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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6. 이명박 정부 5년과 특별사면, 정말로 ‘특별한’ 사면

 

 

 

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 소장)

 

지난 번 두 번째 글에서 한국형 정치부패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특별사면에 대해 언급하면서, “1948년 정부 출범 뒤 모두 98회의 사면(감형 및 복권 포함)이 이뤄졌으며, 특히 특별사면은 그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란 베일 속에 숨은 채 발표 때마다 남용과 법적 안정성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15회, 허정 2회, 박정희 25회, 전두환 18회, 노태우 7회, 김영삼 9회, 김대중 7회, 노무현 8회, 이명박 7회 등 총 98회에 걸쳐 특별사면이 단행되었다. 특히 김영삼 정부부터는 교통사범 등 행정?징계법규 위반자에 대한 특별사면이 단행되기 시작했는데, 김대중 정부 때 운전면허 벌점 감면만 1013만5850명에 달했고, 노무현 정부 때 420만7152명, 이명박 정부 때 433만4293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이처럼 정부 출범 초기에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쓰기’ 형태로 행정?징계법규 위반에 대한 범칙금?과태료 면제, 혹은 면허취소나 벌점 등의 징계?징벌의 면제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사법권이 무력화되고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정권유지 수단으로서의 특별사면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서 사면은 헌법과 사면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79조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면·감형·복권을 명할 수 있고 이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해 사면 절차 등을 규정한 법률이 사면법이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구분된다. 일반사면은 특정 범죄를 지목, 그 죄를 저지른 사람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여기엔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자를 선정해 그들에게 선고된 형의 효력을 소멸시켜 주는 것으로,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재가한다. 복권은 형의 선고로 상실 또는 정지됐던 자격이나 권리를 회복시켜 주는 조치로,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정치인에게 국회의원 선거 출마 자격을 주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복권 역시 특정 죄목에 적용되는 일반복권과 특정인에게 적용되는 특별복권으로 나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국회에서 가장 먼저 제정·공포된 법률은 정부조직법(법률 제1호)과 사면법(법률 제2호)이었다. 오랜 식민통치와 극심한 좌우 대결 속에 출범한 이승만 정부가 광복과 정부 수립을 기념한다며 대규모 사면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1948년 9월 27일 건국 대사면을 통해 살인·방화·강도·성폭행범 등을 제외한 웬만한 범죄자는 모두 석방했고, 그 결과 전국 교도소의 절반이 일시에 비워질 정도였다고 한다. 최초의 일반사면이었다. 이후 일반사면은 5·16 군사 쿠데타와 3·5공화국 출범, 문민정부 출범 등을 계기로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에서 단 여섯 차례에 걸쳐서만 이뤄졌다.

 

한편 특별사면의 경우 매번 ‘국민화합’, ‘국가발전 동참 유도’, ‘국정 분위기 일신’. ‘경제 살리기’ 등 미사여구가 단골메뉴로 동원되었다. 국회동의 없이 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적 남용이라는 측면에서 특별사면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또 특정인에 대한 특별복권이 동시에 가능하며, 이로 인해 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법치주의 및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시킬 수 있다. 나아가 특별사면은 대상자 선정의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점을 악용하면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각각 15차례와 24차례에 걸쳐 특별사면과 특별감형 등을 남발하며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활용했다.


특별사면, 정권 유지 차원에서 정치적 거래로

본격적인 권력형 비리 사면은 1991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사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태우는 취임 3주년을 맞아 5공비리로 수감중인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을 특별감형하고, 거액어음 사기사건의 장본인 이철희를 사면한다. 문민화가 이뤄진 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더욱 왜곡됐다. 대신 목적과 효과는 바뀌었다. 특별사면이 과거처럼 정권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거래로 활용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성탄특사를 통해 국회 상공위 뇌물외유사건 관련자 5명을 포함해 야당 시절 최측근이던 서석재 전 의원을 사면한다. 그리고 여론의 강력한 반대에도 안보 강화를 내세우며 뒤로 예산을 축낸 율곡비리 사건,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금융권 고위 관계자들이 거액의 뇌물을 챙긴 동화은행 사건, 슬*머신 사건 관련자 등 죄질이 나쁜 부패사범들을 대거 특별사면했다.

 

김대중 정부도 12·12와 5·18,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 관련자, 국정 개입 논란을 부른 김현철 등을 지역 화합과 국민 대화합이란 명분을 내세워 특별사면했다. 1998년 3월 13일 특사에서 개인비리로 구속된 장학노(전 청와대 부속실장)와 이양호(전 국방장관) 등을 사면한 데 이어 같은 해 8월 15일 건국 50주년 특별사면을 통해 이후 정부 최고실세로 자리잡는 권노갑 전 의원의 한보비리를 사면한다.

