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탁
(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소장)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政)에 관해서 물었다. 이에 공자는 정자정야(政者正也, 政이란 것은 正이다)라고 대답한다. 왜 정(正)일까?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고리타분하게 짝이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 정치를 이야기 들어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으니 한 이상주의자의 헛된 소망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게다가 공자왈맹자왈(맹꽁맹꽁) 하는 소리는 도무지 재미가 없기도 할 터이다.
그래도 한번 이야기해보자. 만약 똑같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실제 조사를 해 보지 않았으니 사실을 알지는 못한다. 아마 정자권야(政者勸也)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모르긴 몰라도 정치는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나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거기에 한 걸음 더 앞선 사람은 정치는 권력을 잡는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되고 권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술이라고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막스 베버의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배운 사람들에게 정치는 방금 말한 그러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가 그런 것일까? 정치와 권력은 다름이 없는 것일까?
바를 정(正)자를 한 번 살펴보자. 이를 상(上)과 하(下)가 조화를 갖춘 상태로 읽을 수 있다. 이 글자를 만든 이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리 짐작해보는 것이 그다지 억측같이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유교적 질서를 가진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해석일 것이다.
정(正)자를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자. 하늘(제일 위의 선)이 있고, 땅(제일 아래의 선)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람(|세운 선)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선(-)은 눕혔고, 왼쪽에 있는 선은 세웠다. 이 두 선을 보면 높은 곳에 있는 것은 눕히고, 낮은 곳에 있는 것은 세운 모습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겸양케 하고,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의지를 북돋운다. 가진 사람은 내리게 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올린다. 앞서 나가는 사람은 속도를 조절하게 하고 뒤 따라 가는 사람은 더욱 분발하게 한다.
정(政)자를 보자. 正자 옆에 칠 복(?)자가 붙어 있다. 채찍질을 한다는 뜻이다. 이상 사회라면 정(政)을 하지 않고 치(治)만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정(政)이 필요한데, 그대로 두면 약한 이는 늘 핍박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절로 正이 될 수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 그리 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政이다.
사람 사이에 다름이 없는 사회라면 평(平)자로 나타낼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현실에서 차이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룬 모습이 정(正)이다.
정의를 영어로 표현하면 저스티스(justice)이다. 서구에서 정의를 다루는 신은 여신이다. 정의의 여신의 한 손에는 저울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이 있다. 심판을 내릴 때 여신은 눈을 감는다. 추호의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고 엄정한 판단을 내림을 상징한다. 이 상징은 서구인들이 정의를 생각할 때의 원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의의 원형은 서구의 여신의 모습이 아니다. 칼로 무 자르듯 하지 않는다. 正자가 그러한 마음을 잘 드러내주는 형상이다. 모든 일에는 사정이 있고 형편이 있다. 이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법대로 하자는 게 요즈음 현실이다. 하지만 법은 늘 권력을 따랐다. 법(法)이전에 정(政)이 필요하다. 정치는 법보다 더 복잡하고 높은 감성을 필요로 한다. 내친 김에 한 마다 더 하자면 권력은 기술일 뿐이다. 정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파악해야 하는 예술이다.
정의당은 正자를 이름의 가장 앞에 둔 정당이다. 권력을 다루는 정당이면서도, 正이 의미하는 바름을 헤아리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맹꽁이 소리를 내어 봤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173?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