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인가? 청년들이 청년문제의 해법을 모색한다
청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지점은 사회적 문제의 이슈들이 청년이란 주제로 통합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그전에는 그저 청년은 청년이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부정하기만 했다.
문제가 많다고만 생각했지 정작 청년의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문제던가, 아니면 문제가 없다. 라는 생각까지 귀결되었다. 아직도 나는 청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청년이란 무엇인가 고민에 빠진 후 빠져 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바로 나는 청년인가? 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질문은 ‘청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들에 대답은 이랬다. '청년은 갈림길이다. 길하나 잘못 가면 늙어서 고생하거든' '청년은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미래가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 '미래 세대를 위해 아직은 세워지지 않은 기둥' '용기 없는 가능성들' 등 여러 가지 말을 들었다. 공감되기도 하고 반감을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두 하나같이 아직은 결정되지 않은 원석 같은 존재라는 것에 대한 공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하나 청년은 미래세대가 아니라 이 시대에 주축이며 단지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이 중, 장년에 비해서 낮은 것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세대 중에서 하나이고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고민이지만,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말로 일어 설 수 없는 구조다.
우리 청년에게 가장 먼저 실현되어야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 란 구호 같은 격려가 아니라, 실패해도 정말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을 위한 단체도 대부분이 그런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 청년 유니온, 청년 주빌리, 청년 민달팽이 유니온 등이 그렇다.
그런 문제의 종합적인 해결책을 원하는 청년단체도 나타났다. 그 이름은 ‘청년당당’이다.
▲ '청년당당' 전 대표 서지완
청년당당의 대표로 있는 서지완 대표에게 서면인터뷰를 요청했고 답변이 왔다.
- 청년당당이 생각하는 청년은?
청년의 기준과 관련해서는 oecd 기준은 만 25세, 정부 청년정책 시혜 대상 연령대는 만 29세 또는 만 35세, 새누리당이나 더불어 민주당의 기준은 만 45세 등등 다양합니다. 각 기준에는 그에 따른 이유가 있겠지만 저희 청년당당은 청소년부터 시작해서 청년의 시각에서 세상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계시면 청년당당에서 함께 하실 수 있으십니다. 물론 아무래도 현재는 2.30대가 회원의 대다수를 이루긴 하지만 10대, 4,50대분들도 계시고 60대 후원회원분도 계십니다.
-청년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게 된 계기는?
청년의 정치 참여에 대한 생각은 20대 때부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법을 전공 하다보니 대한민국 헌법에 부여된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인 선거권을 왜 젊은 친구들이 행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19대 총선 투표율을 살펴보면 60세 이상의 투표율은 68.6%이고 20대 후반이 37.9%입니다. 2%를 가감하면 두배 차이가 나는 거죠. 현 정권의 세부적인 정책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청년들의 정치 혐오, 무관심들이 모여 세월호의 비극적인 ‘人災’를 불러 일으키고 말도 안 되는 70분간의 밀실 협약으로 70년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종국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굴욕적인 말까지 붙이면서 10억엔이라는 일본에서 뛰고 있는 이대호 선수 2 년치도 안 되는 연봉으로 ‘제2의 한일협정’까지 체결한 현 정권이 반성 조치하지 않는 데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당당에서 보여지는 청년에 대한 정책 중 가장 핵심요소는 무엇인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투표율을 끌어 올리는 게 가장 우선이겠고요. 이와 더불어 20대 국회 4,13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위해 저희는 후보자들의 연대를 꾀하고 청년당당에서 상정한 최소한의 공약 이행에 대한 합의문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선거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청년 출마자들에 대해 홍보를 비롯한 여러 후원회들을 연결시켜 드리려 합니다. 또한 대통령 축제, 투표 축제 등을 통해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지속적으로 독려하려 합니다.
-청년당당의 대표가 청년을 대표할 수 있을까?
‘청년 당당의 대표라는 자리가 청년들을 대표할 수 있냐?’ 라는 질문은 우선 청년당당이라는 조직 자체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라면 한번이라도 들어봤을 정도는 되어야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조직의 대표라는 자리를 떠나 저는 청년의 목소리로, 청년의 시각으로 바라본 정당한 대한민국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각자가 다 청년들을 대표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당당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과거의 청년, 지금의 청년, 그리고 미래의 청년은 어떻 모습일까?
