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타임스] '남 페미'와의 연애 -페미니즘과 이성애-, 서진석 기자

남 페미 와의 연애

-페미니즘과 이성애-

 

여성주의로 번역되는 페미니즘(feminism). ‘여성혐오’(misogyny)라는 번역만큼이나 대중에겐 직관적으로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말하거나,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추구한다고 말하는 게 굉장히 ‘우스꽝’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남성 페미니스트’ 혹은 ‘친 페미니스트’(pro-feminist)의 갑론을박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온 하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젠더 이슈가 터지고 있는 2017년, 이성 간의 연애 사이에 페미니즘이 자리하고 있는 커플들은 안녕할까?

세 쌍의 커플이 있다. 그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체성, 활동 정도, 연애기간은 가지각색이었다. 단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그들과 그들의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화학작용 안에 바로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생물학적 남성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로 정체성을 두려는 소위 ‘남 페미’와의 연애를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페미니즘이 연인 사이에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남 페미’와의 연애는 성평등할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린다.
A : 수원에 사는 대학생이에요. 페미니즘은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상에서 직, 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했어요. 하지만 스스로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을 두는데에는 고민이 있어요. 연애는 일 년 조금 넘게 한 거 같아요.
B : 서울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페미니즘을 알고, 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지는 2년쯤 되었고 애인과 만남을 시작한지는 일 년 정도 됐어요.

C: 대학에서 반 성폭력 학칙을 제정하고, 종종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등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습니다. 이성애는 가부장제의 존속에 가담하는 것이므로 남자랑은 연애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극렬페미였지만, 지금은 결혼한 유부녀이고, 지역 활동에서 보수적인 분위기와 적당히 타협하고 때때로 싸우기도 하는, 생활형 페미니즘을 구현하며 살고 있습니다.


 

페미니즘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A : ‘여성 인권’. 현실에서 여성인권운동 하는 걸 많이 봐와서요.
B : ‘내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 인생에 있어서 고마운 존재에요. 사고방식 등이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과 후로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바뀌었고 만족스러워요.
C: 굳이 페미니즘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아도, 깔려 있는 ‘의식’ 같은, ‘감수성’ 같은 무언가.

남성 페미니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 극단적으로 말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남자는 절대 여자가 될 수 없으니까요. 상대방이 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전적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남자친구가 남성 페미니스트(이하 남 페미) 모임을 가는 걸 보면서 여성 페미니스트들(이하 여 페미)과 다른 개념으로, 남 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남자들이 젠더 권력에 대해 인지하고, 내가 툭 말한 것도 여자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여성 페미니스트를 지지하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거 같고, 남 페미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같아요.
C : 어렸을 때는 규범적으로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 지를 두고 논쟁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저 사람이 보는 지점은 어떤 지점이냐에 더 관심 있는 편인 거 같아요. 같이 얘기하고 싶은 대상이랄까요.
B : 양가적인 감정이 있는 거 같아요. 남 페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을 보면 우선 신기해요. 페미니즘 담론을 말할 때 당사자지만, 당사자가 아닌 운동에서 ‘얼라이’로서 무언갈 하는 게 굉장히 힘든 걸 느껴요. 그래서 페미니즘이 본인이 선 위치를 포함한 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운동인데, ‘남 페미’가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종종 페미니즘을 본인의 이익을 위해 차용하는 걸 보고 분노하기도 해요.

남자친구가 페미니스트에 대해 정체성을 두거나 관심을 갖는 걸 알게 됐을 때 어땠는지

A : 남자친구가 페미니즘을 배운다는 걸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활동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론을 공부한다는 건 몰랐어요.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 시점부터 많이 싸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남자친구가 본인은 페미니즘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해서 했던 말이 저한테 상처가 된 적이 많았어요. 예를 들면, “나와 너는 동등한 위치니깐 다른 한국 남자들이 말하는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는 아닌 거 같아.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지키자.”라는 말을 했을 때 엄청 서운했어요. 나였으면 “우리 둘은 동등한 위치야. 내가 너도 지켜 줄 거고, 너도 나를 지켜줘야 돼.” 라고 했어야 했을 텐데 말이죠. 그런 부분들에서 가끔 싸우기도 하지만, 평등한 관계를 이해하고 만들기 위해서 배운다는 것은 기쁜 일이죠.
C : 애인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적극적으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전에는 내가 느끼는 공포감을 이해를 못했어요. 애인의 변화를 보면서 스스로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잖아요. 남녀 모두에게. 그래서 약간 피하고 싶었던 문제들이 다시 떠오른 느낌이었어요. 나도 어느새 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날카롭게 싸우고 비판하던 것에서, 이제는 적당하면 ‘좋게, 좋게’ 넘어가고자 하는 모습으로 변한게 아닌가하고 말이죠. 사실 남성들이 같이 고민하는 시기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과거에는 그냥 말조심하거나 수세적인 태도로 끝났던 게, 이제는 치열하게 함께 고민한다는 느낌. 긍정적인 거 같아요.
B : 만날 때부터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 애인과의 관계에서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잘해주지만 그런 쪽에는 의식이 아무 것이 없는 일반적인 ‘한남’(한국 남성). 실제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봐서 되게 신선한 느낌이 있었어요. 저보다 더 오래 공부했더라고요. 저도 배울 점이 많아서 인간적인 호감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남 페미에게 무조건 적인 호감을 느끼는 단계는 지난 거 같아요.
C : 남 페미라고 스스로를 규정 짓는 게 굉장히 위험한 거 같아요. 여자들도 많이 배우는 단계고 잘 모르는데 자기들은 다 안다는 느낌? 특히 남성들이, 멘스플레인이 심한 사람이, 그걸하는 순간 굉장히 위험한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너무 확신에 차면 의심이 가죠.

