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기청년기자단]고시원, 하숙 전전하는 대학생, 진짜 원인은?(조다운 기자)

 

[미래정치센터] '헬조선' 청년들의 거주 문제 (프레시안 공동게재)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 좁은 복도를 따라 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중 하나를 열자, 습기로 가득 찬 좁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 한편에는 가슴 높이쯤 되는 옷걸이가 놓여 있고, 천장 바로 밑 빨랫줄에는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옆에는 화장대를 겸하는 작은 책상과 신발 몇 켤레가 겨우 들어갈 만한 신발장이 있다.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에 자리를 내주니, 방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자리밖에 남지 않았다.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에어컨이나 선풍기는 꿈도 꿀 수 없다. 공간이 없다.

 

방문을 닫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 끝에 허름한 초록색 문이 하나 있다. 6개 거주자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 겸 샤워실이다. 바로 옆에는 1층과 2층 총 12개 방의 거주자들이 쓰는 공동 세탁기 한 대가 큰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다.

 

청년 취업난의 상징이 된 고시원 이야기도, 고령 사회 빈곤 노인들의 쪽방촌 이야기도 아니다. 2016년 서울시 한복판, 캠퍼스의 낭만과 설렘이 가득해야 할 대학가 하숙집 이야기다.

 

 

 

2013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 기자 회견 모습. 청년들은 박근혜 당선인이 내세운 '기숙사 수용률 30%' 등 청년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대학 입시'보다 더한 '기숙사 입주' 경쟁

대학가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하숙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원룸 등의 자취방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이모 씨(22, )는 학교와 5분 거리 원룸에서 자취하고 있다. 다른 자취방보다 10만 원가량 저렴한 월세 때문에 입주했지만, 환경은 좋지 않다. 주변 술집에서는 취객들의 고성이 밤새 끊이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는 가로등이 없어 한밤중 귀가를 망설일 정도다. 옆 건물과 바짝 붙어 있어 방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1주일에 수차례 바퀴벌레가 출몰해 집주인에게 조치를 받았지만,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노련한(?) 바퀴벌레가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이 씨가 처음부터 자취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다른 지방 학생처럼 그도 처음에는 교내 기숙사 입주를 신청했다.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서울 한복판에서 보증금 없이 비교적 저렴한 월 30만 원으로 쾌적한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숙사 배정에서 탈락했다. 그 해 기숙사 입주 경쟁에 수천 명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 씨가 다니는 대학교 서울캠퍼스 재학생은 13000여 명. 하지만 기숙사 정원은 겨우 700여 명이다. 우선 배정 대상인 외국인과 교환 학생을 제외하면, 500~600명의 자리를 놓고 수천 명의 학생들이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대학교 본교의 기숙사 수용률은 2015년 기준 6.1%. 수용률이 낮다는 수도권 대학 중에서도 최저 수준이다.

대학교의 사정이 오히려 나은 것일 수도 있다. '대학알리미'2015년 기숙사 수용 현황 공시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에 위치한 대학 중 62개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10%에도 못 미쳤으며 이들 대학 중 23개가 서울에 집중해있다. 서울 지역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평균 10%. 서일대, 숭의여대 등은 수천 명이 재학 중임에도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고 있으며, 비교적 큰 규모의 4년제 대학 기숙사도 광운대 1.7%, 한성대 3.3%, 동덕여대 3.3% 등 수용률이 5%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대학생 218만 명 중 40%가 넘는 88만 명의 학생들이 집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다고 하니,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고 열악한 원룸이나 하숙집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이 씨는 "기숙사 비용도 그렇게 싼 건 아니지만, 보증금이 필요 없고 월세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냉·난방비 부담도 줄어드니, 기숙사에 살고 싶은 게 사실"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기숙사 신청은 이미 포기했다""배정받는다고 해도 다음 학기에 또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늘 쫓겨날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아쉽지만, 2학기에도 이 방에서 계속 자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 부동산 검색을 통해 정리한 대학가 원룸 시세. ?미래정치센터(조다운)

 

