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식(食)과 농(農業)을 위한 10가지 이정표”
-제4차 생태사회전환포럼을 마치고-
박창규 진보정의연구소 전문위원
밥과 채소, 과일, 육류와 그 가공식품을 ‘먹는 일’은 우리들 삶의 기본활동이다. 이러한 기본활동이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그리고 평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원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먹는 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불안하고 불안정한 식탁
수입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식품 등 수입식품이 국민들 섭취열량의 65%를 차지하는 등 누가, 언제,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먹을거리들이 넘쳐나 우리들 식탁을 불안하게 한다. 중국산 멜라민 분유,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일본산 방사능 오염 수산물, 유전자조작 콩 등 식품사고와 사회적 논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단적으로 2013년 8월 갤럽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일본산 식품에 대해 국민들의 87%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는데, 이러한 응답은 미국산 식품에 대해 47%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다. 동시에 수입식품의 증가는 ‘푸드 마일리지’(Food Miles: 먹을거리가 생산자 손을 떠나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도 늘려 지구 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 2008년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는데, 식품가격의 급등이 가계의 식품비에 부담을 주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한국경제매거진이 독점 인터뷰 한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다시 애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식량가격이 계속 치솟을 것이고 폭동이 일어나고 사회불안이 빚어질 것이다”고 그는 말했다.
먹을거리의 양적?질적 양극화
한편, 2013년 10월 정부발표에 따르면, 중?고생들의 햄버거, 콜라 같은 패스트푸드 섭취가 증가하고 있다. 가난한 집 아이들 일수록 그런 정크푸드(junk food) 섭취가 많아 비만해지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오고 있다. 하루 한 끼 이상 굶는 결식아동이 5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과 그 아이들일 수록 굶거나 몸에 해로운 식품을 섭취하고, 질 낮은 수입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먹을거리 소비의 양적, 질적 양극화가 심각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도 ‘동물원 사회’ 일보직전이라 하겠다.
‘먹는 일’에서 도시민과 농민의 상생이 생태사회전환의 우선과제
이런 현실인데도 국민들의 안정적이고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을 담당해야 할 농업농촌은 갈수록 더 홀대받고 외소해지고 있다. 농민들의 경제적 삶은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 질문하게 된다. 건강한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생산하고 소비해 도시?도시민과 농촌?농민이 ‘먹는 일’에서 상생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불가능 한 것인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선, 그것을 제대로, 특히 정부 차원에서 실현해보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조금씩 도시민과 농업?농촌?농민의 상생 노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정의당 부설 진보정의연구소와 김제남 의원이 공동주최한 생태사회전환포럼의 제4차 포럼이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농업농촌 정책과제’를 주제로 지난 4월 40일(수) 열렸다. 이날 발표는 한살림연합의 조완형 전무이사께서 맡아주셨다.
먹을거리와 농업?농촌의 우울한 현실들
조완형 전무가 전하는 먹을거리와 농업농촌의 현재 상황은 절로 우리를 한숨짓게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식량 해외의존도는 2012년 76.4%로 먹을거리의 자급력과 다양성, 안전성이 모두 우려”되고, 2013년 171만 ha인 농지면적은 “계속 줄어들어 2023년에는 140만 ha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2020년 식량자급률 목표와 국제곡물가격 등을 감안한 약 160만 ha에 못 미쳐 향후 10년 내 농지 부족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또 “전체 인구 중 농가인구 비중도 2013년 5.7%에서 2023년 4.4%로 전망”되며, “2013년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36.7%에 달해 전체 인구의 고령화율 12.2%의 3배가 넘으며, 농업경영주의 37.7%가 70세 이상 이고, 평균 연령은 65.4세”라고 소개했다. 도농간의 소득불균형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에 따르면,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2008년 65.2%에서 2012년 57.6%로 감소했으며, 농산물 판매액이 1천 만원을 넘지 못하는 영세농가가 전체의 65.3%를 차지한다.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얻고 있는 빈곤선 아래의 농가 비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2012년 22.5%에 달했다.” 