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우(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언뜻 보면 상관없어 보이는 정치와 마케팅의 합성어인 정치마케팅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도 이미 친숙한 용어이다. 정치마케팅은 정치인, 정당 등 정치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선거에서 당선과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케팅 도구와 개념들을 활용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유권자에게 표와 지지를 얻어 당선되지 못하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실현시킬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마케팅 도구와 개념은 매력적일 것이다. 때문에 정치마케팅은 한 표라도 적게 득표하면 국민을 대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는 1인 단순다수 득표제도를 선거 제도로 채택하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소선거제도를 주된 선거제도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정치마케팅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 높았다.
그렇다면 마케팅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무엇일까? 즉, 정치가 마케팅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 원칙은 무엇일까? 마케팅은 두 명 이상의 당사자들의 교환을 전제로 한다. 마케터와 구매자의 교환관계가 마케팅에서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두 교환 당사자들은 서로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교환한다. 예를 들어, 마케터는 자신이 만든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대신 소비자들을 제품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환관계는 정치영역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즉, 정치인은 사회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공하고 유권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제공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이렇듯 교환관계 관점에서 정치나 마케팅은 공통점이 많다.
교환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마케팅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원칙은 고객 지향적인 “마케팅 컨셉(marketing concept)”이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케팅의 대표적인 학자라 할 수 있는 필립 코틀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마케팅 개념은... 기업의 중요한 과업이란 표적시장의 욕구, 필요, 가치 등을 확인하고, 경쟁기업보다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조직이 최적 적응하여야 한다는 지침 또는 행동방향이다”(박주영 등, 2012). 즉, 마케터는 교환 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 필요, 가치들을 고려하여 경쟁자들 보다 더 좋게 제공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마케팅 개념을 정치에 적용하면, 정치인은 선거에서 표를 넣기를 원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여 경쟁하는 정치인들 보다 더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케팅 개념 관점에서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치를 평가해 보자. 우선 정의당이 선거에서 표를 얻고자 노력해야 할 유권자 층은 어느 정도 명확한 것 같다. 정의당은 서민으로 표현 될 수 있는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청년 등을 대표하고자 한다. 최근 정의당은 비정규직 정당임을 선언하였다. 이것을 마케팅 용어로 표현하면, 정의당이 비정규직을 표적 고객으로 삼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케팅 개념을 실현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표적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비정규직을 포함한 우리 표적 고객들의 욕구와 필요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성찰해 보아야한다. 정의당이 비정규직 정당임을 선언했지만 정의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비정규직 당원은 그리 많지 않다. 가끔 지도부의 노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 입당을 하지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당 활동에 참여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지는 않다. 정의당 지도부가 비정규직 노조 지도부와 가끔 만나 소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이 나서 비정규직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사 활동을 벌이는 것 같지는 않다. 정의당이 비정규직을 대표하려면 비정규직의 욕구와 필요에 대해 보다 잘 알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의당의 또 다른 목표 유권자인 청년은 어떠한가? 최근 정의당에 청년들의 입당이 늘어나고 있고, 청년·학생위원회를 비롯한 청년들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은 당의 중요한 목표 유권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파악된 목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책이나 정치활동으로 잘 실행해야 한다. 최근 정의당은 보다 더 큰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국민모임 등과 협상 중이다. 우리당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진보 세력들은 더 커진 진보세력을 원하며, 이 협상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다. 문제는 협상을 통해 어떤 결과를 내 놓을 것인가이다. 정의당을 포함한 협상세력들은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협상 결과를 얻고 싶어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진보의 우호 세력을 포함하여 국민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통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없을 것이다.
정치가 마케팅 개념을 받아들이려면 우선 유권자를 교육시켜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계몽적 시각에서의 탈피해야 한다. 진보세력은 운동권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지지 세력과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책을 만들고 정치활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객지향적인 마케팅 개념이 진보 정치세력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447?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