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정치센터 블로그기자단] "빨갱이' 비판 난무하는 사회분위기, 이대로 괜찮나" 정지선 기자

‘빨갱이’비판 난무하는 사회분위기, 이대로 괜찮나


“현실에 관심을 갖자고, 깨어 있자고 했더니, ‘빨갱이’래요. 물론 장난으로 하는 말인 것을 알기 때문에 별로 신경은 쓰지 않았어요. 정치 얘기가 나오면 자주 그래요.”

 

A 씨(28세, 남)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빨갱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가 정부를 비판하는 ‘운동’을 옹호하고, 현실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에 가끔 참여하고 있는 B 씨(24세, 여)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이 ‘빨갱이’라는 말을 농담 삼아 자주한다. 자신을 향한 우파들의 비판을 자조적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관심 가져 본적이 없을뿐더러 국유화나 절대적 평등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나는 단지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바른 방향으로 가길 바란 것뿐이다.’며 ‘해명’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너무 진지하게 바꿔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A 씨는 언제부터 이런 분위기가 형성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가 점점 우편향 되는 기분이라며 걱정을 드러냈다.

 

최근 북한의 지뢰와 포격 도발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남북고위급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인터넷에는 여러 글들이 올라오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게시글에는 ‘빨갱이’라며 비난 댓글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SNS인 ‘페이스북’에서도 ‘진보’ 이념을 옹호하는 글에 실명으로 ‘빨갱이’라는 댓글이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 파업을 옹호하거나 정부를 비판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을 비하하는 글들에도 어김없이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는데, 이 단어의 쓰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없어 보인다.

 

 

△ 문재인 대표 관련 기사에서의 페이스북 댓글들 중 일부를 캡쳐한 것.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빨갱이다’는 둥의 내용이 보인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원래 ‘공산주의자’를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다. 한국 전쟁 이후 반공교육에서 붉은색을 공산주의의 혁명성을 나타내는 색깔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추종하는 세력을 ‘빨갱이’라고 칭했다. 보편적으로 쓰인 것은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부터인데, 이는 남조선로동당(남로당)과 제주 4·3사건에 반대하는 일부 군 세력이 결탁하여 전라남도 여수에서 봉기하였던 사건이다. 이들은 친일 전력 경찰과 우익을 자처하는 친일 경력 인사들을 살해하고 곡성까지 점령하였으나, 이승만 정부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진압군의 공격으로 약 일주일 만에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진압군과 경찰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협조자 색출 작업을 하였고 최소 439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하였다. 이후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통해 ‘북한=사회주의=친소=악마=매국=빨갱이’로, ‘남한=민주주의=친미=애국=천사’로 각인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북한과 연관이 되어 보이는 사람, 좌익을 대변하는 사람이면 어김없이 ‘빨갱이’라는 손짓을 받았다. 과거 선거철이 되면, 경쟁자를 ‘빨갱이’로 몰아 지지도를 하락시키려는 전략을 쓰는 후보자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점차 이 의미가 확장되어 현재는 ‘진보주의자’로 보이기만 하면 ‘빨갱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특히 우익을 대변하는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종북’, ‘빨치산’, ‘홍어’등의 용어와 함께 좌익을 비하하는 단어로 많이 쓰이고 있다. 물론 단어의 의미는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이와 같은 쓰임새는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비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선수들이 실력을 키울 때, 기업이 경쟁력을 올릴 때와 같이 ‘발전’하는 데에는 항상 ‘피드백’이 필요하다. 현재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알고, 해결책을 찾아 고쳐야만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 되어 있는 ‘민주주의국가’ 이념은 ‘국민의 지배’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잘 듣지 못한 부분이 어딘지를 알아내 해결하는 ‘피드백’ 과정이 정부를 향한 비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피드백을 막는 것은 더 나은 민주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좌익’이 반드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옹호자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좌익’이라 함은 백과사전에 따르면, 급진주의적,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적 경향의 인물 또는 단체를 가리키는 말로 우익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즉, 좌익이란 급격한 사회변화를 추구하면서 그 변화의 실현을 위해 폭력사용을 불사하고 기존의 권위나 전통을 부정하는 사상경향을 포기하거나 행동방식을 보이는 정치인, 지식인 및 그들의 집단이나 사상, 운동세력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거나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모이는 집회는 때로는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화적이다. 그들은 ‘국가’자체를 무너뜨리고자 함이 아니며, 자신들의 권리를 좀 더 인정해달라는 취지 혹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취지로 시위를 한다.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합법적인 형태의 시위를 전개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빨갱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적당한 선을 지킨 집회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인권 향상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집회에 참가하거나 집회를 옹호하는 진보주의적 성향을 띈 사람을 바로 ‘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은 오해를 부르고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우익’과 ‘좌익’이 대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칼로 무 자르듯 나뉘는 것이 아니고, 극단적인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넓은 이념 스펙트럼 사이 어딘가에 속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좌익’에 속한다고 하여 ‘빨갱이’라고 칭하는 것은 앞 사례에서 봤듯이 그 사람의 사상을 왜곡하여 일반화한 오류이다. 또, ‘우익’ 측의 정당 출신 대통령을 비판하였다고 하여 ‘빨갱이’라고 단정 짓는 온라인, 오프라인 상에서의 행태는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해친다. 어떤 이들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혐오’를 들어내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근거를 내세운다. 그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낼 권리를 보호하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특정인을 맹목적으로 비하하거나 특정인의 말을 왜곡하는 행위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앞으로 우리는 ‘편가르기’,‘지역감정’,‘색깔론’ 같은 개발도상국형 민주주의에서 한층 발전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 분위기를 적절히 조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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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474?category=671202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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