아무렇게나 실험되었다. 특히 민주당(현재 당명은 새정치민주연합이지만 그냥 민주당으로 통칭하겠다)의 경우는 말만 정당이지 조직의 질서도 문화도 정체성도 없는, 사실상 의원들의 사적 클럽 이상이 아니게 되었다. “체계”에 맞는 개혁의 원리(개방적이어야 한다)와 “조직”에 맞는 개혁의 원리(응집적이어야 한다)가 서로 거꾸로 적용된 탓이다.
9) 기왕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당조직의 차원과 관련해 좀 더 말해보겠다. 한 신문의 칼럼을 통해 본 강사는 최소한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인구의 1% 가까이가 당원이나 적극적 지지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즉 당원과 준 당원이 50만 안팎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수치에 어떤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 대표 이론의 하나로, 대표와 피대표자 사이의 “유사성(resemblance)” 내지 “근접성(closeness)”을 고려해 최소한 그 정도 규모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직관적 판단에서 그리 말했을 뿐이다. 진보정당들도 당원 내지 적극적 지지자 50만 시대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당원 참여와 지지자 참여를 어떻게 조합할지, 온라인과 오프라인 참여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지, 당비 의존도와 정당교부금 사이의 비중도 어떻게 관리할지, 당에서 길러진 선출직 후보와 당 밖에서 영입한 후보 사이의 조합은 또 어떻게 할지 등등 사실 모든 문제에서 분명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경우든 양자택일 식 해법은 조직의 변화론/개혁론에 맞지 않는다. 조직은 근본적으로 유기체적 특성을 갖기에 하나의 모델에서 다른 모델로 급진적으로 대체하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조직은 문화(culture)나 체질(constitution)이라는 개념으로 말을 하듯이 서서히 형성되고 서서히 변화되면서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래 걸리고 지루한 일, 그래서 잘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을 정치가들은 잘 하지 않으려 한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가들 주변의 참모들이 한결같이 조언하는 것도 당 조직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 그러다간 정치적 상처만 입을 뿐이라는 것, 그보다는 여론 시장에서 좋은 이미지 늘려가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런 습속이야말로 정치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정당이 가진 정치 자산을 사적인 목적에 전용하는 집단을 부르는 이름이 “도당(徒黨)”인데, 이런 도당들이 대권 그 자체에만 열정을 갖는 정치를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런 정치관, 정당관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정치가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아가 길고 지루하고 힘든 “좋은 정당 만들기”의 과업에 헌신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존중 받지 않는 한 지금의 정당들이 달라지기는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 오늘 강의가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면, 한 번 더 정독해주길 부탁한다. 오늘의 강의 내용만 잘 숙지한다면, 앞으로 계속될 전체 강의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구호로 정리할 테니, 따라해 주기 바란다(웃음). 정당들의 체계는 넓고 개방적으로! (넓고 개방적으로!!) 개별 정당의 조직은 유기적으로 단단하게! (단단하게! 단단하게!!) 재밌다. 다음 시간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