조완형 전무는 “앞으로 농가소득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수익모델 창출없이는 급격한 농업붕괴와 농촌해체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완형 전무는 “올해 들어 서울시교육청은 친환경농산물 권장사용 비율을 기존 공립초교 70%, 중학교 60% 이상에서 모두 50% 이상으로 낮추었다. 이로 인해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친환경농업도 육성·지원하기 위한 친환경 학교급식의 목적과 의미는 눈에 띄게 퇴색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한편, “2013년 국내에 수입된 GMO는 총 888만톤(농업용 720톤(이중 사료용이 98%), 식용 168톤)으로 전년대비 12% 이상 급증하였다. 2008년, GMO를 수입할 때 반드시 사전승인을 받도록 규정한 관련법이 시행된 이후 최대 수입량이다. GMO 수입 급증은 전체 GMO 수입량의 약 80%에 이르는 사료용 옥수수가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식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벗어나기 위해 ‘식(食)의 주권회복운동’전개해야
조완형 전부는 이러한 먹을거리와 농업농촌의 현실을 “국가행정시스템과 시장경제시스템에 의한 ‘식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식생활세계의 식민지화’는 구체적으로 ‘수입식품 의존’, ‘생산?가공?유통의 복잡화’, ‘패스트푸드 외식산업 의존’이며, 이를 벗어나기 위해 “생산·소비 상생·협동·연대를 통한 식(食)의 주권 회복 운동으로서 지속가능한 생산·소비시스템을 구축하는, 즉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고 식량자급력을 향상시키는 운동을 폭넓게 그리고 힘 있게 전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완형 전무는 그러한 ‘식(食)의 주권 회복 운동’은 “생태파괴적인 고투입?고에너지 농법과 기업식 대규모 농업을 생태친화적인 농법과 가족농이 살 수 있는 농업으로 교체”하고, “식(食)과 농(農業)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농맹자, 식맹자”에 대항해 “농산물을 생산해서 우리의 먹을거리를 안정되게 공급하는 역할,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존립, 자연과 생태환경의 유지, 전통과 문화의 보존 등이 농민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모두의 식(食)과 농(農業)을 위한 10가지 이정표 세우기
조완형 전무가 제안하는 10가지 이정표는 다음과 같다.
①국민과 함께 하는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생산?소비 시스템 구축으로 농정기조의 전환해야 한다. 즉, 친환경농업을 육성하고 식량자급력을 향상시키는 먹을거리 자급?자치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며, 식과 농의 경제적 가치(시장유통)를 중시하는 분열형 및 무관심형 소비자의 행동을 적극형 및 건강지향형 소비자의 행동으로 바꿔내는 것이 농업정책의 큰 과제이다.
② 국내 식품제조업에서 국산원료 사용비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식품제조업의 국산 원재료 사용량은 447만톤으로 식품제조업의 전체 농축수산물 원재료 사용량 1504만톤의 29.7%에 불과하다. 수입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높이는, 적정한 국산 원료의 사용비율을 의무화하는 국가 식품산업 육성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③ 친환경농업을 틈새농업이 아닌 주류농업으로 육성하는 국가 및 지역 농정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한 세부과제로는 ?친환경농업의 가치와 이념에 충실한 이른바 스스로 준비된 농가를 폭넓게 육성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와 신뢰도를 크게 향상시켜야 한다. 소비자 주권을 넘어선 ‘생산하는 소비자’, ‘공동생산자’로 진화시켜 가야 한다. ?유기농산물은 인증제로, 무농약·저농약농산물은 표시제로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산자(조직) 주도형 친환경가공사업 활성화를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의 핵심 과제로 반영해야 한다. ?친환경농산물 직거래유통을 우선하면서 일반시장유통으로 접근하는 정책 방향을 수립, 시행할 필요가 있다. ?농정 기조 자체가 친환경농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 기조가 친환경농산물 소비를 촉진·확대되는 방향으로 과감히 전환될 필요가 있다. ?농자재 투입 위주의 관행적인 친환경농업기술체계가 아니라 생태계 원리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대안적인 친환경농업기술체계로 전환해가야 한다.
④ 친환경급식 권장사용 비율을 축소하고 친환경농산물을 GAP로 대체함으로써 친환경농업의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키려는 일련의 조치들이 시정되어야 한다.
⑤ 생·소 연대형 대안유통체계를 적극 확대해가야 한다. 소비자가 참여하는 유통, ‘생산약정과 책임생산, 책임소비’ 개념이 포함된 직거래가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국내 친환경농식품 유통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생협 등의 대안유통체계(시장외유통 영역)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현재 생협조직이 전체 친환경농식품 시장규모에서 약 17.4%를 차지하고 있다(학교급식 16.2%). 시장유통의 비효율성을 견제할 수 있는 수준의 대안유통체계 지원·육성이 필요하다.
⑥ 곡물사료 자급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국산 축산물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사료곡물 자급력 향상을 위한 대책 없이는 식량주권이나 식량자급 문제를 논하기 어렵다. 수입 옥수수를 대신할 수 있는 한반도 고유 곡물자원은 바로 보리이다. 분명히 우리나라가 곡물자원의 경제적 속국 처지에서 벗어나 떳떳한 식량 자립·자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보리를 살려내는 길 밖에 없다.
