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양극화의 그림자 아래, 푸른 새싹들은 어디에서 볕을 쬐는가.
올 상반기 소설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문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 소설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태로 인해 다소 위축되어 있던 출판 시장이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잇따르는 이유다. 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작가 한강이 한국으로 돌아와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야기했던 소감이 눈길을 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더 드릴 말씀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글을 써서 책의 형태로 이야기하는 일일 거예요. 최대한 빨리 제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발언을 갈무리하며, “또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이 소설(채식주의자)만 읽지 말고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료 선후배 작가들, 묵묵히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 분들의 훌륭한 작품들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그가 일으킨 신드롬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와 폭넓은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작가의 소회라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이나 칸 영화제 등과 같이 문화 예술계에 굵직한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매스컴에서는 국내 작품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 작가, 한국 작품이 진출했는지 혹은 수상했는지에 관한 여부는 매번 세간의 관심을 몰고 다닌다. 그러나 성과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를 뒷받침할만한 주춧돌이 존재하는지 대한 구조적인 담론은 매번 소외되는 듯하다. 특히 기성 작가들로 성장하는 중에 있는 청년 작가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그들을 배양할만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찾아보기는 더욱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풍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번 맨부커상의 후광 역시 일회성으로 사멸할 가능성이 높다. 작가 한강이 인터뷰에서 말하듯,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작가들, 그 중에서도 업계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한 청년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시점이다. 온갖 청년 문제로 많은 청년들이 허덕이는 요즘 시대에, 청년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은 한 바탕 꿈이었던가, 졸업과 동시에 마주한 현실의 벽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 중 다수가 관련 전공을 선택한다. 문예창작, 실용음악, 연극영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기초 체력을 기르며 꿈을 키우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졸업이 다가올수록 현실적인 부담감으로 인해 시름이 깊어진다. 애초에 꿈꾸었던 작업 현장을 그저 한 바탕 꿈으로 미뤄두고 마주한 현실 앞에서 방향을 바꾸는 이들이 많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한수민(가명, 26)씨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 본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고, 봉준호 감독 같은 영화감독을 꿈꾸었다는 그는 올해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본인이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당장의 감독 데뷔는 요원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아울러 생계에 대한 부담감이 겹치면서, 진로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최근 영화 배급사나 투자사에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졸업을 하고, 작업 현장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난관이 많다”라고 어렵게 입을 뗐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들도 많은데 혼자만 현실에 불평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지만, 실상 영화계에서 스태프들이 받는 대우를 생각하면 그것을 직업으로서 유지할 수 있을 지에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영화를 업으로 삼고 노동을 하기에는 노동을 통해 생존권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서 그는 “내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시나리오를 공모하여 감독에 데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며 “국내에서 그나마 인정해주는 단편 영화제들 같은 경우, 한국예술종합학교나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 대부분 수상해서, 커리어를 쌓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강세를 보였던 동국대나 중앙대도 요즘은 힘들다는 그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정규 커리큘럼(한예종, 아카데미, 특정 대학 연영과)을 이수하거나,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로 시작해서 도제식으로 배우거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채택되는 경우 세 가지 중 한 가지 밖에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영화를 끝까지 고집하지 못한다. 그 중 대부분이 결국 돈벌이와 연관된다. 아까 언급한 세 가지 방법들 중 한 가지라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늘 시간에 쫓기면서 생활비나 학비까지 걱정해야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선배들과 이야기 해보면, 경력이 오래된다고 그리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도 밀린 상태라, 일단은 돈을 벌기로 타협했다. 나는 가난한 미래가 두렵다”고 답했다.
본업과 생업의 기로에서
위와 같은 갈등은 단순히 졸업생 신분에서 끝나지 않는다. 졸업 이후에 예술을 선택해서 이를 통해 생계까지 벌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해 생업을 따로 구해야 하는 경우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지방 소재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김지연(작가, 31)씨는 작가 데뷔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생활비가 부족하여 낮에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카페에서 글을 쓴다.
졸업 직후에는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였다가 2년 후에 퇴사했다는 그는 “한국에서 무명 작가가 작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자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그 생각으로 취업 후에 2년 정도 돈을 모아 퇴사했고, 문예지에 소설을 공모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자본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당선되지 못했다”며 “지금은 낮에는 생업으로 아이스크림을 팔고, 밤에는 글을 쓰고 있다. 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할지는 매일이 고비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본업과 생업이 나누어지는 현상 자체를 그리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며 “다만, 생업과 동시에 본업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둘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취업을 한 직장은 시간을 지나치게 잡아먹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자니 생활비에 허덕인다. 주변 작가지망생 중에는 생업은 포기하고, 부모님께 빌붙어 복권 긁기 식으로 공모 당선을 바라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예지에 당선되면 전업작가로서의 삶이 열리는 것인가라고 물은 질문에는 “아는 선배 중에 모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사람이 있는데, 요즘 택배기사를 한다더라. 공모에 당선되는 것과 전업 작가가 되는 것, 글을 청탁 받는 것, 나아가 자신의 책을 출판하는 것은 다른 얘기인 것 같다. 물론, 나도 아직 업계에 발을 들여보지 못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낫겠지, 언젠간 글만 써도 세끼 식사 정도는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지 라고 희망하며 묵묵히 글을 쓰는 수준이다”라고 대답했다.
