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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진보정의연구소 칼럼]저렴한 가격이 최선인가?

 

 

 

 

 

                                                                                                                                                                             

전승우(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최근 대형마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장바구니 물가가 저렴하다는 연구 결과를 뉴스를 통해 접했다. 한 경제연구원은 2011년에서 2014년까지 서울시 25개 구를 대상으로 생필품의 소비자 가격을 조사하여 대형마트가 가장 많이 입점한 중랑구와 강서구의 생필품 물가가 가장 저렴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형마트가 경쟁을 촉발시켜 소비자 가격을 낮추었다면서, 현재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과 출점 규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이 연구 결과의 타당성을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대신 저렴한 제품 가격이 소비자가 추구해야 할 최선인가에 대해 묻고 싶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같은 성능과 품질이면 싼 것을 사야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소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라는 신조어가 이 현상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것이 대한민국 사회에만 국한된 현상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인간을 호모이코노미구스, 즉 합리성에 근거하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듯이,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수 있다. 필자 역시 똑 같은 제품을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라도 더 비싸게 구입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리지는 않는다. 고백하건데, 좀 더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고자 집앞 슈퍼를 외면하고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한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친한 사람에게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구입했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기는커녕 화를 더 낼 것임이 분명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성비’만 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마케터 측면에서 보면, 시장에서는 거대한 자본으로 규모의 경제를 무기로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몇 몇 마케터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할 것은 이들이 언제까지나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에 경쟁자가 모두 사라지고 소수만이 시장에 남게 되면, 이들은 더 이상 경쟁하지 않고 담합을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품목만 원하는 가격에 판매할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들이 독과점을 강력히 규제하는 이유이다.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물가의 하락이 임금의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생계 유지비와 깊은 관계를 가진다. 기술 혁신이 가격 하락을 주도하는데 기술 혁신이 꼭 제품 품질의 향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음식의 경우를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으로 곡물의 수확량이 늘어 가격은 내려갔지만, 그것의 안전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과거에는 천연균을 배양하여 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스트의 발명으로 빵 제작이 쉬워 졌지만, 빵의 질이 향상된 것은 아니다. 음식의 경우만 본다면, 기술 혁신으로 음식 가격이 저렴해졌지만, 노동자 임금은 이 저렴한 음식에 맞춰지게 되서 과거 보다 나쁜 품질의 음식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서민들이 유기농 농산물이나 천연균 빵을 자유롭게 소비하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게 비싸졌다. 아니 노동자의 임금이 그 가격에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가성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제품이나 서비스에 담다보면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만약 한 커피 전문점이 시간제 노동자에게 시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지급한다면, 그렇지 않은 곳보다 가격을 저렴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커피 전문점에서 공정무역 커피 원두만 사용한다면 이 또한 가격 향상의 요인이 된다. 비싼 가격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 가격이 어떤 가치를 대변하는가를 문제 삼아야 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이를 잘 나타내는 구절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돈에는 미래를 선택하는 투표권으로서의 힘이 있다. 몇 년에 한 번 하는 선거의 한 표보다 매일 쓰는 돈이 현실을 움직이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믿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정당하게 비싼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윤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고 흙을 만드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 방법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261?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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