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나(진보정의연구소 전문위원)
1. 복지 확대와 증세
정의당은 복지국가 건설을 천명했다. 정의당이 말하는 복지국가는 현재 회자되고 있는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복지국가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복지국가를 둘러싼 정치적 담론이 ‘중복지-중부담’ 식의 ‘양적’ 논의에 집중됨에 따라, 복지국가에 대한 핵심논쟁은 ‘재원’의 문제, 즉 복지확대냐 증세냐의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 역시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의당은 이른바 ‘보편복지’ 확대를 근간으로 하여, 이를 위한 ‘사회복지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기저에는 복지 확대를 위해서 증세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기본 가정이 놓여있다.
이러한 ‘양적’ 논의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증세 아니면 복지축소 이 둘 간에 양자택일 할 것을 강요하게 된다. 물론 복지확대를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증세는 필수불가결한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들은 복지확대를 원하면서도 증세에는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현상에 대한 기존의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국민들이 체감한 복지수혜의 경험이 부족해서이거나 둘째, 복지확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진보진영 등의 세력이 복지국가와 증세의 필요성을 잘 설득해내지 못해서이다. 두 가지 다 맞는 대답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증세를 반대하는 보다 적극적인 이유는 없을까?
2. 국가 신뢰와 증세
일전에 필자는 이러한 현상에 의문을 갖고 사람들의 자작적(operant) 주관성. 즉 사람들의 주관적 인식의 지형을 측정할 수 있는 Q 방법론을 이용해, 복지정책과 증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연구해본 적이 있다. 그 결과 증세에 대한 태도는, 복지정책 확대를 지향하는지의 여부 보다는,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 여부에 보다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보편복지 혹은 복지 정책의 확대를 원하더라도, 국가가 낭비가 심하고 부패의 정도가 높다고 생각하면, 증세에 부정적 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한편, ‘국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람의 경우, 선별복지를 원하고 복지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증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정의당이 갖고 있는 딜레마는, 정의당을 지지하는 혹은 지지할 개연성이 높은 시민들은 대체로 정부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새누리당 혹은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넘어서, 국가 자체에 대한 낮은 신뢰로 나타날 수 있다. 그 결과 정의당의 복지지향을 공감한다고 할지라도, 증세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를 보일 개연성이 높다. 만일, 현재와 같이 복지국가 논쟁이 재원의 문제를 중심으로 ‘양적’ 차원에서 논의될 경우, 정의당의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 주장은 당위적 주장에 그치는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을 복지확대냐 증세냐라는 양적 차원의 논쟁을 넘어 “어떤” 복지국가인가라는 질적 논의로 전환해야 하고, ‘신뢰 할 수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3. 논의의 전환: “어떤” 복지국가인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 및 정치 시스템 차원. 둘째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구상, 즉 내용적 차원.
먼저, 정당은 자신만의 국가 구상을 바탕으로, 국가의 운영을 책임져보겠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정당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국가 및 정치 자체에 신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민들이 국가가 국민을 위해 운영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때, 증세 등을 포함한 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권에 대한 불신과 국가에 대한 불신은 다른 것이다.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마땅히 해야 하지만, 이것이 자칫 국가 자체에 대한 불신과 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이든 정의당이든 정치인들의 주장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
무엇보다 복지정책을 비롯한 전반적인 국가 구상에 대한 정당 간 ‘질적’ 차이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생산적인 논의의 토양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전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연설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자신만의 정책적 지향을 밝히기 위해서는 상대의 정책적 지향의 장단점을 논해야 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다 상식적이고 진정성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정의당이 경제 및 복지정책에 있어서 국가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보편복지적 정책의 도입을 강조하고 싶다면, 새누리당의 비리 등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정책 지향, 즉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적이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정책 기조를 강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새누리당이 설사 청렴해지고 공정해지더라도 새누리당이 가지는 특징 및 근본적인 한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신뢰할만한’ 국가구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보편복지 정책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일관된 국가운영의 논리, 그리고 이 속에서 정의당의 복지국가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복지국가는 기존의 정치·경제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왔고, 향후의 변화가능성 역시 이를 토대로 논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복지국가인가에 대한 정의당의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 그 자체는 정의당만이 주장하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의 ‘안녕(welfare)’은 가족, 시장, 공동체, 국가 등의 주체들이 서로 다른 역할과 부담을 갖고 담당해왔기 때문에, 복지제도 그 자체는 항상 존재해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다양한 사회주체들이 ‘어떻게’ 복지를 담당하고, 역할을 분배하며, 협동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담아내는 것이다. 즉, “정의당의 복지국가” 담론은 경제·정치·사회 분야에 대한 정책적 방향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국가재원의 사용은 국가적 차원에서 어느 영역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하는지, 그 필요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근본적으로 국가 재원의 원천은 경제성장에 기반을 두고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가 및 노동자 등의 경제주체의 세금을 통해 확보된다. 따라서 복지국가 논의는 비단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를 넘어, 경제성장 방안 및 노동시장에 대한 정책적 방안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구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4. 위험한(?) 상상: ‘민주적 발전주의’
여기서 하나 조심스러운 제안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물론 국가 폭력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기도 하지만, 재벌문제나 노동시장, 혹은 민영화 나아가 복지정책등에 있어서 국가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즉, 규제완화보다는 ‘정의로운’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국가 구상을 제시하고 있는가? ‘경제성장’ 방안에 대한 우리의 구상을 그려보면 언뜻 떠오르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가령, 재벌 문제에 대해 재벌의 횡포 및 이를 저지 할 수 있는 규제방안, 그리고 이를 통해 재벌과 중소기업, 그리고 자영업자와 노동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경제제도로의 개혁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래서 이를 통해 어떻게 경제성장을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있는가?
경제성장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영향력과 비중을 고려해보면, 재벌을 어떻게 통제할지에 관한 논의는 경제성장에서도 핵심적인 내용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벌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방식이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한국 경제 전체에 이바지 하는 방식인지, 아니라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있는가?
우리가 새누리당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을 반대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경제 영역에서 국가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정의로운’ 규제를 지지한다면, ‘재벌’에 대한 국가의 공적 통제를 통해 ‘경제성장’ 방안을 제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일 것이라 여겨진다. 이를 위해 정의당이 ‘민주적 발전주의’를 주장해보면 어떨까? 새누리당이 (그럴리는 절대 없겠지만) ‘발전주의’를 주장하면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가 떠오르겠지만, 정의당이 ‘발전주의’를 주장하면, 앞에 “민주적”이라는 수식어를 당당하게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재벌이 소유권 유지를 위해 단기적 이윤에 천착하고, 이를 위해 골목상권과 같은 안정적 투자,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감축 등의 행태를 통해 한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민주적 발전주의’적 방식의 경제성장을 통해 해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의당이 갖고 있는 ‘공정함’, ‘진정성’, ‘민주성’라는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민주적 발전주의라’는 경제성장 프레임을 선점하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성장’과 ‘복지’ 모두를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당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332?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