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타임스]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느끼고 싶다, 이재간 기자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느끼고 싶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충분한 의견 교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힘이 강하든 약하든 같은 크기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며, 모든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며 공동체 생활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배우는 자세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러한 모습은 잘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학급회의는 학생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어른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사회의 통념이 학생들의 의견을 배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진리의 상아탑,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운 대학에서도 청년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2007년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국제캠퍼스 조성계획을 수립하였고, 2009년 경기도 시흥을 부지로 선정하였다. 관련 기관과의 양해각서 체결 등을 거쳐 지난 2016년 8월 22일, 시흥시와 배곧신도시 지역특성화 사업자(배곧SPC)와 실시협약을 체결하였다. 총학생회 측은 즉각 반발하였다. 실시협약 체결 전 열려야 하는 대화협의체가 없었고, 언론에 보도되기 3분 전에서야 통보받았다는 것이다(『대학신문』 2016년 8월 29일 자). 보도자료를 낸 대학 측의 주장은 조금 다르다. 25회에 걸친 총학생회와의 간담회와 대학협의회, 대토론회를 통하여 의견수렴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곧 갈등으로 이어졌다. 총학생회 측은 ‘시흥캠퍼스 대응을 위한 전체학생총회’에서 본부점거를 의결하고, 본부점거본부는 대학본부를 점령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학생 사찰 의혹과, 대학 측이 ‘어떠한 결정이 내려진 바 없다’고 밝혔던 RC(기숙형 대학)에 대한 문서 발견은 갈등을 증폭시켰다. 성낙인 총장까지 나서 학생의 의사결정 참여비중을 높이는 대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본부점거본부가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지난 3월 11일 학교 측과 점거 중인 학생의 물리적 충돌로 점거가 강제 종료되었다.

학교 측과 총학생회 측은 서로의 주장을 비판하는 한편 ‘소통이 부족했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본부점거본부 이시헌 정책팀장은 ‘시흥캠퍼스에서 산학협력 확대 시 기업에 의존하여 캠퍼스를 운영할 것이고, 이는 연구 비리 및 학생 피해로 되돌아올 것이다’라며 서울대가 폭력으로 밀어붙이며 돈벌이를 강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준호 학생처장은 ‘서울대학교는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라며 기업 특혜 및 실버타운에 대해 부정하였다. 또한 협약 과정에 있어 소통이 부족했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하며 대타협안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있었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본부점거본부와 직원 간 무력 갈등. 일부 학생이 소화기를 사용하고, 직원은 경찰과 소화전을 동원했다. (출처 :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페이스북)

경인교육대학교에서도 학교 측의 파격적 정책 결정과 불통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교육대학교의 학생들은 초등학교 교실에 방문하여 ‘참관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 실습지도교사 승진 가산점 폐지와 인천광역시 교육청 1교사 1교생 배정 지침 등으로 학교 수용 가능 인원이 대폭 감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인교육대학교는 결국 부설초에 교생 288명, 석수초등학교에 91명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습학교 신청 5일 전에 학생들에게 통보하였다. 부설초등학교 한 학급에 무려 12명의 교생이 수업을 참관하는 것이다.

총학생회는 근본적인 해결책 및 서면 약속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학교는 계속해서 답변을 미루었다. 실습 2주 전인 4월 4일에서야 교무처의 답변이 있었고, 이전부터 진행된 3회의 면담을 통하여 피해 대책을 논의하였다. 학교 측은 교육부의 비정기 감사로 인해 행정 업무가 늦어진 점을 사과하였지만, 올해의 참관수업 계획은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학생회 측은 교육청의 지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학교의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았다. 경인교육대학교의 참관·실습 학교 선정은 2015년부터 매해 논란이 되어오고 있다.

 

경인교육대학교 참관실습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 (출처 : 경인교육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이후 또 하나의 논란이 불거졌다. 참관실습 여학생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부설초등학교의 규정 때문이었다. 교무처장과의 면담 당시 부설초와의 협의를 요청하였던 부분이었지만 부설초등학교는 학교의 교직 문화를 이유로 거부하였다. 총학생회 측은 피켓 시위와 공식 성명 발표, 서명운동으로 대응하였지만 부설초 측에 요청한 답변을 아직 받지 못하였다. 4월 24일 현재 부설초등학교에서의 실습은 진행중이다.

 

 
경인교육대학교 여학우 권리 침해에 대한 총학생회의 입장. (출처 : 경인교육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일련의 사건 모두 학교와 학생 간 충분한 논의가 부족하여 발생한 갈등이었다.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 측과, 교수와 행정부서 중심의 학교 측 간의 대화가 부족하였다. 특히 서울대학교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이화여대의 경우는 소통의 부재 인한 사건이 발생한지 반년이 넘었지만, 갈등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는 학생총회와 학생 단식 등으로 총장 퇴진 및 시흥캠퍼스 협약 철회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5월 1일 서울대인 총궐기 진행을 앞두며 총장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배움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할 학생과 학교 간의 갈등은 왜 심화될까?

