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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오는날의 넋두리!~~

어제밤!
우리집은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다름 아닌 '차가버섯'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아내는 암에 좋다는 차가버섯을 구입해서 먹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나는 신빙성이 의심스러웠고, 한달에 대략 60 여만원이나 되는 금액이
부담스러웠다.

참 시간 빠르다.
돌이켜보니 벌써 퇴원하지도 오늘로 만 5개월째다.
벌써 반년이 흘렀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이렇듯 잘 버티고(?) 있다.
^^

지난 주말에는 첨으로 매일같이 아침저녁으로 먹는 약을 까먹었다.
그만치 나도 병으로 부터 둔해졌다는 반증이겠지
아침에 한알, 저녁에 두알, 격일로 또 다른 약을 한알씩 챙겨먹는 반복적이고 단순하지만
그래야 생명연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내의 불안한 마음은 나도 안다.
사실 가끔은 나도 생각해본다.
나의 마지막이 언제일까?

뇌질환, 심장, 희귀난치병, 암 이렇게 네가지를 주요 국가증증질환으로 분류하는데
나는 이중 세가지를 앓고 있으니 보통일이 아닌것은 분명한 일이다.

바람앞에 촛불같은 삶!
세상에서 나의 의미는 무얼까?
그리고, 의사의 충고를 멀리하면서 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정을 쏟는가?

사민당이 창당되면 모든것이 끝나는 것일까?
유토피아가 열리는가?
어디에도 그런 가정은 없다.

어려서 배고파 친구들 도시락 훔쳐먹고, 나보다 좀더 나은 환경을 자랑하는 친구들을
죽도록 패줄 때부터 나는 내가 남과 다름을 알았다.
그리고 어른이 되가면서 차별과 멸시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역사유물론'과 '계급투쟁'이라는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념적 테제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비웃더라도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고, 자기 삶의 선택의
자유와 균등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면에서 내게 사회주의는 분명 유토피아였다.

더 나아가 돈 걱정 안하고 마음놓고 치료받고, 교육받을 수 있는 사회는
정말 아름다운 사회임을 틀림없지 않은가?.
사회주의는 국가 이전의 사회공동체의 회복이다.

그렇다면 사민주의는 무얼까?
내가 규정하는 사민주의는 사화주의가 사회공동체라면 사민주의는 국가공동체이다.
국가(정치)의 힘으로 강자(자본)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조절함으로써, 생산력의 파생물인
노동의 사용가치를 자본가가 과도하게 잉여가치를 착복하지 않게 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도 적절하게 배분되는 교환가치의 평등을 이끌어 내는것이다.
다시 말해 차별과 소외가 없는 사회공동동체를 국가가 이끌어 가는 정치우선성의 결과물이다

수술 전, 내가 잘못되었을 경우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다 그 흔한 변변찮은 암보험 하나 넣어놓지 못했나 후회도 했다. 미망인들이 걱정없이
자녀를 키울 수 있다는 북유럽 복지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 위한답시고 몇 백만원씩 쓴다고 누가 알아주나?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온전히 구했냐며 질책하는 절친의 비판과 "오지랍 넓어가지고
지 자식이나 잘 키우지 놈의 새끼는 입양까지 해서 이 사단을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장모님의 꾸중(?)도 할말이 없어 묵묵히 견뎠다.


병원에 있는 한달동안 체 게바라 경제학,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등 몇권의 책을 봤다.
그런 나를 아내와 어머니는 말리지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초 단위로 시간을 재는 상황이었지만 내게는 포기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을 나의 가족들 특히 우리 딸, 그리고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
버려진 아이들, 고통받는 이 땅의 노동자들!

이루지 못한 꿈과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혼자서 참 많이 울었다.
다행히 나는 기적적으로 깨어 났다.
초 시계 인생이지만 경과도 좋았다.

새로이 태어난다는 것은 나를 태우고 사그러드는 것이다.
한줌의 재가 되어야 새로이 시작할 수가 있다.
진보정치는실패했고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본다.
오히려 왕성한 기운을 받던 지난날보다 새로 시작하기에는 지금의 조건이 좋다.

노동을 빗대어 자기 프레임에 갇혀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복지를 시장논리의 접근하는 위정자들을 옹호하는 당내 인사들을 보면서 진보정당 당원인 내 자신에게 마져 회의감 마져 들고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언론을 보니 과거 노동계 올드보이들이 모여서 뭔가를 계획하고 있나보다.
그분들에게 한 말씀드리자면 세상의 이치를 다스리는데는 '시비지심'이 필요하지만
때론 '측은지심'이 우선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가?
언제까지 망설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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