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진=강순아
지난 13일 아침 8시 구좌읍 평대리 바다, 나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서명용지를 들고 해녀 탈의장을 찾았다. 요즘 제주 해녀들은 제철인 성게를 채취하는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해녀들이 탄 오토바이들이 하나, 둘씩 해녀 탈의장으로 모였다. 다들 물질 준비 채비로 분주하다. 쑥도 좀 뜯어 챙기고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며,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뇌선약 도 챙겨 먹으며 고무옷을 입었다. 빡빡한 고무옷을 꾸역 꾸역 말아 입고 수경, 오리발을 챙기고 생명줄과도 같은 테왁을 들고 해녀들은 거친 바다 앞에 섰다.
물질에 나서기 앞서 해녀삼춘들은 바다를 보면서 푸념을 내쉬었다.
핵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제주 해녀 (사진=강순아)
“오염수 바다에 뿌려지면 물질 계속 해지카(할 수 있겠나)?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하냐”
“우리는(해녀들은) 오염수 먹어가멍 물질 헐 수 있쪄(할 수 있지). 허지만 문제는 사먹지 않을거여. 팔리지 않는디 어떵 물질을 계속 허크니(하겠니)”
“솔직히 말허영(말해서) 지금도 몸이 좋지 않은디 그 오염된 물 먹으멍 물질을 계속해질지 고민이여.”
“이미 바당에 돌덜은 허옇게 변해가고 풀덜이 이서야 다른 생물덜도 살껀디 물도 오염된덴허문 어떵헐꺼니”
“나는 이제 살만이 다 살았고 일도 헐마니 해신디(살 만큼 살았고 일할 만큼 했는데) 우리 아덜허고 손지가(아들하고 손자가) 걱정이여.”
같은 날 아침 10시경. 성산항과 안덕계곡 주차장에 100여 대에 가까운 탈것들이 모여 들었다. ‘핵오염수 투기 저지!’라는 대형 현수막을 늘어뜨린 트랙터, 투기 반대 깃발을 차량에 고정시킨 트럭, ‘농어민 생존권 사수’라는 작은 현수막들과 스티커를 부착한 승용차들까지 각각 성산항과 안덕계곡에서 일본국총영사관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1000여명이 넘는 농민, 어민, 해녀 등 제주도민들이 노형로터리에 모였다.
이들이 한 데 모여 연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제주 범도민대회’에서는 욱일기를 찢고 해녀들의 생명줄인 테왁까지도 불태웠다.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반대를 위해 모인 이들이 욱일기를 찢고 있다. (사진= 박소희 기자)
생존권의 위협을 느끼는 이 심정과 이야기들에 대해 정치는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가.
‘한낱 괴담에 휘둘려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그들을 힐난할 수 있는 문제인가. 시민들은 자신들의 건강과 생계의 위협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도록, 정치가 그들의 삶을 지킬 수 있도록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그 요청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도,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와 제주도정, 그리고 제주도의회에 지금이라도 해양투기를 막기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간곡히 요청한다.
같은 날 제주 범도민대회가 있기 30분 전에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국민의힘 소속 제주도의회 의원 12명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반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한참 늦었지만, 뒤늦게라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중앙당, 국민의힘 제주도당과는 달리 제주도 국민의힘 도의원들이 핵오염수 방류 의사를 표명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민의힘 제주도의원 12명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제주도의회)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답답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말로는 핵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면서도, 핵‘괴담만 유포하며 도민을 갈라치기한다’며 공격하는가 하면, 정의당 제주도당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제주도 야6당의 공동행동에 참여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즉답을 피하는 등 이들의 ‘유체이탈’을 보면서 진정으로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도의원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또한 밝히지 않았다.
진정 반대한다면, 정부 당국과 소속 정당인 국민의힘에 방류를 막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설득하는 것이 먼저 아니겠는가.
결국 이 날 국민의 힘 도의원들의 기져회견에서 던진 반대 메시지는 말잔치에 불과하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자기 면피성 기자회견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제주도의회 제389회 2차 정례회 2차 본회의에서 진행된 도정질문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답하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아이러니한 것은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을 두고 ‘괴담’ 운운하는 국민의힘이 과거에는 한목소리로 오염수 방류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지난 2020년 10월 일본 정부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발표하자, 당시 국민의힘 성일종 비상대책위원은 “오염수가 노출되면 우리나라는 직접적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단 한 방울의 오염수도 용납 안 된다”고 반발했다.
또한, 2021년 6월 국회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 결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을 당시 국회의원 재석 191명 중 찬성 188표, 기권 3표로 통과됐다.
그 때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반대하더니,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꾼 집권여당이야말로 국민의 건강권보다 정치적인 셈법을 우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28일 오후 1시 전국 농?어업인과 진보정당 관계자 등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도민 및 전국 농·어민 생존권 사수!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전국대회'가 열렸다. (사진=박소희 기자)
최근 일본 도쿄전력이 핵오염수 방류를 위한 설비공사를 마무리하고 시운전에 들어갔다. 이제 언제 어느 때고 일본은 방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황은 이러한데 윤석열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위한 시작을 선포할지 그 입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 방류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방류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벌써 소금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고, 그래도 소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대형마트에 긴 줄을 서고 있다. 또한, 수산시장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자신의 역할은 방기한 채 이런 국민들을 탓하고만 있을 것인가?
생존과 생업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위한 정치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제주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무엇을 보고 앉아있는가. 대통령은 일본 기시다 총리의 눈치를 보고, 도지사는 대통령과 정부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 국가와 정치의 존재 이유는 사람을 지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 오영훈 제주도지사, 그리고 국민의힘 제주도의원들이 기억해야 할 제1원칙이다.
강순아 정의당 제주도당 부위원장.
시민들이 일상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가장 큰 존재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더 낮은 곳으로 시선을 향해야 합니다. 정치가 시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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