페미니즘이 이성애 연인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A : 본인이 기존 남성성을 벗어나 여성의 삶을 일부 살아보더니 일상생활에서 여자들이 사소하게 불편함을 겪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뭔가 여자를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관계의 변화를 별로 느끼진 못해요. 여성주의를 배우기전에 엄청난 ‘한남’이었던 사람도 아니었고, 여성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크게 다른 점은 못 느끼겠어요.
C : 많이 싸워요. 하루에 두 번 정도.
B : 어떤 걸로?
C : 생활과 관련된 일이에요. 제가 얘기하는 불만은 집안일은 되게 연속적인 건데, 설거지, 빨래가 따로라고 생각하는 지점이에요. 설거지 하고 주변을 치우는 일들이 연결된 건데, 애인에겐 다 따로 떨어진 문제인거죠.
B : 공감이 가요. 애인과 작년부터 같이 지내는데, 그 친구도 하기는 하지만 내내 불만이 있었어요. 가령 세면대 물때와 변기는 제가 항상 닦는 느낌이에요. 너무 화날 때는 밖에서 페미라고 하지 말고, 집안일부터 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C : 실천을 등한시하고 뭔가 사상적으로 추구하는 부분이 화가 나기도 하는 거 같아요.
B : 애인과 같이 있을 때 배달 음식을 시키면 제가 받고 싶지 않아요. 이 친구는 그런 마음을 전혀 몰라요. 생활에서 그런 공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고민을 가지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것도 있어요. 이 친구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고 공부를 하니깐 제가 그런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할 때 지지를 많이 해줘요. 어떤 행사가 있다고 정보를 건네주는 데 그런 부분에서 되게 좋아요. 공통적인 취미가 있는 연인들이 이런 느낌일 거 같아요.

남자친구가 페미니즘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본인이 변한 것도 있나
A : 저는 페미니즘의 ‘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남자친구가 워낙 페미니즘에 대해 적극적이어서 책을 읽어보게 됐어요. <그럼에도 페미니즘>을 봤어요. 흔히들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별거 아닌 거에 예민한 존재라고 치부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됐어요. 왜냐면 그들이 ‘폭력적’으로 이야기하고 했더니 이슈가 됐잖아요. 그런 것처럼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는 ‘미러링’ 할 수밖에 없는 맥락이 있는 거 같아요. 여자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어왔으니깐. 얼마 전에 서프러제트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서 나온 대사가 생각이나요. “남자들은 이렇게(돌을 던지는 것처럼 강하게) 말하지 않으면 듣지를 않으니깐요.”
C : 총체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자극이 온 거 같아요. ‘공백’ 같았던 페미니즘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작년 이후로 새로운 페미니스트, 남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남편도 바뀌고 나도 바뀌었어요. 나한테도 두 번째 각성의 시기가 온 거 같아요. 남자만 바뀌는 건 불가능할 수 있고,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바뀌는 거 같아요.
B : 콩깍지 일 수도 있는데, ‘남자 페미니스트면 이래야지’라는 느낌처럼 남성 페미니스트의 ‘올바른 표본’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 같아요. SNS상에서도 굉장히 많은 논의(남 페미, 로리콘, 성매매-성노동)가 있었는데, 자기 의견에 대해 내색을 하지 않아요. 실제로 여성이 착취당하고 대상화 되는 사회에서 가해자, 암묵적 동조자인 남성이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 뭔가 이상해지는 게 있거든요. 말할 수 없는 묘한 무언가.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남자친구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모습 속에서 저의 비중이 더 커졌으면.
B : 집안일부터 해라. 남을 설득하지 않고 본인이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해라.
C : 페북에 쓰지마. 고민 중인걸 글로 쓰지 말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미래정치센터 청년기자단 서진석 기자(ther13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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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705?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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