 

노무현 정부 또한 경제 살리기 등의 명분으로 수차례에 걸쳐 재벌 총수 등을 특별사면했다. 2003년 광복절 특사를 단행하면서 대통령 측근인 김정길(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해 한보·청구 사건 연루자인 홍인길(전 청와대 총무수석비서관)을 특별복권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어떠했을까?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정말로 ‘특별한’ 사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공정한 사회인지를 잘 드러낸다. 2010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보면 ‘삼성 광복절’이라고 불릴 정도로 삼성그룹 경제인들을 대거 사면했다. 이학수(삼성전자 고문), 김인주(전 삼성 전략기획실 차장), 최광해(전 삼성전자 부사장), 김홍기(전 삼성SDS 사장), 박주원(전 삼성SDS 경영지원실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더구나 이학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돼 2005년 사면된 전력도 있다.

 

이명박 특별사면의 압권은 2009년 12월 31일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삼성 비자금’ 사건 관련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를 선고(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받고 회장직을 내놓았던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에 대한 ‘원 포인트’ 단독 특별사면이었다. 1948년 사면법 제정 이래 숱하게 오·남용 비판을 받아온 특별사면이었지만 경제인 1명만을 대상으로 한 사면은 헌정 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국가적 차원에서…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여 2018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자 “사면을 바라는 강원도민, 체육계, 경제계 등 각계각층의 건의와 국익을 고려하여 심사숙고 끝에 사면을 결정했다”고 한다. 변명치고는 너무 궁색하다. 경제인만 특혜를 준다는 인식을 주지 않으면서 평창올림픽 유치라는 국민적 염원을 내세우면 저항이 덜 할 것이라는 계산이랄까 꼼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건희 전 회장을 단독 특별사면함으로써,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근본가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임을 확인시켰고, 재벌 위의 재벌, 대통령 위의 재벌총수라는 사실도 확인시켜주었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대통령의 사면권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헌법상 법 앞의 평등원칙과 법치주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행사되어야만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전 회장을 사면함으로써 또 다시 헌법을 우롱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정부는 걸핏하면 법치주의,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과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구실일 뿐, 권력과 자본을 가진 특권층에 대해서는 법치 따위를 무시하는 무한한 관용과 애정을 베풀고 있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성명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나칠만큼 법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그래서 망루농성을 시작했고 경찰과 대치했지만,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잃지 않아도 될 목숨을 잃은 용산철거민들의 유가족들에게 단 한 번도 위로의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이 대통령과 정부는,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에게 생애 두 번째 특별사면 복권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건희 전 회장으로부터 정부정책에 호응하는 큰 선물을 받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건희 1인에 대한 특별사면은 법과 법정신에 근거해 통치되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정신과 지위고하, 사회적 영향력,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근본가치가 또 한 번 무너졌음을 반증한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명만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 그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가 이끄는 대한민국의 실상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위원으로 복귀한 이건희에게 ‘견책과 분과위원회 활동 5년 금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더욱이 IOC 윤리위원회는 이 전 회장에 대해 “명백하게 윤리헌장을 위반했고, 올림픽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징계의 사유를 적시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결심하게 됐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복권 명분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무시하고 강행한 이 전 회장에 대한 단독사면은 특정 재벌 총수에 대한 특혜에 불과했음이 분명해졌다. 재벌 총수 봐주려고 법까지 무시했는데 국제적 망신만 자초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처구니 없는 이명박의 ‘셀프 사면’

2013년 1월 29일 이명박은 국무회의를 열고 최시중(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55명에 대한 설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여기에는 2008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박희태(전 국회의장)와 당시 박 전 의장 캠프 상황실장을 맡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은 김효재(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김연광(전 정무1비서관) 등이 포함됐다. 특히 자신의 사돈인 조석래(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효성그룹 사장)까지 특사에 집어넣었다. 비리 혐의로 구속됐던 자신의 측근들을 사면한 이른바 ‘셀프 사면’이었다. 최시중, 천신일, 신재민, 김재홍(대통령 사촌처남) 등 이명박 측근 인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상고를 포기하고 형을 확정받은 것은 사면 대상자가 되기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었다. 이전 정부에서도 대통령 임기말 특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의 특사는 부정부패와 비리에 연루된 측근은 물론 친인척까지 모조리 방면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구색맞추기용으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으로 통하는 서청원(전 친박연대 대표)과 용산철거민 5명도 사면과 잔여형기를 면제했다.