과거의 청년, 현재의 청년, 미래의 청년을 나누는 것이 저는 큰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내벽에도,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글에도 ‘요즘 젊은 것들이란 버릇이 없어’ 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버릇없는 젊은 것들이’ 혁신을 통한 세상의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다만 과거의 청년들에 비해 현재의 청년들이 혁신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기득권의 고착화가 갈수록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갑신정변 당시의 주역 중 하나였던 서재필의 나이가 21세였고 얼마 전 서거 하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초선의원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 하였을 때가 26세였습니다. 미래의 청년들은 현 사회의 좋은 부분은 계속 계승하여 발전 시켜야겠지만 악습과 근거 없는 기득권의 갑질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되도록 저희 청년당당부터 최선을 다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청년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고 유도하는 일을 맡고 있는 시민단체이다. 이것이 현재의 청년들의 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청년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그런 부분들을 생각해보면서 빼먹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68혁명이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청년들의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은 혁명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들이 요구하던 바는 크게 평등주의였다.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바뀌지 않았지만 그 결과를 꼭 실패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프랑스의 대학이름은 사라지고 1 대학, 2 대학이 되었으며 권위주의에 가려졌던 평등주의가 수면위로 떠 오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크리스 하먼은 "68 혁명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강력하게 뒤흔들었다. 그 충격파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으로 이끌었으며,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고 평했다.
조금 늦었지만 한국에서도 청년에 의한 운동이 일어났다. 평등주의라고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는 운동이었다. 바로 서울의 봄이라고 알려진 1980년대의 일이다.
68혁명 당시 체코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고, 서울의 봄은 이 프라하의 봄에서 따온 명칭이다. 부마항쟁으로 박정희 군사독재타도 운동의 불길이 커지면서 전국적으로 달아오른 군사독재타도 운동이 서울까지 전달 돼 발화되는 과정이었다. 사건의 발화점은 10.26 사건 직후였다. 해를 넘긴 5월 15일 서울역에 모인 10만 명의 대학생들은 그날 통한의 서울역 회군이라는 역사를 남겼고 이런 대학생들을 가만 볼 수 없었던 군사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전국 학교의 문을 닫아 버린다. 이에 반대한 대학생들이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를 가졌고, 광주는 군사정부의 표적이 되어 무력 진압되었다. 이에 반발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낳게 하였다. 청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전 국민이 동참한 6월 민주항쟁이 되어 헌법을 개정하였다.
이후 등장한 새로운 청년세대를 당시 X 세대라고 불렀다. 이들은 소비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었다. 소비 정치를 표현하고 직선제를 노력에 의해 얻어내지 않은 최초의 세대였다. 자신의 소비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사회기업에 대한 책임을 묻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IMF로 인해 그들은 소비세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고 그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갈쯤에 새로운 청년세대를 이어주는 중간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청년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건 21세기 초반이었다. 청년실업의 문제가 부각되고 심지어는 인기 TV 시리즈에서도 청년실업자의 문제를 지적하는 캐릭터가 나타나서 문제의 심각성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버블경제로 일어섰다가 주춤하고 있는 일본의 문제가 한국으로 이양된 것이라고 매스컴에서는 말하였다. 이름하여 삼포세대, 바로 지금의 청년들이다.
오로지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기성세대의 충고에 고분고분하여 그래 내가 아픈 건 청년이기 때문이라고 자위하는 정도로 사회에 대한 불만 표출이 잘못된 것이라고 배운 가장 청년답지 않은 청년의 세대가 지금의 청년이다.
스펙을 쌓으면 정말로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신이 쌓은 스펙은 남들이 똑같이 다 쌓는 문제점, 그렇게 내가 아닌 기업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세대를 살아가는 세대이다. 그런 청년들이 불만을 내기 시작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성세대들이 청년이여 분노하라면서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를 부수지 말고, 일단 들어와서 바꾸어보라고 한다.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허나 청년들 중에 기성세대의 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청년들의 목소리가 혹시라도 합쳐질까 봐 걱정이 태산인 기성세대들이 마치 청년을 위해주는 척 위선을 떨고 있지만, 결코 그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정 청년들을 위한다면 청년들에게 힘을 줘야한다. 적응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 것이다. 등 떠미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야한다. 어디까지나 갈지 안 갈지 선택하는 건 청년의 몫이다. 지금처럼 올래? 안 올래? 협박 비슷한 선택을 하게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청년당당처럼 청년유니온처럼, 청년민달팽이, 청년참여연대 이하 말하지 못한 수많은 청년단체들의 이름으로 청년들이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더 이상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떤 모습 일까? 더 이상 청년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지 않아도 될 세상. 그런 세상이 청년을 위한 세상이라고 본다. 차별뿐만이 아니라, 권위주의가 없는 세상, 그리고 평등이 너무나 당연해 굳이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운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청년을 포함한 중, 장년 외 모든 세대의 공통된 숙제이자 과제이면서 모두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짧게 청년이란, 이제 막 완성된 신제품 같은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는 청년 본인이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점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539?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