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인 용모 규정, 이제 그만!
용모 규정에 담겨 있는 성차별적 편견은 성평등을 가로 막는 장애물 중 하나다. 대다수의 아르바이트 일터나 직장 내에는 용모 규정이 존재한다. 특히 서비스 업종의 경우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좀 더 엄격한 용모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용모 규정 속에는 성차별적인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성평등 의식의 향상을 위해서 용모 규정에 내재된 성차별적 요소는 폐지되어야 한다. 용모 규정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정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용모 규정 속 성차별
(사진 : 직업경력센터 주관 병원코디네이터 강의 중 5강 <서비스 행동 관리 요령> 중)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실례되는 행동이다."
직업경력센터에서 주관하는 병원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강의 중 5강에 나오는 문장이다. 서비스 행동 관리 요령 중 여성의 화장과 관련한 수업에서 사용되었다. 이 발언은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동시에 화장하지 않은 여성을 '예의 없는' 여성으로 만들었다. 엄연한 성차별적 발언이다.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인 S사 역시 직원 교육 시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한다. S사에서 근무 중인 A씨(25세, 여성)는 "교육할 때 여성에게는 화장을 하고 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어요. 여성이 화장을 안 하고 오면 초췌해 보이니까 여성 직원은 꼭 화장을 하고 와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남성에게는 화장을 강요하지 않잖아요. 남성도 화장 안 하면 초췌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죠."라며 여성에게 화장을 강요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화장을 여성에게 강요하며 이를 예절의 척도로 보는 것은 '화장=여성의 필수'라는 기존의 성적인 고정관념을 적용한 것이다. 화장의 강요는 '여성의 외모는 꾸며야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외모지상주의로 이어진다. 화장은 선택이다. 민감한 피부라는 이유 때문에 화장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의 화장을 예의의 척도로 삼는 것은 성차별적인 행동이다.
앞서 언급한 발언이 성차별적인 다른 이유는 남성에게는 화장을 하라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발언이 성평등한 발언이라면 남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화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성차별적 발언의 기준은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 쪽의 성별에게만 적용하는지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에 근거한 차별이 아니기에, 성차별적인 규정인 것이다.
성차별적 용모 규정이 야기하는 건강의 위협
성차별적 용모 규정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하이힐이 대표적인 예이다. 하이힐은 몸의 체중을 앞으로 쏠리게 하여 근육과 관절을 긴장하도록 만든다. 오랜 시간 착용할 경우 긴장한 근육과 관절에 염증이 생길 수 있다. 더하여 척추질환도 유발한다. 최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을 통해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데이비드 에이거스 박사는 하이힐이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이힐을 오래 신어서 생긴 염증은 세포 조직에 손상을 일으킨다. 염증이 계속되면 DNA 복구 과정이 종료될 수 있고, 몸은 암에 더 쉽게 걸리는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에이거스 박사는 말했다. 하이힐을 근무 시간 내내 신어야 하는 규정이 있다면, 하이힐 착용자는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 하이힐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2015년 12월 영국의 한 여성(니콜라 소프, 27세)은 용역 공급 업체를 통해 PwC 회계법인 안내데스크에 임시직으로 파견되었다. 용역회사 담당자는 사내 규정을 근거로 니콜라 소프에게 하이힐을 신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여성은 이를 거부하고 단화를 착용하였다.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니콜라 소프는 용역 회사로부터 귀가 조치를 받았다. 이에 니콜라 소프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복장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착용해야 하는 것에 부당함을 느끼고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받았다. 그 결과 5개월 만에 14만 명 이상이 이 청원에 서명하였고, 현재 영국 의회는 관련 법안 제정 및 개정을 논의 중이다. 한편 회사는 근무 시간에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한 상태다.
여성에게 성차별적인 용모 규정으로서 건강에 위협을 주는 요소로 하이힐이 있다면, 남성에게는 넥타이가 있다. 넥타이는 몸을 경직되게 하고 척추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넥타이를 세게 맨 경우 넥타이를 매지 않았을 때보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혈액순환의 둔화로 인하여 뇌졸중을 유발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넥타이는 안압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안압의 증가는 백내장이나 녹내장과 같은 안구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쿨비즈' 정책의 일환으로 여름에 넥타이를 필수적으로 매야 하는 기업은 많이 감소했다. 그러나 넥타이를 매지 않는 정책은 여름에 한정된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이 여름 외 계절엔 넥타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노동자의 자유로울 권리
탈색을 하고 민트색으로 염색을 한 B씨(23세, 여성)의 경우, 염색을 한 다음 날 바로 검은색으로 다시 염색을 하였다. B씨가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사장이 머리 색이 단정하지 못하다며 다시 염색을 하고 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B씨는 "염색을 다시 하고 오란 사장님의 말씀에 화는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인 내 입장에선 사장님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했다. B씨처럼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생 및 근로자는 염색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직원의 머리 색 또한 회사 내지 일터의 이미지라는 이유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리 색의 제한, 복장 규정 등 엄격한 용모 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노동자의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 헌법은 개인의 신체에 대하여 신체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헌법 제 10조와 제 37조 1항) 헌법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국가 대 개인의 관계이지만,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 즉, 노사간의 관계에서도 개인 신체의 자유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는 아르바이트생 혹은 근로자는 '갑'의 위치에 있는 아르바이트 일터 혹은 직장 내 용모 규정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강제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용모 규정은 모든 직업, 회사별로 다르기 때문에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용모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부당한 규정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성차별적인 용모 규정은 노사간의 계약이기 이전에 '차별'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한 예로 2013년 A항공사는 여성 승무원이 치마만 입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 여성 승무원에게 치마만 입게 하는 것은 차별이므로, 바지와 치마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용모 규정은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제거한 선에서 이루어졌을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624?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