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의 역설 - 정치영역의 축소는 국민불행을 가져온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영국사회가 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국민투표 에 대한 일부의 비판과 함께,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의 보수당 내부 권력 장악과 다가올 2015년 총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집권 플랜이였다는 주장도 있다.
브렉시트 투표 직후 영국 국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410만명이 넘게 재투표 청원을 했지만 영국정부는 이를 기각했다.
영국 국민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안해도 될 투표를 시작하게 만든 건 카메론 총리이다. 미래에 대한 혜안 없이 총리 자신의 권력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국민투표를 택했다.
투표 결과는 매우 잔인했다. EU 탈퇴가 과반수를 넘기긴 했지만 51.9% 대 48.1% 라는 결과는 그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당연히 잔류를 원했던 사람은 수긍하기 힘든 결과이다. 나라 전체를 반으로 갈라놓았고 서로에 대한 상처와 혐오는 더욱 심화되었다.
국민투표는 정치인에게 악마의 성배와 비슷하다. 민주적 절차를 확보할 수 있고 자신의 지지 세력을 확실하게 규합할 수 있다는 점은 정치인에게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하더라도 이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브렉시트와 같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문제에 탈퇴냐 잔류냐 즉 O, X 답안지를 주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는 EU 잔류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싶지만 사회 문화적으로는 이민자나 난민들에 대한 반감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이민자와 난민들에 대한 포용과 유대감을 강조하면서도 EU 통합으로 인해 경제적 이익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구춘권 교수는 “브렉시트와 같이 중대하고 복잡한 일을 단순 국민투표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이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의 책무이자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쁘다. 오늘날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사회에서 어떤 정치적 사안을 놓고 국민들이 시험 준비하듯이 공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도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구춘권 교수는 “탈퇴진영의 캠페인은 이점을 잘 보여준다. 이민자와 난민을 거의 괴물처럼 묘사를 하며 이들이 영국국민들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식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캠페인을 진행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반대진영의 캠페인은 경제, 금융적 이익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브렉시트 투표 자체를 반대했던 노동당과 집권하기 전의 입장과 180도 다른 카메론 총리의 캠페인을 신뢰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의문이였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이 의문을 가진 영국 국민들이 더 많았다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국민 뜻대로 하는 정치는 그 국민과 함께 망할 수 있다.
국민투표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대다수 국민들이 국민투표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절차와 결과에 대한 공감과 합의 및 주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점이 확고해졌을 때 시행하는 것이다. 모든 정치적 사안을 투표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치의 파업과 다르지 않다.
브렉시트는 국가적 중대사안이고 모든 국민에게 구속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국민투표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도 있다. 통일문제연구소 이천석 교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자체는 시행할 수 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탈퇴냐 잔류냐를 단순 과반으로 설정하기 보다는 3분의 2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즉 대다수 국민들의 의견이 모아졌을 때 효력이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브렉시트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낙관론과 비관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미래에 대한 예측은 섣불리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간다면 이 책임은 누가 지는 것 일까? 국민투표로 결정했기 때문에 국민이 져야 하는 것 일까? 정치의 공백이 불러온 이 사태에 대한 책임소재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590?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