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연 (진보정의연구소 소장)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합니다.…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합니다.…‘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습니다. 앞으로 정부는 잘 하는 곳은 더 잘 하게 해주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힘이 되는 역할을 맡겠습니다.…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변하지 않고는 선진일류국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국가의 발전 방향과 실천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합니다.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용정치의 기본입니다.…우리의 시대적 과제,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한 대전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새로운 신화를 향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갑시다.” |
윗글은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의 일부다. 이전 대통령들의 취임사와는 달리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부정부패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가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2009년 4월 19일 서울 수유동 국립4ㆍ19민주묘지 자리였다. ‘4ㆍ19혁명 제49주년 기념식’ 기념사를 통해 “미래의 걸림돌이 되는 것들과는 과감하게 결별해야 한다”면서 “선진화는 절대로 부정부패와 함께 갈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 이명박이 부정부패를 지목한 것은 정국을 흔들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를 의식한 것이었다.
이처럼 그나마 뒤늦게라도 부정부패에 대한 언급한 것은 이명박 스스로가 부정부패와 관련해서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전과 14범’이라는 세간의 딱지는 그것을 잘 드러내준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미래의 걸림돌이 되는 것들, 부정부패와 과감하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답은 ‘아니올시다’다.
‘전과 14범’ 논란과 ‘너나 잘 하세요’
전과 14범이라는 발언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한 핵심인사가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2007년 6월 27일 국회의원 신분의 이 인사는 기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이(명박) 전 시장이 10년 전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과 14범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최근 당이 경선후보 신청을 받으면서 범죄경력 조회를 빼기로 했다”면서 “구의원 후보 신청할 때는 벌금형(받은 사람)도 안 된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왜 뺐느냐”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측은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정부쪽으로부터 받은 자료로 이명박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다”며 명예훼손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건설 재직 당시 회사 문제 때문에 법인대표로서 벌금형을 받았을지 몰라도 이명박 전 시장이 범죄를 저질러 전과기록이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기준으로 한 전과 기록에서 이명박은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이명박은 전과 14범’이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니다. 사면을 받아 무죄가 된 것도 있고 또 성명 수준에 머문 것도 있기 때문에 ‘범죄 사실 14건’이라는 표현으로 고쳐 써야 맞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①건축법 위반 구속(72.6.19 서울지검) ②도시공원법 도시계획법 위반 고발(90.9.4 군산경찰서 고발조치) ③업무방해 및 폭력처벌법 위반 고소(90.12.6 현대건설노동조합, 종로경찰서에 고소) ④근로기준법 위반 불구속입건(91.06.14 서울지방노동청) ⑤수뢰 의혹(93.06.30 부산지검 동부지청) ⑥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⑦사기 혐의 고소(2001.11) ⑧무고 혐의 고소(07.3.12 서울중앙지검) ⑨공직자윤리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 고소(07.7.10 서울중앙지검) ⑩명예훼손 혐의 고소(07.09.07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⑪증권거래법 위반 고발(07.11.5 대검찰청) ⑫증여세 탈루 의혹 세무조사 및 검찰 고발 요구(2007.11) ⑬수뢰 및 직권남용 고발(2006.3 서울중앙지검) ⑭ 2007.11.21 성매매특별법 위반 관련 여성단체 사퇴촉구 성명.
한편 2007년 11월 17일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측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전날 부정부패 추방 공약을 발표한 데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한다”고 힐난했다. 당시 이혜연 선대위 대변인은 이 날 논평을 통해 “수뢰공직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 함께 수뢰액의 50배를 벌금으로 물리고 고의탈세에 대한 가산세율을 현행 40%에서 100%로 대폭 인상하겠다는 이 후보의 결연한 의지에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문을 연 뒤, 이어 “그러나 이 후보의 이런 공약을 접하면서 머릿속에 맴도는 상념들은 불행하게도 후안무치(厚顔無恥), 상선하수(上善下水)같은 낱말들”이라고 비꼬았다. 이 대변인은 이어 “무례를 무릅쓰고 요즘 신세대식 표현으로 하자면 ‘너나 잘 하세요’같은 결례의 어휘뿐”이라며 “땅투기 의혹, 돈투기(BBK) 연루 의혹, 본인 소유 건물임대소득 축소신고 의혹, 두 자녀 위장취업 탈세, 건강보험료 축소 납부 등 각종 비리 논란을 빚고 있는 이 후보의 이런 공약을 국민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모르긴 해도 허탈감에 실색하고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라고 거듭 이명박 후보를 비꼬았다.
친인척?측근비리 ‘유전자 게놈(genome) 지도’
“우리 정부에서는 지난 2년 반 동안 친인척과 권력형 비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2010년 7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영포회’ 문제와 관련한 엄단 의지를 밝히면서 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날까지 어떤 형태의 친인척 문제와 권력형 비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어설픈 사람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하고 있다. 정부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을 통해 친인척 비리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 논란을 자초했다. 지난 2년 동안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가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서 명백히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비록 말뿐이긴 했지만 ‘법과 원칙’을 강조해 온 이명박 정부 역시 특히 5공 이후 지겹도록 반복되어 온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에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이었고, 법원에서도 대부분 무혐의로 판결났다.
