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문제 발생, ‘비상구’는 어디인가
임금체불, 부당해고, 상사의 부당한 업무지시. 노동과 관련한 문제는 노동 상황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지난 2월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이랜드청문회’가 보수정당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었다. 이랜드는 약 80억원이상의 임금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이랜드청문회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2월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실시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불참, 바른정당은 퇴장하면서 일정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대신 같은날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블랙기업 이랜드퇴출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에게 부가금 지급을 청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랜드’처럼 임금을 체불하고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한 기업에 제재를 가하기 위해 제안한 법안이다. 임금체불은 이랜드뿐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다른 일터에서도 발생하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노동 문제를 상담 및 해결하기 위해 정당이 움직였다. 바로 정의당에서 시행하고 있는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다.
▲<비상구>의 포스터 ⓒ 정의당 비상구.
2016년 12월, 정의당은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를 개방했다. 비상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의 노동문제를 상담 및 해결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개인의 노동 문제 해결을 넘어서 노동 문제의 공론화?의제화까지 진행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시에는 당 차원에서 법안을 발의한다. 비상구에서는 약 30명의 노무사가 상담을 한다. 법안 발의는 정의당 소속이자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이정미 의원이 함께한다. 이번 이랜드청문회나 ‘블랙기업 이랜드퇴출법’ 등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의했다. 이랜드 외식사업부의 임금체불로 인한 노동자의 피해를 구제하고 임금체불에 대한 공론화를 위해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상담부터 입법 발의까지 한 번에 진행하는 ‘비상구’의 관계자 최강연씨와 ’비상구‘를 통해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을 진행중인 A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의 의미와 역할
인터뷰에 응해준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의 관계자 ‘최강연’씨는 정의당 노동부 사무국장이다. 현재 당에서 노동 관련 업무 전반과 비상구·디버그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원으로 노동상담도 진행중이다.
‘비상구’는 비정규노동상담창구의 줄임말이다. 설립 목적은 ‘조직·미조직 노동자 노동문제 전반에 대한 당 차원의 개입과 당의 노동현안 대응 강화, 노동 상담 사례 의제화 및 언론화 등’이다. 비상구의 모태는 2016년 1월 29일 정의당이 설립한 ‘쉬운해고방지센터’이다. 쉬운해고방지센터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쉬운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정부 양대 지침이 위헌?위법이므로 무효화 및 폐기되어야 함을 주장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이후 쉬운해고방지센터의 확대 및 발전의 필요성이 당내에서 제기되었고, 2016년 12월 6일 비상구가 설립되었다.
‘비상구’만의 특색
기존의 노동관련 자문기관들은 노동 문제에 대한 상담과 해결 과정이 대부분이었다. ‘비상구’의 경우, 정당에서 시행하는 기관인 만큼 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비상구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자 정의당 소속 의원인 이정미 의원이 함께 하고 있다. 노동 상담을 통해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정미 의원실을 통해 문제의 공론화를 실시한다.
비상구가 제 기능을 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랜드 임금체불’ 문제의 해결 과정이다. 쉬운해고방지센터를 통해 노동 상담이 진행됐으며, 이 내용을 바탕으로 국정감사 때 의원실에서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감독 결과, 임금체불이 사실로 밝혀졌다. 비상구와 정의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공론화하였다. 이후 비상구에 이랜드계열 정규직노동자들의 제보가 날아들었다. 애슐리, 자연별곡 이외에 이랜드 전계열사에 관해 위법하고 부당한 사건들의 제보가 계속 들어온 것이다. 이후 국회환경노동위에서 이랜드 외식사업부 본사에 가서 임금체불에 대한 현장조사가 진행됐으며, 그 결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려고 했다.
최근 비상구에서는 ‘디버그’라는 IT 노동 전문상담센터를 개소했다. 디버그는 공인노무사, IT노동자, IT노조 간부, 정의당의 지역 활동가, 국회 환노위 소속 이정미 의원 정책담당 보좌관, 국회 미방위 추혜선 의원실 보좌관 등과 함께 팀을 꾸려 법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진행 중인 사안에는 ① IT노동 생태계 복원을 위해 다단계 하도급 폐해를 막을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 ②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가칭 ‘퇴근권 보장제’ 도입 등이 있다. IT 계열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가 많다. 이에 비상구는 ‘IT 노동법 온라인 강좌’를 실시하고자 계획중에 있다.
‘비상구’, 정당의 포퓰리즘적인 시도인가?
최강연 정의당 노동부 사무국장은 인터뷰를 통해 비상구의 입소문을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이랜드 사건 관련해서는 비상구의 집단 진정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차적으로 저희가 꾸준하고 성실하게 잘 한다면 입소문이 나지 않을까합니다. 영화처럼 백만 관객이 보고 재밌다는 입소문으로 인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것처럼, 저희도 입소문이 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가장 좋은 홍보 방안으로 입소문을 꼽았다.
