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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미래정치센터-경향신문 공동게재] 우리의 오늘도 역사가 된다

 

 

 

 

 

 

 

조성주 (미래정치센터 소장)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국정화를 둘러싼 여론은 만만치 않다. 말 그대로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둘로 양분시켰다. 애초에 내년 총선 등의 일정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의도한 것이 이것이었다면, 그것은 제대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자가 이런 적대적 갈등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와 현안들이 많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과 여당에서 지금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이 편향된 교과서를 통해 ‘자학사관’을 배우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자학사관이 청년층의 자살과 정신질환의 원인이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교과서로 공부를 하는가가 자살률과 정신질환 발병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단어를 사용하여 의도하는 바는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자학사관이란 원래 일본의 우익세력이 과거 일본군국주의가 일으킨 전쟁과 침략을 반성하는 기존 교과서를 지칭하며 썼던 단어이다. 우리 정부나 여당이 자학사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교과서들이 산업화라는 나름의 결실이 있었음에도 과거 군사독재시절을 지나치게 자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학적 역사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산업화를 통해 얼마나 큰 결실을 거두었는지를 강조하는 교과서를 만들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일각의 주장대로 대통령 개인의 가족사에 대한 고뇌가 들어갔을지도 모르나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더 깊은 비관을 가지게 되기에 필자는 애써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우곤 한다.

 

그러나 정부가 그렇게 걱정하고 있는 청년들은 정작 역사를 자학하기보다는 현실을 자학하고 있다. 정확히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이 사회를 냉소와 자학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망한민국’이라 부르고 또 ‘지옥’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 표현들이야말로 자학이라면 명백한 자학이다. 아득한 현실에 대한 비관과 미래에 대한 냉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그렇게 표현하게 만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세력들이 청년들의 자살과 정신질환이 걱정이어서 그 원인으로 자학사관을 지목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 짚은 것이다. 청년들의 비극은 과거로부터 잉태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해석이 오늘의 비극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가져오는 불평등이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여 일부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결실이라는 역사를 지나치게 자학적으로 폄훼하는 청년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태도이다. 현실이 지옥인데 역사가 행복의 기록일 리가 없으며, 미래 역시 낙원일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겠는가.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아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지옥이라 부르지 않는다. 지옥은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곳을 말한다. 그렇기에 민주화의 성과가 공평하지 못하고 산업화의 결실이 독점돼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의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학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결국 역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따라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하나의 역사관이 관철된 단일한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헬조선’에 대한 대안과 변화의 가능성이다. 필자는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이 뜨거운 논쟁이 과거에 대한 해석권 싸움을 넘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삶의 현실을 둘러싼 토론으로 진화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 적대적인 논쟁과 싸움은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과 무관한 논쟁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싸움에 뛰어든 양 진영이 각각 주장하는 민주화의 성과와 산업화의 결실이 교과서를 넘어 오늘의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교과서가 만들어지더라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해법을 고민하기 위함이 본래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아닐까.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지만 역사는 무덤처럼 쌓이는 것이다. 내일이 오면 우리의 오늘도 역사가 된다. 오늘의 절망과 냉소가 변화하지 않을 때, 이러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결국 자학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진짜 자학사관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리고 지금의 이 적대적 정치가 외면하고 있는 저기 어두운 절망의 늪에서 그것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504?category=679169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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