2009년 3월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 봐주기·감싸기 리스트’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이명박 정부를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로 비판한 바 있었다. 이어 “21세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닌 ‘형제공화국’, ‘검찰공화국’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개혁세력에게는 지옥이고, 자기편은 천국인 이분법 세상이 된 것이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그(이명박 대통령)는 서툰 인간관계 때문에 오로지 주변의 친구들과 측근들만 신뢰한다.” 2007년 대선 직후 올린 대외비 정보보고에서 주한 미 대사관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 내용은 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2011년 9월 공개한 ?이명박 당선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통해 밝혀졌다. 이 문건은 미 대사관이 이 대통령의 성향, 인간성, 측근, 정책 등을 분석해 본국에 보낸 것이다.
2012년 경향닷컴에서 만든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측근비리를 인포그래픽(정보+그래픽)을 보면 유전자 게놈 지도처럼 배열구조가 어지럽고 퉁퉁하다. 측근비리를 크게 친인척, 6인회(2007년 대선 때 이 대통령 원로자문그룹), 안국포럼(2007년 대선 때 이 대통령 경선캠프), 가신·청와대 참모, 대통령직 인수위·서울시 출신으로 정리하고 각 항목마다 검찰에 기소되거나, 구속기소되거나, 비리 의혹을 받은 인사들의 사진과 관련 내용을 실었던 것이다.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 비리에 연루됐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측근은 18명에 이른다”며 “7명은 수감 중이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거나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람은 4명, 검찰 수사와 맞물려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은 7명”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는 이명박의 외곽조직이었던 안국포럼 시절부터 집권을 도운 개국공신도 여럿 구속됐는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대표적이다. 이명박의 50년 지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4대강 전도사’로 불린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대출알선 및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일찌감치 기소돼 실형이 선고됐다.
최고 실세 ‘6인회’의 몰락
‘6인회’의 몰락은 이명박 정부의 몰락이자 덧없는 권불5년의 상징이었다. ‘6인 원로회의’(6인회)란 2007년 대선 당시 ‘형님’과 ‘형님친구’들이 주축이 돼 사실상 선거 사령탑 역할을 한 최고 의사결정 모임으로, 이명박 외에 형인 이상득 의원, 대통령의 정치멘토이자 이상득 의원 친구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국회의장,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김덕룡 전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로 구성됐다. 이들은 집권의 주역이었고, 집권 뒤에도 대부분 이명박 정부 최고의 실세로 일컬어졌던 인물들이다. ‘모든 것은 이들을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이 가운데 된 이상득 의원,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으로 한 박희태, 측근 비리로 위원장직을 사퇴한 뒤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8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시중, 총선 불출마 압력까지 받았던 이재오 의원 등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둬온 김덕룡 전 특보를 제외하고는 온전한 이가 없었다.
먼저 6선 의원으로 여당 대표를 지냈고, 국회의장 자리에도 오른 박희태 의장은 ‘노란 봉투’ 사건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친이계의 지원으로 승리했던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돌렸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자 국회의장직을 사퇴했다. 전직 비서는 국기문란사건, 사이버 테러로 불린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친형으로 ‘상왕’, ‘영일대군’,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 등으로 통했던 이상득 의원은 보좌관 뇌물 수수 혐의로 정계은퇴 선언 후, 동생이 ‘용서 받지 못할 범죄’로 규정한 저축은행 불법 자금수뢰 혐의로 구속, 1년여의 수감생활을 한 뒤 출소했다.
‘MB의 그림자’로 통한 ‘방통대군’ 최시중은 방통위원장을 연임하면서 언론계·통신계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그의 ‘양아들’로 불리는 정용욱 보좌관이 한국방송예술진흥원 김학인 이사장의 청탁과 함께 돈을 수억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그 역시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되었다.
‘왕의 남자’라는 애칭을 달고 다녔던, ‘정권 2인자’로 통하던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심복인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입지가 무척 좁아졌다. 한때 한나라당의 ‘잠룡’으로 분류됐던 그였지만 이명박의 인기 추락과 맞물려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 이 의원은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로부터 쇄신대상으로 지목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창대했던 6인회의 시작에 비해 그 끝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각종 연루설에 대해 아무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대신 측근이나 보좌진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더욱 지탄을 받았다. 결국 이명박식 실용정치의 기본은 말과는 달리 “민생고를 덜어주고 희망을” 주기는커녕 비리공화국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10여년전 인터넷상에서 유명했던, 유머 하나를 소개하면서 세 번째 글을 마치고자 한다. ‘곤란한 부탁’이라는 제목의, 한국사회에 만연된 지도층 부패와 관련한 씁쓸한 유머였다.
국가와 민족을 끔찍이 생각하던 애국자가 하늘나라로 갔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