 

셀프 사면에 대해 야권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조차도 “만약 사면이 강행되면 이는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 남용이며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맞섰다. 결국 여야 모두로부터 비판받은 ‘셀프 사면’ 논란은 사면법 개정의 도화선이 되었다.


외국에서 사면은?

물론 사면제도를 갖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처럼 뚜렷한 원칙 없이 기념일마다 사면을 남발하는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대륙법의 원조격인 독일은 지난 60년간 사면을 딱 4차례 단행했다고 한다. 법치주의가 확고히 자리잡고 국민들의 준법정신도 강해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사면·복권 등이 시행되지 않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는 최고 권위를 지닌 연방헌법재판소는 판례에서 “사면은 법률의 획일성이나 경직성, 수사 과정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서만 실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프랑스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한다. 특히 국가와 사회의 기본가치를 침해한 범법자들에 대해선 사면·복권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 테러와 정치적 차별을 저지른 사람, 15세 미만 미성년자를 때린 폭행범, 마약·밀수 사범, 불법낙태 사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핀란드는 헌법에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대법원에 자문해 사면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사법부가 내린 유죄 판결이 정치적 야합에 의해 무시되거나 거부되는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다. 덴마크는 행정부 각료를 지낸 인사에 대해선 사면이 금지돼 있다. 재직 당시의 권력이 컸던 만큼 퇴임 이후의 특혜는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양원제 국가인 노르웨이에서는 하원에 의해 소추된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본은 사면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쟁생보호심사회’란 기구를 법무부에 두고 있다. 사면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우선 심사회에 신청해야 한다. 심사회는 이렇게 신청받은 개별 사안들을 일일이 심사해 사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만 추려내 그 명단을 법무부에 전달한다. 일본에선 사면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 또한 까다롭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 징역 및 금고형은 형기의 3분의 1이 각각 지난 다음에야 사면 신청이 가능하다.


미국의 사면제도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양한 사면제도를 갖고 있다. 국가 헌정질서에 충성을 맹세하는 조건으로 실시하는 ‘조건부 사면’, 검찰에 기소되기 전 수사 단계에서 이뤄지는 ‘기소전 사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시행되는 사면과 비슷한 ‘기소 후 사면’ 등이 있다. 기본적으로 사면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입법부인 의회도 특별법 성격을 띤 사면법을 만들 수 있다.

 

기소 후 사면 절차는 비교적 까다롭다. 기소 전 사면은 다소 예외적인 경우다. 1974년 포드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전임 닉슨 대통령에 대해 실시한 사면이 대표적인 사례로, 포드가 닉슨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란 점에서 정치적 거래란 비판을 받았다. 조건부 사면의 대표적 사례는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단행된 대사면이다. 링컨 대통령과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국민화합을 명분으로 ‘남부연합’(남북전쟁 당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든 남부 주들끼리 연합해 세운 국가)에 부역한 공무원·군인을 상대로 실시한 것인데, 이는 충성맹세를 조건으로 한 사면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적절한 사면권 행사로는 클린턴 대통령의 사례가 꼽힌다. 2001년 1월 자신의 임기 종료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된 뒤 스위스로 도피한 기업인 마크 리치를 전격 사면한 것이다. 훗날 리치가 민주당에 100만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클린턴을 상대로 사면의 대가성을 조사하기도 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우 사면 대상자 290명 가운데 단 한 명만을 사면했다. 그리고 총 22명을 복권했는데 이들은 5년의 경과기간을 포함해서 평균 24년을 기다렸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사면 및 복권 대상자 가운데 권력형 비리 사범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한민국 사면법의 문제점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독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1948년에 제정된 사면법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당시 사면법의 사면 절차 규정은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과 복권은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한다”(10조)가 전부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사면 실무를 담당하는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사면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사면법을 살펴봤는데 조문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냥 대통령이 아무나 알아서 사면해주라는 것과 같을 정도로 절차가 허술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8년 사면법은 법질서 경시 풍조, 부정부패 만연, 3권분립 파괴 등의 부작용을 낳았고, 돈과 권력이 있는 유력자들만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 법적 형평성을 무너뜨렸다. 최고권력자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특별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법치주의를 가장한 권한 남용일 따름이었다.

