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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칼럼] 사법의 정치화

 

                                                                                                                                                                                                                                                                                                                             

 

박 철 한

(진보정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현대정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사회 운영과 통합, 관리하는 핵심 수단이자, 원리로 삼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제도적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지향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운영의 핵심원리인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는 없다. 직접 민주주의 만능론자들이 마치 직접 민주주의가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양당의 무능으로 현상되는 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현대정치의 유권자가 놓여있는 시공간적 제약과 현대 사회의 복잡다양성은 직접 민주주의로 향하면, 향할수록 오히려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적 한계를 상정할 뿐이다.

또한 직접 민주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들고 있는 스위스의 ‘주민투표’와 미국의 ‘타운미팅’의 경우,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가치지향에 순기능으로 작동하기 보다는 역기능으로 작동하였다. 스위스의 ‘주민투표’와 미국의 ‘타운미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감세를 공공연히 압박하거나 이주민의 국적 부여를 무력화시키는 보수적 결과를 가져왔다.

여전히 현대정치는 대의 민주주의가 그 시작과 끝을 보증하고 있다. 물론 대의 민주주의 또한 만능은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제도적 대안으로 얘기되고 있는 국민투표,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는 대의제의 보완재로서 충분히 활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만능론과 더불어 대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법의 정치화’이다. 한 마디로 사법의 정치화 현상은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영역이 ‘헌정주의’와 이에 따른 ‘법해석 권한’을 근거로 대화와 타협의 대의 민주주의의 정치적 공간인 국회의 입법영역을 대체, 개입, 혹은 압도하여 사회적 자원의 권위적 배분에 있어 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의 사법화는 멀게는 2000년대 초반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 위헌심판 등 중요한 정치적 의제들이 사법적 판단에 맡겨지면서 논란이 되었다. 최근들어서는 미네르바 사건, 신용철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에 대한 개입,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2% 미만 득표 정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등이 사법의 정치화의 주요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사법의 정치화는 이명박 정권 이후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사법부가 집권세력에게는 유리한 판결을, 야당 및 개혁적 시민사회세력에게는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진보와 보수적 입장을 넘어 재판 결과를 통한 정치적 주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상여금 등 통상임금 판결을 통해서는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고 김용판 무죄 판결을 통해서는 정부여당에게 면죄부를 안겨주는 행태를 통해 가히 ‘현대의 정치 판관’이라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강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 즉 사법의 정치화, 중립성으로 무장한 최고 통치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법부의 경향이 지속된다면 대화와 타협의 대의제를 기반으로 한 우리 국회 정치는 약화되거나 마비되고 국민의 의사결정 참여는 봉쇄될 것이다. 또한 집권세력에 의해 국가적 과제와 쟁점에 대해 국민, 시민사회와 대화와 협의를 통해서 해결하기보다 법치만 내세우며 국민을 탄압하는 행정-사법 권력의 암울한 카르텔을 형성할 수도 있다.

 

왜 우리 정치에서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되고 있는가? 한편으로 한국정치를 60년 동안 독점해 온 거대양당의 무능한 정치와 허약한 정당체제에 기인한다. 60년 동안 대의 민주주의를 경험했지만, ‘대화와 타협’, ‘공존과 상생’의 대의 민주주의의 성취는 먼 나라 얘기가 되고 있다. 양당의 협소한 기득권적 이해에 따라 대의제가 작동하다 보니 대의제의 중요 원리인 대화와 타협의 원리가 설 자리를 잃었다. 국회를 대의가 아닌 거대양당의 기득권 확보와 의원 개인의 성공을 위한 분열과 갈등의 공간으로만 활용하다 보니 정치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의 전락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종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 사회적, 대 정치적 갈등은 정치적 과정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는 의회의 책임방기 및 정치의 사법적 종속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본질적으로 사법의 정치화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행정-입법-사법이라는 세트화 된 삼권 분립에 기인하는 문제이다. 미국의 연방국가 수립과 통치구조 형성 과정에서 삼권분립의 원리 속에 사법부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통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 미국정치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임명직 고위 관료 및 보좌진을 의미한다. 이들은 선출된 공직자의 뒤에서 미국을 움직이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삼권분립에 기초한 사법부의 독립성은 헌법에 명시된 헌정질서를 근거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는 문제는 대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중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개혁은 정당정치의 정상화에서 찾아야 한다. 정치적 쟁점을 사법적 결정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당정치 내에서 쟁점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정당체제를 정상화 하는 것만이 사법의 정치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정당정치 활성화와 더불어 사법개혁도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핵심은 사법부를 국민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국민배심원 제도의 범위를 사법부 전반에 확대하여 국민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사법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의 민주주의에 걸맞게 사법부 수장들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법원장?검사장 직선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지난 2005년 9월 ‘민주적 사법개혁실현을 위한 국민연대’는 배심제 도입을 비롯해 다양한 개혁과제를 담은 ‘민주적 사법개혁 국민안’ 제시하였다. 국민안은 법관의 기수별 서열 승진제도 폐지, 법원행정처의 기능 축소, 법관 인사에 대한 국민참여 확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법조인에 대한 징계제도 강화, 군 사법개혁, 법관수ㆍ변호사수 대폭 확대 등 폐쇄적인 사법체제를 바꿀 수 있는 제안들이 들어 있다. 이런 다양한 논의와 대안을 통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법부를 민주화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병영을 나온 군인 정치를 종식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법원 문을 나온 사법부 관료의 정치를 종식시키는 것도 매우 어려우 과제이다. 전자의 경우는 군통수권자의 병영 내 사조직 척결로 해소 가능했지만, 후자의 경우는 삼권분립에 기반해 독립성을 확보한 국가기구이기 때문에 정당정치 활성화와 대법원장?검사장 직선제 도입, 사법부 전반에 대한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http://www.justicei.or.kr/118?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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