⑦ 대안적 식문화 형성을 위한 식생활교육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대안적 식문화 형성을 위한 식생활교육(식품의 획일화·균일화와 농업의 공업화·탈공업화에 대항하는 다양성·지역성·관계성·순환성·개성화 중시)을 확대해가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획일적인 식생활교육이 아니라 국민의 내발적인 다양한 식생활교육을 지원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지역 수준에서 민간주도형 내발적인 식생활교육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
⑧ 진짜 불량식품 근절을 통한 국민의 먹을거리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생산단계의 사전예방적 안정관리 강화와 소비자 신뢰 확보를 위한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진짜 불량식품’을 근절하려면 먼저 먹을거리의 해외의존도를 낮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먹을거리를 해외에 더 많이 의존하면 할수록 유전자변형이나 공장형 축산, 방사능 오염, 농약과 항생물질로 뒤범벅이 된 ‘진짜 불량식품’의 수입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⑨ 우리 밥상의 안전, 미래 세대 삶의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FTA 추가 협상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 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국내 유기농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미국 등 5개국이 요구하는 유기가공식품 상호 동등성 협상을 신중히 검토하고 접근해야 한다.
⑩ 농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책의 성과가 소수에 집중되는 농정을 극복해야 한다. 소수의 상위 농가 중심의 경쟁력 지상주의 패러다임을 철회해야 한다. 가족소농의 조직화를 통한 규모화가 도모되어야 한다. 가족소농 보호 정책은 농촌의 양극화를 막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농촌복지정책이기도 하다. 우리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농지와 농민을 유지하고 도농간 소득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농정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쌀 시장 관세화 논란의 재연 이전에 쌀 자급률 하락 위험부터 짚어야
이번 포럼에서도 강조된 ‘농업은 경쟁과 효율 논리로만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민 모두를 위한 농업?농촌의 회생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적어도 10여 년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던 대안적인 농정 비전이자 전략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러한 주장이 지금도 필요하고 더 절실할 수밖에 없는 것은 더 외소해지고 더 홀대받는 농업?농촌?농민의 현실 때문이다. 그리고 갈수록 불안전해지고 위험하기까지 한 우리나라의 식량주권 상황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품 팔아서 값싼 농산물 수입해 먹으면 된다는 식의 시장경쟁력과 효율 중심의 농정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지금 다시 10년 전에 논란이 되었던 쌀 시장 관세화 논란은 재연되고 있다. 농업?농촌?농민의 현실과 우리나라의 식량주권 상황, 시장경쟁력과 효율 중심의 농정 인식이 뒤엉킨 채 10년 전과 똑같은 논리로 논쟁이 되는 듯하다. 적어도 정부라면, 그리고 농민들도 국민임을 인정하고, 이제 농업?농촌문제에 대해 10년 전보다 더 많은 도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세계 곡물시장의 동향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DDA(도하개발아젠다)협상이 당초의 협상시한을 훌쩍 넘겨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면, 10년 전과 똑같이 WTO농업협정문을 헌법처럼 신봉해 쌀 시장 관세화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정부나 지식인들이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때 100%를 넘었던 쌀의 자급률은 현재 86%로 떨어졌고,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자급률 평균은 5% 수준이다. 부족한 쌀은 5%의 국산 쌀을 혼합해 국산포장지에 담은 수입쌀이 메우고 있으며, 이러한 쌀 수입 확대는 농민들의 쌀 생산 의욕을 꺾고 쌀 생산면적을 줄여 쌀 자급률을 더 하락시키는 결과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쌀 자급률 하락은 우리 식탁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일본농업연구소의 보고서(「1990년대 이후 세계 쌀 무역 동향 및 쌀의 국제 시장 구조 변화」,2012)에 따르면,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고급 자포니카(중단립종) 쌀은 전체 쌀 무역량의 2~3%(약 70만톤)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미국, 호주, 이집트 등 자포니카 쌀 주요 수출국들의 농정기조(수출통제 등)나 작황에 따라서 자포니카 쌀의 무역량 감소와 가격폭등의 개연성은 언제든지 있다. 위 보고서는 “세계 쌀 수급이 상대적으로 어려워 미국, 호주 등이 일본에 수출하는 쌀 여력에 한계가 생기고 있다”고 한다. 반면, 2013년 1월 월 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자포니카 쌀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이 쌀 수입국으로 떠올랐으며,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2012년 중국의 백미 수입량은 260만톤이었다고 한다.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쌀 부족을 다른 나라들이 채울 수 있을 것이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쌀 시장 관세화 논란 재연 이전에 쌀 자급률 하락에 따른 위험과 쌀 자급률 회복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부터 제시해야 한다. 그러한 대책방향의 대강이 이번 생태사회전환포럼의 결과가 그러한 대책방향에 포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