기숙사, 개인의 권리 침해하며 벌점 부과

대학생 김모 씨(24, )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향토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2인실 기준 월 15만 원으로 저렴한 비용에 만족하고 있지만, 불만이 없지는 않다. 매일 밤 11시면 저녁 점호를 하는 방침 때문이다. 점호를 어기면 벌점이 쌓이고, 벌점이 누적되면 쫓겨난다. 그 외에도 빈번한 사생 교육과 각종 '필참(반드시 참석)' 행사까지 김 씨는 여가나 주말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천모 씨(21, ) 역시 기숙사에 불만이 많다. 불시에 진행되는 '생활 점검' 때문이다. 기숙사라고 해도 방은 엄연한 개인 공간인데, 누군가가 함부로 물건을 뒤진다는 게 꺼림칙하다. 정기 생활 점검 때 잠깐 졸다가 '태도 불량'이라며 벌점 5점을 받기도 했다. 군대식 점호에 '태도 불량' 벌점, 지성인을 키운다는 대학의 현주소다.

 

심지어 몇몇 사립대학 기숙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학생의 권리를 노골적으로 침해하고 있다. 서울 시내 여자대학교 기숙사는 사칙에 따라 "사감의 승인 없이 학생회 활동 및 정치적, 종교적 불법 집회 등을 개최"할 경우 벌점 10점을 부여한다. "벌점이 15점 이상인 경우 예외 없이 퇴사"시킨다는 규정 때문에 학생들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설립한 대학교 경주캠퍼스 기숙사는 "생활관에서 건학 이념에 반하는 타종교 선교 행위" 시 퇴사에 해당하는 벌점 10점을 부여한다. 1700여 명에 달하는 기숙사 거주 학생들은 '종교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의 권리마저 포기해야 한다. 기숙사가 아니면, 고액의 월세를 감당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헌법'은 너무 멀고 '벌점'은 무서울 만큼 가깝다.

 

대학생 오모 씨(21, )"문제가 있다고 해도 보증금 몇 천만 원과 월세 40~50만 원을 부담하는 것보다는 낫다""간신히 들어간 기숙사인데, 퇴사를 감수하면서 부당한 사칙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숙사 수용률 올리고 인권 침해 막을 대책 필요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대학생 기숙사 문제 해결을 위한 공약을 쏟아낸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학 기숙사 확충'을 대표 청년 공약으로 내세웠다. 행복(연합) 기숙사를 신축하고 사립대학에는 기숙사를 위한 융자를 지원하고, 서울시 임대 주택 등을 통해 기존 수용률 18%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행복(연합) 기숙사는 516명 규모의 '홍제동 행복(연합) 기숙사' 단 한 곳뿐이다. 대학교 기숙사 수용률 역시 2015년 기준 18.3%로 큰 변화가 없다. 대통령의 임기가 16개월 정도 남았으니, 사실상 공약 이행 실패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행복(연합) 기숙사를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년 2개소씩 건립"하겠다고 외쳤다.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공약을 축소해 다듬은 '공약 역행'이다.

 

 

18대 대선()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약집 비교. '기숙사 수용률 30% 확대''행복(연합) 기숙사 매년 2개소씩 건립'. ?새누리당 홈페이지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공약집을 통해 현행 '대학 설립·운영 규정'에 기숙사 수용률을 규정하고, 규정된 수용률을 대학 평가 지표에 활용하겠다고 했다. 지난 4'대학교육연구소'는 현안 보고 자료를 통해 수용률 규정이 "의미가 있는" 공약이지만 '대학 설립·운영 규정'의 법적 강제력이 높지 않으므로, "기숙사 설립 의무 규정을 강화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대학생 기숙사 문제와 관련한 공약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정진후 전 의원은 19대 국회 임기 중 '고등 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을 대표 발의해 고등 교육법에 기숙사 수용률을 대통령령에 의해 정하도록 명시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이는 더민주의 '기숙사 수용률 명시' 공약보다 앞선 것이었지만, 계류되었다가 자동 폐기되었다.

 

원내 4개 정당 중 기숙사 사칙의 인권 침해 요소를 지적한 정당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청년층 일각에서는 "정당들이 청년표에만 관심 있지 청년 실생활에는 관심 없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선거철이면 내일은 편안하게 걱정 없이 살게 해주겠다는 정치인의 말을 기억하며, 청년은 오늘도 비좁은 단칸방에서 뒤척인다

 

 

 

프레시안 기사보기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0294&ref=nav_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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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609?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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