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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강. 본 강사의 정치관에 대한 비판과 간단한 답변

 

 

제1부 왜 정당인가


3강. 본 강사의 정치관에 대한 비판과 간단한 답변

 

1) 세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본 강사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소재로 강의를 진행할 생각이다. 우리 모두는, 그것이 편견이든 이데올로기든, 특정의 인식 틀 내지 정형화된 이미지를 통해서 사실에 다가간다. 본 강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미 일정한 이미지가 있다. 그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우회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보다는, 어느 정도 설명을 하는 것이 유익할 듯싶다.

 

일반적으로 본 강사의 정치/민주주의 관을 비판하면서, ① 정당주의자, ② 리더십주의자, ③ 마키아벨리 식 권력통치론자, ④ 베버 류의 비관적 현실주의자, ⑤ 유럽중심주의자 등으로 규정하곤 한다. 대개는 부정적인 낙인을 찍기 위한 규정들이지만, 완전히 틀린 이야기인 것은 아니기도 해서 이 기회에 짧게라도 본 강사의 생각을 말해두는 게 필요할 듯싶다.

 

2) 정당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하여 : “정당이 중요하다”는 의미의 정당주의라면 틀린 비판은 아니다. 하지만 “정당이면 다 된다”는 식의 정당결정론/정당지상주의/정당만능주의의 의미로 본 강사를 정당주의자라고 규정한다면, 그건 억울하다(웃음). 정당이 민주주의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의 문제이기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2부 강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정당이 얼마나 왜 중요한지, 민주주의와 정당은 어떤 관계를 갖는 문제인지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이 민주주의의 중심 문제가 아니라거나, 정당 없이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는 민주주의자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우겨도, 그건 이념과 가치의 추상적 재구성을 즐기는 스스로의 취향에서만 그렇다고 우길 수 있을 뿐, 현실의 변화에 대해서는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일이라 본다. 정당은 현실적으로만이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당과 정당 정치를 어떻게 좋게 만들 것인지의 문제와 제대로 대면하는 일이 회피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3) 리더십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하여 : 리더십만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리더십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정치는 곧 공동체를 “이끄는(lead)” 문제에 대한 것이고 당연히 통치와 리더십, 권력을 그 중심 요소로 한다. 민주주의에서도 리더십은 민중적인 것의 다른 얼굴이며, 리더십의 역할이 약해지면 도당과 관료제, 엘리트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학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호민관이라는 민중 지도자 내지 그런 제도 때문에 로마가 공화정일 수 있었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원로원과 귀족의 지배가 실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인민 주권이든, 다수 지배든, 민중 통치든 그 무엇을 말한다 해도, 그것은 원리를 말하는 것일 뿐, 인민도 다수도 민중도 스스로 통치하고 지배할 수는 없다. 그런 지배와 통치의 원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그들의 대표이고 리더십이고 조직이고 제도고 절차고 하는 등의 물질화된 힘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난 위로부터의 시각은 싫고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중시한다”거나 “난 모든 권력과 통치, 지배를 부정한다”거나 하는 등을 말하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진짜로 용기가 있다면 현실의 정치가 허용하는 수단을 과감하게 부여잡고, 비록 그것이 위험하고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선택을 요청한다 해도, 실제 현실과 대면해 변화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4) 마키아벨리 식 권력통치론자라는 비판에 대하여 : 권력과 통치의 문제를 회피하고 이룰 수 있는 좋은 정치는 없다. 그렇기에 정치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권력과 통치를 선용하는 길을 찾는 데 있다. 권력도 통치도 없는 정치를 하겠다는 망상을 견지할 수는 없다. 아무리 통치가 싫다고 말하고, 권력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 과시처럼 내세우며 스스로의 높은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운다 해도 그렇게 해서 인간의 정치가 좋아진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통치를 잘하고 권력을 선용할 수 있는 정치 이론을 갖지 않고서는 정당 정치든 민주주의든 좋게 만들 수가 없다.

 

5) 베버류의 비관적 현실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하여 : 존재의 비극성을 무시하는 그 어떤 이론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모두가 병들고 죽는다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무시한 정치윤리는 공허하다 못해 유해하다. 그런 비극적 운명을 인정한다고 해서 반드시 비관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의 말미에서 강조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 왜 우리는 더 나은 인간 현실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하는, 적극적 윤리론을 개척할 수도 있다.