비상구는 당원들보다 일반인들, 취업준비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한 취업준비생은 자신이 술을 잘 하지 못해서 걱정이라며, 직장에 들어가서 술을 어떻게 하면 묻기도 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산업재해, 해고나 징계를 물어보는 이도 있고, 노동조합 관련 규정에 대한 해석을 묻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정규직?비정규직 또는 노동조합 가입 유무에 상관없이, 예비노동자들까지 노동과 관련된 이들은 다양하게 비상구를 이용하고 있다. 상담은 전화나 온라인 게시판, 카카오톡 옐로우 아이디를 통해 진행한다. 내용은 주로 임금체불, 산재 신청방법 및 인정 범위, 부당해고에 대한 대처 등 노동권리구제 일반에 대한 것이다.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법제도 개선 요청이나 아이디어에 대한 내용도 있다.
‘비상구’의 향후 전개 방향 및 비전
비상구는 전개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잡고 있다. 하나는 노동 상담 체계를 더욱 안착화 시키는 것이다. 이정미 의원이 노동자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노동 상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노동인권교육의 실시이다. 정의당 교육연수단과 함께 기획부터 교재 제작, 실제 강의까지 진행할 예정이며, 당원뿐 아니라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강좌를 기획중에 있다. 세 번째는 상담한 내용 중에서 간단한 상담뿐 아니라 정책적인 부분, 집단적으로 해결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의원실과 함께 ‘기획사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정의당 비상구 담당자 <최강연>씨 ⓒ 이서연 기자.
다음은 최강연 노동부 사무국장의 ‘비상구’에 대한 비전이다.
“정의당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의 일상의 실현을 목표로 합니다. 노동기본권이 침해되었을 때 정의당 비상구에 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서 노동의 권익 침해를 잘 해결?해소하고, 이러한 권리들의 중요성을 잘 알려내고자 합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정의당 비상구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비상구 설립 초창기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많이 있었지만,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좋은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잘 기획해서 다양한 쪽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노동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연대하고, 노동의 문제가 곧 ‘생활의 문제’이고, ‘너와 나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시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 마지막으로 정의당 비상구가 말 그대로 비상구, 비정규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평가받는 곳, 신뢰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상구’ 이용자의 이야기
A씨는 일터였던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한 공공기관 ‘가’로부터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에 비상구를 통해 공공기관 ‘가’를 상대로 부당 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을 진행 중이다. ‘가’는 시간선택제 노동자 채용을 통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경력직 노동자를 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이 사건은 지방노동위원회가 공공기관 ‘가’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이 결과에 불복한 A씨는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구제신청 재심을 진행 중에 있다.
1. 정의당의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 정의당 홈페이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가’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고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 전에 승산이 있는지 등 전반적인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 내가 전화를 했을 때는 ‘쉬운해고방지센터’였었는데, 내 사건을 진행하는 중에 ‘비상구(비정규노동상담창구)’로 이름을 바꿨다. 그래서 내 사건이 비상구의 제 1호 사건이 되었다고 하더라.
2. ‘비상구’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 도움이 많이 됐다. 비록 지노위에서 지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고, 지노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이전에, 2015년도에 시간외수당, 사내문제로 노동부에 진정을 했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 ‘노동부에 진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진행 되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2015년에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할 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있는 노무사에게 상담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국가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비상구를 알게 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찾아갈 때마다 매번 다른 노무사가 상담을 한다. 내 문제를 전적으로 전담하고 총괄해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조각조각 도움을 받다가 이번에는 비상구를 통해 내 사건을 전담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까 참 편했다.
비상구의 노무사와 상담을 통해 진행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이대로 이상태에서 구제신청을 제기하면 기각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비상구를 통해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준비할 수 있었고, 내 선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자료들도 받을 수 있었다. 평가관련자료 같은 것들 말이다. 결과와 상관없이 수월하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의원실을 통해 (‘가’기관에) 질의가 들어갔고, 신문사를 통해 언론화도 됐었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에 증거로 제출했다. 아직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의 결과가 남아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크게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보다가, 그것도 우연히 정의당 홈페이지를 봤는데, 이런 곳이 있었다. ‘전화로 상담이나 받아볼까?’하고 전화했던 건데,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을지 몰랐다. 기대 이상의 도움을 받게 돼서 정말 고맙다. 기회가 되면 이 은혜를 갚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웃음). 이런 시스템이 나와 같은 사람들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널리널리 홍보가 됐으면 좋겠다.
3. ‘비상구’를 이용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나?
- 없다. 가뭄에 물 만난 듯 도움이 됐다(웃음). 다만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게 아쉽다. 비상구 관계자분들과 노무사님이 많이 고생해주셨는데, 결과가 좋지 못해 아쉽다. 그러나 결과와는 별개로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 고맙다.
<끝.>
이서연 기자 (syai12329@naver.com)
출처: http://www.justicei.or.kr/677?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