 

1948년 제정된 사면법은 그동안 두 차례 일부 내용이 개정됐다. 국회는 2007년 11월 대통령 사면권을 견제할 절차적 통제장치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법을 바꿨지만, 사면심사위는 문제적 인사의 사면을 걸러내지 못하는 사실상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18대 국회에서는 특별사면의 남용을 막기 위해 사면심사위 심사 과정과 심사 내용을 공개하도록 사면법이 개정됐지만, 법무부가 후속 조처에 손을 놓으면서 시행령 개정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그동안 사면심사위원 공개, 사면심사 회의록 공개 등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 왔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야 내용을 부분적으로 공개하는 데 그쳤다. 법무부가 대통령에게 사면 대상자를 보고하고 재가를 얻도록 돼 있는 규정과 달리, 사실상 청와대에서 대상자를 정한 뒤 법무부가 이를 보고하도록 하는 것도 여전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의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면의 역사는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사와 다름없다.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에게 혜택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대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최고 권력자 모두는 헌법을 위반해온 것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대한 변호사단체, 학계 및 시민단체, 일부 재판 담당 판사의 비판이 잇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출범 이후 17년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과 친인척,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 경제인의 대법원 확정판결에서부터 사면까지의 과정을 추적해 보면 사회지도층 196명이 특별 사면·복권을 받아 형기를 마치지 않고 풀려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196명에게 선고된 징역과 금고 형량은 총 6,068개월(1인당 평균 31개월)로, 평균 수감기간은 7개월 27일이었고 60개월 이상 장기복역자 4명을 빼면 반년(5개월 18일)도 채 안됐다.

 

이런 결과는 대통령의 특별 사면·복권이 남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사 결과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 특별 사면·복권된 유력 인사들은 각각 평균 5개월 12일, 6개월 15일을 복역한 반면 참여정부에서는 10일로 나타났다. 참여정부 때 수감기간이 훨씬 적은 이유는 사면·복권자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실형을 산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인원별로는 경제인(86명)이 가장 많았고, 고위 공직자(49명), 정치인(48명), 기타(12명)가 뒤를 이었다. 평균 수감기간은 고위 공직자가 11개월 15일로 가장 길었고 대통령 친인척 등이 11개월 12일, 정치인 5개월 3일, 경제인 3개월이었다. 수감기간별 분포를 보면, 전체의 41%인 79명이 집행유예 등으로 수감 한 달도 되기 전에 사면된 반면 3년 이상 복역한 사람은 4%(7명)에 불과했다. 또 이들이 재판받은 사건 중 51%인 110건이 뇌물사건이었다. 정경유착 비리로 기소된 인사들 대부분이 사면·복권으로 풀려나 결국 나름 엄정한 법집행이 특별 사면에 의해 훼손된 것이다.


올바른 사면법 개정의 방향

사정의 우선 대상인 정치인들로선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를 ‘혜택’의 기회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역으로 각종 비리에 연루돼 서로 봐줘야 할 사람이 있는 정치권에 사면권 개정은 아킬레스건인 것이다. 이와 함께 사면은 통치권자 입장에서 보면 국정 장악력 또는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확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역대 정부가 내건 특별사면의 명분은 국민화합이었지만, 그것이 정국 돌파를 위한 분위기 쇄신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대통령으로선 포기하기 어려운 일종의 ‘특권’인 것이다. 그런 탓에 역대 정부의 무분별한 사면권 행사를 두고 끊임없이 비판이 일었으나 막상 사면권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 정비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말에 이뤄진 ‘셀프 사면’을 계기로 사면법 개정 분위기가 조금씩 형성되어왔다. 우리도 이제 사면권의 오·남용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사면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중이다. 국회가 지금까지 사면법 개정을 하지 못한 것 자체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사면법 개정의 구체적인 방향은 앞으로 더욱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최소한 다음 세 가지 내용은 담겨야 제대로 된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지금처럼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허울뿐인 사면심사위원회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심사를 수행할 수 있는 민주적인 위원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심사위원 인적 구성의 적정성뿐 아니라 위원회 활동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심사위원의 명단은 물론이고 심사과정 회의록 등을 즉시 공개해 사면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사면 대상 배제 조항을 명시함으로써 사면 대상자 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컨대 권력형 부정부패 사범, 헌정질서 파괴범, 반인륜적?반인도주의적 범죄자는 물론이고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등에 대한 보은 사면을 막기 위한 ‘자기사면 금지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핀란드의 경우처럼 대법원 등 다른 기관의 의견 청취 및 의견 개진 조항을 넣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사법부의 의견 청취에 대해서는 대통령과의 긴장 초래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법권의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정략적인 사면에 대해 사법부가 위험을 경고하고 제동을 거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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