 

밝고 낙관적인 이야기만 해서 사태가 좋아질 수 있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그럴 수만 있다면, 사실 정치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없는 인간 현실 속에서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역사 속에서 인간의 “실천적 이성”이 그처럼 빛날 수 있었다고, 본 강사는 생각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 마키아벨리와 베버만큼 철저하게 고민한 사람도 없고, 그렇기에 이들의 정치관과 대면하는 일을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와 베버의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정치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슬픔과 비애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본 강사의 생각이다.

 

 

 

6) 유럽중심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하여 : 인간을 가지고 실험을 할 수는 없기에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뿐 아니라 앞선 나라들의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는 게 중요하다. 한국 현실만 보고 말한다고 더 나은 대안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 강사는 미국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유럽의 민주주의 실천 경험이 우리에겐 더 참조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대륙적 규모에 낮은 인구밀도를 특징으로 하는 미국보다, 작은 크기의 나라에 밀도 높은 사회구성을 가진 유럽의 실험에서 배울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유럽은 우리보다 한참 앞선 수준을 갖고 있어서 우리가 모방하고 배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문화적인 차원에서는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란 제도와 기구, 구조와 체계 등과 같이 “인위적인 요소들”을 잘 조합하는 일이 중심인 분야이고, 따라서 그에 맞는 환경적 조건만 잘 맞는다면 모방과 선택을 통해 매우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한다. 또한 오늘날의 유럽이란 것도 다양한 형태의 창조적 모방과 인위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이처럼 정치의 환경 내지 조건의 유사성을 고려해볼 때, 미국보다는 유럽의 민주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많다고 보는 본 강사의 입장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 등 미국 식 정치 제도를 들먹이는 사람을 볼 때마다, 과연 그 사람이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나 있나 하는 의심을 갖곤 한다. 미국 식 제도는 - 약한 국가에 분권화된 권위구조, 그리고 그와 짝을 이루는 강한 법집행과 자율적 시장체제를 특징으로 하는 - 미국이라는 사회에서만 예외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그만큼 보편성이나 확장성이 약한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가끔 진보파들 가운데 남미 사례를 중시하는 사람을 본다. 아마도 사회운동과 좌파 이념의 영향력이 그래도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사회운동과 좌파 이념의 영향력은 지독한 불평등과 빈곤이라는 현실 내지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 때문인 면이 크다고 보는 본 강사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남미 식 정치, 경제, 사회에서 배울 것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남미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좋으나 남미 식 민주주의를 따를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7) 이밖에도 본 강사의 정치관에 비판적인 견해는 많다. 그 차이와 이견이 좀 더 좋은 방향에서 논의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강의에서도 회피하지 않고 본 강사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해보려 한다. 이번 강의에서 우리는 “정당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비판적으로 대면하게 될 것이다.

 

본 강사의 “정당 중심의 민주주의론”을 비판하는 의견은 크게 ① 정당보다 운동이 먼저다. ② 대의제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며 직접민주주의가 대안이다. ③ 제도권 중심의 정당 정치보다 시민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④ 파당적 대표와 경쟁보다 시민참여적이고 풀뿌리민주적인 만민공동회/타운미팅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⑤ 당원의 의사보다 국민의 의견에 기초를 둔 정당이어야 한다, ⑥ 정당조직이 아닌 개방적 네트워크로 당을 운영해야 한다, ⑦ 이념과 가치 중심의 대중정당보다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친화적일 수 있는 이미지 정치, 소통의 정치를 해야 한다, 등이 있다. 이 주장들에 대해서도 이어지는 강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펴보겠다.

 

아무튼 본 강사가 강의를 잘 한다면 아마 이런 의견들 속에서 수강자들이 더 좋은 판단을 갖게 될지 모르겠다. 그게 꼭 본 강사와 같은 결론일 필요는 없을 것이고, 이 강의 뒤에 나와 다른 견해를 갖게 되더라도, 이 강의 덕분에 그 의견이 더 튼튼한 논리와 더 보편적인 경험적 토대를 갖게 되길 희망한다. 이것으로 오늘의 강의를 마친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인 정당론 주제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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