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정치센터 블로그기자단 프레시안 공동기획] "국회 무급 경력이 '취업' 스펙?" 이하나 기자

국회 무급 경력이 '취업' 스펙?

[미래정치센터 블로그기자단] 의원들, '열정페이 근절' 외치며 공짜 인턴 채용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국회의사당 역에 내려 국회 모 의원실로 9시까지 출근한다. 의원실에 온 우편물을 분류해 비서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민원 업무를 하고, 의원님에 대한 언론 보도와 해당 지역구 및 소속 상임위원회의 보도 등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의원회관 1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후, 의원님의 홈페이지와 SNS 관리를 시작한다. 틈틈이 상임위 질의서와 각종 행사의 축사도 작성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의원실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커피도 타고, 의원실 택배 수령과 회의실 정리 등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한다. 힘은 들지만, 많은 것을 얻고 또 배우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보람차다. 하지만 나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하는 '무급' 인턴이다. 얼마 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국회에서 입법보조원으로 일하는 A씨(여·24)의 일과)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는 입법보조원이라는 이름으로, '무급' 인턴이 존재한다. 노동을 한 자에게는 임금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유노동, 유임금 원칙'에도 불구하고, '유노동, 무임금'이 버젓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국회에 출근하는 입법보조원 A씨가 찍은 국회의사당, C 미래정치센터 블로그기자단

 

"무급이지만, 치열하다"

 

국회 홈페이지 내 '의원실 채용'을 보면, 인턴 비서부터 4급 보좌관까지 각 의원실에서 진행하는 채용 공고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입법보조원 모집'이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게시되며, 평균 500 이상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채용 공고가 올라오기 무섭게 수십 명의 청년들이 지원, 공고 며칠 만에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대해 국회 보좌관을 지망하는 대학생 김 씨(남·26)는 "정치와 정당에 관심이 있어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 바로 국회다. 하지만 유급 인턴 자리도 녹록하지 않은 현실에, 비록 무급일지라도 스펙과 경험을 쌓기 위해 지원한다"고 말했다.

 

 

▲ 국회 입법보조원을 모집하는 글. C 국회 홈페이지

 

 

국회 무급 경력이 '취업' 스펙? 

 

의원실 대부분은 입법보조원을 모집할 때, 무급(식사제공)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의원실에 따라 교통비나 별도의 수고비를 제공하지만, 공직선거법 등을 이유로 대부분은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며 '무급'을 내세운다. 

 

모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으로 일한 김 씨(남·26)는 "물론 국회에서 많이 배우긴 했지만, 매일 늦게까지 일하며 외근도 밥 먹듯 했지만,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해 매우 씁쓸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무급으로 입법보조원을 뽑는 의원실은 대개 경력증명서와 취업 추천서 등을 통해 '스펙'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은 입법보조원 채용 공고에 '그동안 저희 방 입법보조원 생활을 하신 분들의 경우, 다 취업으로 인해 잘돼서 나가셨습니다'라며 입법보조원 경력을 다른 취업의 스펙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 씨(여·25)는 "지금까지 있었던 입법보조원들이 취업 잘돼서 나갔다고 해서, 무급으로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인가"라며 비판했다. 

 

▲ 무급 인턴(입법보조원)을 모집하는 채용 글. C 국회 홈페이지

 

 

정의당이 조사한 '국회인턴, 입법보조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입법보조원의 경우 주 평균 근로시간이 47시간에 이르며 노동조건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거철이나 국정감사 기간에는 업무량이 2~3배 가까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입법보조원으로 일했던 백 씨(여·21)는 "국회에서 실무를 배우고자 지원했는데, 실상은 커피 타기, 의원실 사무 정리 등을 주로 했다"며 "근무하는 동안 '지금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했다.

 

국회 인턴 경험을 한 이 씨(여·24)는 "의원부터 무급 입법보조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눈이 아무리 밝아도 제 코는 안 보인다'라는 말처럼, 국회의원들은 청년들의 '열정페이 근절'을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취업이 힘든 청년들을 상대로 무급 채용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방송인 유병재 씨가 자신의 SNS에 '청년 열정페이'를 비판했다. C 유병재 페이스북

 

"무급 인턴에 대한 의원들의 인식개선 절실"

 

국회에서 일하는 청년 인턴들은 지난해 10월 열악한 처우에 대해 시정 요구를 위해 '국회인턴유니온'을 결성했다. 노동과 반비례하는 임금을 받는 국회 인턴과 무급으로 일하기 일쑤인 입법보조원의 부당한 처우를 알리기 위해서다. 

 

이영철 국회인턴유니온장은 인턴 무급 채용에 대해 "입법보조원에 대한 급여는 선거법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법에서 문제를 삼는 것은 실제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금품 제공 등이 이뤄질 때"라며, 현행법상 입법보조원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또 "국회의원이 입법보조원에 대하여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고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국회의원의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입법보조원 당사자가 직접 국회인턴유니온에 동참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땀의 가치가 정당하게 대우받는 그날까지 지속적으로 인턴제도에 대한 논의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5%의 조직률을 보이는 조합원을 더 확대해나가 다수의 목소리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국회사무처와 교섭해나갈 예정"이라 밝혔다.

 

 

▲ 이영철 국회인턴유니온장(왼쪽에서 두 번째)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국회인턴유니온 결성 및 인턴 입법보조원

실태조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c 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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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560?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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