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자신감의 기초는 경제에 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큰소리 칠 수 있겠는가. 물론 예외가 없는 경우란 없고, 슬프게도 우리는 그 예외를 경험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미국경제가 1999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선언한다. 실업률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고,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자신감에 기초해 미국에서 중산계급 경제학(middle-class economics)이 작동되고 있고,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다고 평가를 내린다. 임금은 마침내 다시 오르기 시작하고, 소기업 경영자들은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종업원 임금을 올릴 계획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진보를 막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두가 공정하게 시작하고, 공정한 분배를 받으며, 모두가 같은 규칙 아래 뛰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가 말하는 중산계급 경제학이다. 그는 모두가 미국의 성공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성공을 이루는데 모두가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산계급 경제학이 이 시대에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근로자 가족들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더욱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주민들을 육아, 대학, 건강, 주택, 은퇴에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근로자 가족의 세금을 인하하여 매년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수천달러를 다시 넣어주는 것이다. 물론 부자들은 주머니를 더 열어야 한다.
둘째는 주민들이 앞으로도 더 높은 임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 예로 미국의 40%의 대학생이 다니는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의 비용을 낮추어 제로로 만드는 계획을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을 잘 훈련시킨 만큼 신경제는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고임금 직업을 계속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 이래 미국은 유럽, 일본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로 돌아갔고, 제조업체는 8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또한 일이십년 전에는 없었던 구글, 이베이, 테슬라 같은 기업들에서 일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 미래에 어떤 산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낼지 아무도 몰라도, 적어도 그것들이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면서 그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었는데, 이 연설로 그의 지지율이 말 그대로 천정을 쳤다. 부러움은 잠시 접고, 우울한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자. 누가 이 우울함을 치유해 줄 수 있을 지는 잠시 미뤄두고.
우리나라의 양극화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소득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등 이 세 가지 양극화는 한국을 불안의 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 세 가지 양극화는 독립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소득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종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정책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 경쟁 환경이 치열해지면서 부품 조달과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국내 산업과의 연관 효과가 작아지고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세계적 대기업들의 성장속도는 상당히 높은데, 정작 그 효과를 국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기업의 하청계열이 되어 있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비용전가와 납품단가 인하 압력으로 허덕이고 있으며, 결국 인건비를 줄여 이를 감당하는 수밖에 없다.
국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중소기업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으며, 국내 소비시장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2012년 현재 중소기업의 국내 일반 소비자에 대한 직접 판매는 6.3%에 불과하다. 임금 수준의 하락으로 민간 소비가 늘 여력도 없거니와, 설령 늘어난다 하더라도 일자리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는 중소기업으로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사상 최고로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기업들의 부채비율 또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기업들의 투자는 일자리를 늘이는 투자가 아니라, 일자리를 줄이는 투자다. 참고로 최낙균(2012, 무역의 고용 및 부가가치유발효과분석)에 따르면 수출의 고용유발계수(명/백만 달러)는 1996년 27.3에서 2009년 14.4로 감소하였다. 반면에 중소기업의 종사자수는 늘어났다. 하지만 이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일자리는 늘어났지만, 노동소득분배율은 낮아지는 추세여서 결국 저임금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경제 정책은 대기업들에게 투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늘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핵심이다. 현재의 대기업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새로운 미래 산업의 육성과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의 육성이 핵심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청 계열화되어 국내 중소기업에서 경쟁력을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연목구어이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은 협동조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기술 경쟁력 향상과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 보건, 교육 등 사회적 경제의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늘여야 한다.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현재의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변화시켜 낼 수 있는 동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이 사회에 진 부채를 갚아야 한다. 저임금, 환경파괴, 경제 구조의 왜곡 등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의도적으로 형성해 온 정책의 산물이다. 사회가 더 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지금에서 조차도, 자신들의 부채를 나 몰라라 한다면 사회의 구성주체가 될 수 없다. 기업윤리헌장은 한 쪽 벽에 걸어 놓은 먼지 쌓인 액자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205?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