예술계에 드리운 양극화의 그림자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이 예술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 수입은 평균 1,255만원이다. 조사 결과 예술인의 50%는 예술 활동 외에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겸업 예술인으로 나타났다. 위의 표를 참고하면 활동 수입이 전무한 사람이 36.1%를 차지한다. 아울러 2015년 최저 생계비였던 617,281원/월을 기준으로, 이에 못 미치는 500만원 미만/연 수입의 비율인 18.9까지 합하면 50%에 가까운 예술가들이 최저 생계비 미만의 수입으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월 평균 소득으로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비율은 2/3를 차지한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이렇듯 각박한 현실에도 1년간 지원금 후원자는 평균적으로 19%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예술인 복지를 지원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예술인들이 창작 지원을 받는 데 있어서 ‘조건이 까다롭다’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등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실태 조사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피부에 와 닿는 예술인 복지법의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신인 예술가, 청년 예술가의 경우 아직 본인의 예술적 성과에 대해 가시적으로 입증할 결과물이 부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실직적,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지원금 운영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것을 통감한다”면서 “복지 재단의 절차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적정선으로 판단하고 정했다”고 설명했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라는 책을 저술한 경제학자이자 시각예술가인 한스 애빙의 인터뷰는 논의할만한 담론을 던져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예술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 수준이 빈곤선 이하인 비율은 전체 예술가의 40% 정도"라며 "예술가의 94%는 노동자의 평균 수입 이하"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고작 6%의 예술가만 예술계에서 명성도 있고 부도 있는 셈이죠. 경제학자들은 예술가들이 수입이 낮아도 (작업을 해서) 행복하니까 그만두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수입이나 명성 등 모든 게 낮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상위에 속하는 소수에 포함되지 않는 이상 결국에는 다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즉, 수입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예술을 시도하는 열정페이가 예술업계의 구조적 착취로 악순환 된다는 것이 한스 애빙의 주장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한스 애빙은 정부의 지원이 해답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는 예술가들이 정부 지원을 받으면 더 이상 시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정부 지원은 예술가들의 경쟁을 왜곡하고 예술계의 빈곤현상만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들 스스로 연대함으로써 자신들을 착취하려는 이익집단들과 구조적 모순에 맞서야 한다. 이는 정부의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정치적 개입으로 인해 예술적 자유를 방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예술가들도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적인 참여를 할 수 있어야
예술가들 스스로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데에서는 국내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어 보인다. 화가이자 공주대 명예교수인 김정헌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예술가들은 정치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예술 활동만으로 자기 생존이 보장되지 못하는 한국의 실정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이 어쩔 수 없이 예술 활동 외에 다른 생업을 가진다. 그러나 그마저도 요즘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고 개탄하며, “예술계에도 분명히 빈부격차가 존재하며, 아마 사회일반의 빈부격차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이번에 위작 사건으로 문제가 된 이우환씨의 경우에서 보듯, 작품 한 점이 수십억을 호가하는 1%가 있는 반면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젊은 작가들이 99%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한국 에도 여러 문화재단이나 예술위원회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기업에서 만든 사설 문화재단 등이 예술가들에 투자한다.”고 말하며, “미술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시립 미술관 등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젊은 예술가들에게까지 선순환 되지 못하고 기성 미술인들을 지원하는 데에서 그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녹색당 등에서 주장하는 예술가 기본 소득제도 등을 도입하는 것도 청년 예술가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예술가들에 대한 행정적 지원이나 제도적 기반이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한국은 예술이 직업으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신인 예술가들이나 청년 예술가들이 살아가기 힘든 나라”라고 말하며, “이러한 현실에서 예술가들 각각이 스스로의 처지에 걸맞는 정치적인 입장을 갖지 않고 살겠다는 것은 자기만 무중력에 살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누가 그들을 벼랑으로 인도하는가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에 못 이겨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그는 이웃집 대문에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남는 밥이나 김치가 있다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달라’는 쪽지를 남겼다. 이 후 예술인 복지법(최고은법)이 제정되어 이러한 예술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럼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난의 그림자 반대편에서 매스컴은 끊임없이 문화 예술적 성공 사례들을 선전한다. 성공한 음악가, 영화감독, 배우 등 예술 업계에서 한 자리 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삶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부러움, 질투를 동시에 사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그들 나름의 노력과 노동의 결과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많은 청년 예술가들은 그러한 삶을 꿈꾸며 오늘도 자신의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묵묵히 나름의 노력을 하는 나머지 90% 이상의 사람들은 마땅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 전반에 드리운 양극화의 그림자는 예술 업계라고 예외로 두지 않는다.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예술 분야 전반에서 승자 독식 체제의 수익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에 관하여 청년 예술가들 스스로가 노동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하는 시점이다. 예술가는 직업이며, 직업이라면 노동을 통해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작업 활동을 권위 있는 노동 행위로서 자각하고, 그에 합당한 가치와 보수, 직업적 자유를 보장 받기 위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예술 업계 안에서 상생과 공존을 위해 서로 계속해서 협의하고 연대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아울러 이와 관련한 정부 지원 역시 보다 실효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가난이 두려워서 더 이상 예술적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청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청년 문제를 뛰어 넘어, 문화 예술계가 보다 안정적으로 인적 자원을 배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과정에 속한다. 맨부커상, 노벨문학상, 각종 해외 영화제의 수상 실적을 논의하기에 앞서 그러한 성과를 뒷받침할만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방향성을 맞춰야 한다. 예술계까지 드리운 양극화의 그림자 아래에서 또 다른 거목을 길러내기 원한다면, 자라나는 새싹들이 숨 쉴만한 양지바른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628?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