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탁(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6월 4일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선언이 있었다.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등 네 조직의 대표자들이 2015년 안에 더 크고 더 강력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들 것을 천명하였다.
아직 대표자들의 의지를 표명하는 선언이긴 하지만, 진보정치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중요한 계기라고 표현한 것은 이 선언이 4자간의 통합에 그치지 않고, 더욱 폭넓은 진보세력의 결집과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공동선언이 지금 당장은 큰 관심을 끄는 사건도 아니고, 또 판을 흔들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지난 재보궐선거에 나타났던 갈등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이를 폄하하는 흐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지리멸렬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 진보정치가 도약하기 위해 진보세력의 통합은 반드시 완수하고 넘어가야할 과제다.
공동선언에는 대중적 진보정당의 여러 가치와 당면과제가 담겨 있다. 그러나 공동선언을 하나의 사건으로 만들기 위해 현 시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노동정치이다.
정의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머릿속에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 상을 만들기 위해 지난 3년간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상생추구의 정당,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정당, 사민주의 정당 등 여러 시도를 해 오고 있지만 아직 정의당의 정체성은 분명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의 가장 우군이어야 할 노동조합의 간부들도 정의당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진보정치의 분열로 만들어진 정당, 또는 몇몇 명망가들의 존립을 위해 존재하는 정당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인식을 피상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으나, 비판이 현실을 감출 수는 없다.
노동자들은 정의당을 노동자들의 정당이라고 보지 않는다. 표현의 정도를 낮추어 노동친화성을 가진 정당이라고 보느냐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잘 정립된 노동정치의 개념을 가지고 정의당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정의당에는 노동자들이 많지 않다. 노동 출신들이 당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노동현장에 정의당 사람들은 잘 찾아오지도 않는다. 차라리 을지로위원회가 더 친근하다.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노동자들, 또는 노동조합을 만들 처지도 못되는 불안정노동자들은 정의당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의당은 대변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노동시장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정의당은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어려운 담론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청년 세대의 실업률이 최고치를 갱신하고, 일에 대한 청년들의 태도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이에 대해서도 정의당이 제시하는 해법이나 대안은 없었다.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은 보인다. 노동조합 활동가들 중에서 대중적 진보정당을 통하는 것이 노동정치를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길이라고 보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정의당으로 집단 입당하자라는 식은 아니다. 노동정치에 대한 상을 분명히 하고, 정의당이 노동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장치인지 점검하고 내용을 주문할 것이다. 이번 공동선언은 그 흐름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의당은 비정규직 정당임을 선포하고, 천호선 대표는 전국 현장을 순회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당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진보세력 통합에도 긍정적 신호가 된다. 나아가 당의 핵심 노동 정책이 더욱 중요하다. 알바연대에서 시작되었던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전국적인 슬로건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자. 비현실적인 몽상이라고 취급되었던 요구가 청년들에게 가장 관심을 받는 멋진 슬로건이 되지 않았는가. 진보세력 통합의 과정을 통해 당의 노동정책은 더욱 풍부해 질 것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정의당을 자주 볼 수 있기를 원한다.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정의당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길 원한다. 공동선언은 그 둘 모두를 위한 밑 작업의 하나다.
숨은 정동영 찾기 작업은 그만 하자. 지금은 쪼개고 가르는 시기가 아니라, 뭉치고 합하는 시기다. 이 작업을 못 끝내면 우리는 도약할 수 없다. 도약은 착지점을 보고 뛰는 것이지만, 바람에 날리면 어디로 갈지 모른다. 모처럼 찾아 온 기회를 이런저런 우려로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359?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