1987년 민주화 이후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민주화를 위해 단결 투쟁하던 총학생회에게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빠르게 개인화되고 각자의 학업을 더 중요히 여겼다. 또한 학생의 다양한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아지면서, 총학생회가 모든 의견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워졌다. 이에 총학생회장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고, 당선된 총학생회장은 다수의 의견을 대변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투표율이 기준을 넘지 못하여 총학생회 대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꾸려진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연세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등이 최근까지, 혹은 현재 비대위 체제가 이끌고 있다.

이렇게 될 때, 학교 측에서는 학교에 이익이 되는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 막힘이 적어진다. 총학생회장의 의견을 개인의 의견에 가깝게, 혹은 소수의 의견으로 치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섭 과정에서 투표 반영 비율도 영향을 미친다. 학교 관계자가 학생의 수보다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장과 학교 관계자 한 명의 표가 같은 ‘한 표’로 세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학생들이 거부해도 학교 측 관계자가 모두 동의하면 통과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협의 과정 자체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학생의 목소리 또한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학교 행정권자의 힘이 강력한 나머지 학생을 가볍게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이화여대 사태 때 한 교수의 ‘학교의 주인’ 발언이 큰 논란이 되었다. 해당 영상에서, 학생이 “학교의 주인은 총장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인이라고요.”라고 말하자 교수는 “학생이 주인이라고? 4년 있다가 졸업하는데?(웃음)”라고 대답했다. 이후 이화여대에 붙은 대자보에 따르면 교무처장 역시 ‘학교의 역사’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기득권이 가진 권위주의적 사고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민주화 이후 대학 총학생회를 비롯한 대학생은 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배움의 공간에서, 더 나은 학생들의 삶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목소리가 제 크기를 가질 수 있도록, 폭력 없는 회의 과정을 이끌어내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린 나이에부터 소통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복 입은 시민’ 프로젝트가 한 예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015년 학생자치활동 활성화 지원 계획’을 발표하며 “학생들의 자기결정능력을 기르고, 어른들과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교육청은 이를 위한 중점추진과제로 ‘학생회?동아리 활동 활성화’, ‘민주적 토론?합의 문화 장착’, ‘교원의 학생자치 지도 전문성 신장’, ‘학교?지역사회 학생참여 확대’를 정하였다. 모든 학교에 학생회실을 설치하고 ‘우리학교 대토론회’를 만드는 등 학교 내 소통 구조에 대한 많은 노력을 한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선유고등학교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학생회가 학급회의를 통해 모인 학생들의 의견을 대의원회의에서 논의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학교장에게 전달하였다. 안전시설 확충, 물품 요청과 같은 의견부터 스포츠 활동 등의 교육과정까지 학생과 교사 간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결정되었다. 또한 2014년부터는 ‘학생자치법정’이 구성되어, 벌점을 누적한 학생에 대한 동료 학생들의 숙고와 충분한 논의, 인도적 처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학생회는 2014년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학생자치활동 우수학교상’을 수상하였다.

 

선유고등학교에서 진행한 반짝 건의함.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모으기 위해 여러 방법을 구상중이다. (출처 : 선유고등학교 학생회 페이스북)

학생회에 대한 학생의 관심 증대 또한 필요하다. 학생회는 학생과의 활발한 의견 교환을 위하여 노력하고, 학생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많은 것을 건의하여야 한다.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수록 학생회가 학교의 의사결정권자와 동등한 위치에 오를 수 있다. 또한 학생회는 학교와의 소통 의지를 굽히지 않고,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시 타 학생회와의 연대를 비롯한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경인교육대학교의 경우 학생들에게 월별 카드뉴스를 통하여 총학생회의 활동을 전하고 있고, 카카오톡 옐로우아이디를 비롯한 SNS를 통하여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에서도 활동하며 공동행동 등에 함께하였다. 특히 부설초등학교 실습 학생 복장 규정 철폐를 위한 설문에서는 재학생의 절반에 가까운 1,000여 명의 학생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청년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야 한다. 국립대학의 총장 선출 과정이 간선제로 바뀌고 친정부 인사의 총장 당선 의혹까지 퍼지는 상황 속에서 학생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조리를 간과하지 않는 것, 소통을 통해 바른 길을 찾아나서는 것. 당연한 것이자 청년들의 책무이다.

이재간 기자 (0603j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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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722?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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