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탁
(진보정의연구소 부소장,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소장)
2013년 12월 말까지 새로 만들어진 협동조합이 3,300개가 넘어섰다. 협동조합 설립 ‘붐’이라고 할 만큼 조합 결성 속도가 빠르다. 이런 속도라면 협동조합이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이미 새누리당에서는 협동조합이 좌파 진영의 근거지가 될 것으로 우려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이 진보 진영 전체의 환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높이 보는 이들이 있지만, 반대로 협동조합이 노동운동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협동조합이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협동조합 현실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초기 운영자금의 부족은 협동조합이 안착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아이디어와 사람만으로도 성공한 경우가 있지만, 모든 협동조합들이 그런 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협동조합은행과 다른 협동조합의 힘을 빌려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협동조합의 결성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협동조합은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협동조합의 역사를 가진 나라와 비교하며, 1년 만에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환상이다. 지금은 새로운 협동조합 시대의 기초를 만들어 나갈 방법을 찾을 시기이다.
협동조합 설립에 대한 자문을 많이 받고 있다. 일반 협동조합뿐만 아니라 사회적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그중 과천상인협동조합은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실시한 소상공인 협업화 시범 사업체로 선정되어 자금 지원을 받기도 했다.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며 주거 공간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을 가지신 분들이 만든 민달팽이자활협동조합은 최근 민간업체와 업무제휴 협약을 맺고 집수리, 청소/방역 등의 업무를 시작하였다. 곧 마을기업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협동조합 일을 도우면서 가장 어렵게 생각되는 점은 역시 운영과 관계된 일들이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에 대한 기반이 부족하고 참고할 수 있는 사례도 제대로 없다. 운영과 관련해서는 모든 게 새로운 실험일 뿐이다.
지난 12월 26일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재석의원 188명 중 179명 찬성, 반대 0, 기권 9). 전면 개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간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몇 가지 걸림돌은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협동조합이 아닌 법인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조직변경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협동조합이 다른 법인을 흡수합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협동조합연합회는 공제사업을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출자금은 탈퇴 시 돌려주어야 하는 성격 때문에 자본이 아니라 부채로 간주되었는데, 탈퇴 조합원에 대한 출자금 환급을 총회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함으로써 출자금이 자본금으로 간주되도록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법에 따라 설립된 영리법인(유한책임회사, 주직회사, 유한회사, 그밖에 다른 법령에 따라 설립된 영리법인)도 협동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 규정이 없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협동조합을 별도로 만들어야 했다.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이나 사회적 서비스를 주 사업으로 하는 회사들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수 있데 되었다. 협동조합이나 민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과 법인은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조항이 신설됨으로 해서 조직변경이 가능해 질뿐만 아니라, 기존 법인의 운영이 지속됨으로써 협동조합 초기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다만 조직 변경을 위해서는 소속 구성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일부라도 반대가 있으면 협동조합으로의 변경이 불가능하고, 또 구성원의 수가 많으면 동의를 받아내기 위한 행정적인 사무가 어려워지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둘째, 조직 변경 외에도 흡수합병의 경우도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주식회사,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를 흡수합병 할 수 있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주직회사,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 사단법인 및 협동조합을 흡수합병 할 수 있다. 합병의 여러 방식 중 흡수합병만 가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의 애초 설립 목적이 훼손되지 않기 위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조합원이 납입한 출자금의 총액이 협동조합의 자본금이 된다. 그간 협동조합 출자금의 성격을 명확하게 해 놓지 않아 회계처리와 은행 대출시 협동조합이 다른 법인에 비해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문제제기가 꾸준히 있어왔다. 이 조항의 신설은 그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이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이 현실적으로 대출관행을 변경할 지는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다. 그래서 협동조합 은행을 만들어 협동조합 간의 금융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넷째, 협동조합연합회는 상호부조를 위해 공제 사업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제사업은 보험업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앞으로 대규모 연합회의 결성이 이루어지면 회원 간에 다양한 형태의 공제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공제사업을 하려면 기획재정부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다섯째, 공공기관은 사회적 협동조합이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여야 한다. 이는 사회적 협동조합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며,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목적을 가진 협동조합의 결성을 촉진할 것이다.
여섯째, 10인 이하의 협동조합의 경우 이사회를 두지 않을 수 있도록 하여 행정절차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대의원의 정수는 조합원 총수의 100분의 10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100명을 초과하는 경우에 100명으로 한정 할 수 있다.
일곱째,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은 협동조합의 임직원을 겸직할 수 없다. 선거에 협동조합 조직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신설된 조항이다. 정치 일체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겸직 금지 수준으로 개정되었다.
이상의 내용들은 의원들의 협동조합 임직원 겸직 금지 조항만 빼면 주로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과 관계된 것들이다. 즉, 그간 운영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향후에도 협동조합기본법을 둘러싸고 개정 공방이 계속 될 것이다. 그때에는 아마 큰 주제들이 쟁점이 되리라 예상된다. 예를 들면 협동조합에 금융보험업을 허용하는 문제라든지, 정치활동 금지조치라든지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문제들이다.
정의당 내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직 개념적으로 합의된 용어는 아니지만,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문에는 협동경제라는 용어도 나오고 있다. 협동조합을 정의당의 핵심 사업으로 하자는 구상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공부가 미진하고 당원들이 주축이 된 협동조합의 사례도 부족하다. 당 차원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전망과 전략을 구상해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 나가자.
출처: http://www.justicei.or.kr/109?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