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논평]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전국 현안마다 각축을 벌이다가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서만은 오랜만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반민주적 반자치적 결정이자, 퇴행적 야합, 거대양당의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 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 당론 결정으로 지방선거는 현대 민주주의 관문이자, 요람인 ‘정당’이 배제된 채 지방 민주주의, 자치 민주주의가 거세될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정당정치가 빠진 지방자치는 무소속 지방 토호들의 사익추구의 놀이터로 전락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대의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정치에서 지방자치는 지역 주민들 스스로가 지방선거를 통해 그들의 지역 대표를 선출하여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생활 제반의 정책적 욕구를 대신하여 지역 실정에 맞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게 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당은 지방선거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욕구를 수렴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정규적으로 실시되는 지방선거에 공직후보를 추천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선출된 그들의 대표가 지방공직과 의정활동을 수행한다. 또한 정당은 지방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감시ㆍ견제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정치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지방선거나 지방자치를 단순히 비정치적 영역의 지방행정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정치적 영역의 지방정치 차원으로 이해한다면, 지방선거에서 공직후보를 추천하는 정당공천제는 대의 민주주의 차원에서 정치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한국은 지난 1995년부터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이래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의 단체장과 의회를 동시에 구성하는 다섯 차례의 지방선거가 실시되어 왔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공직후보를 추천하는 정당공천제는 제도적 공고화가 미흡하여 지방선거 시기마다 찬ㆍ반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의 지속적인 유지를 주장하는 찬성론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선거참여는 정당한 것이며, 정당이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지방의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수립ㆍ집행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당공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혹은 전면적 배제를 주장하는 반대론은 본원적 의미가 변질된 지방자치의 정치화 현상,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지역주의 가속화와 지방정치의 일당독점, 공천과정의 부정부패 등 선거과정과 결과를 통해 표출된 제반 문제점들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추천을 단순히 지방행정이 아닌 생활정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정당공천제는 찬ㆍ반 논쟁을 통한 정치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행 정당공천제의 부분적 혹은 전면적 폐지보다는 제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의 후보공천 과정을 민주성과 공정성, 책임성 차원에서 보면, 각 정당의 후보공천제는 원활한 제도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지방선거에서 중앙당 지도부나 지역구 국회의원, 당원협의회 위원장 등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공천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공천과정에서 정당의 당내 민주화나 제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 진성당원의 확충과 지방 하부구조의 내실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나아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의 책임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정당과 유권자가 협력하여 매니페스토 운동과 연계된 정책선거를 유도해야 할 것이며, 지방정치에 대한 중앙정치의 영향력을 배제시키기 위해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 확충도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실시되고 있는 정당공천제는 그 실질적 운영과 결과 차원에서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든지 논리적 이견과 제도적 결과의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의 선거 참여와 후보공천은 대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당의 본원적 기능과 역할이 구현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정당공천제를 무턱대고 배제하거나 폐지하기보다는 개선과 보완을 위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제반 문제점들을 풀어가야 한다.
그동안 지방선거에서 제기된 정당공천제의 찬ㆍ반 논쟁은 폐지와 유지를 둘러싼 정치적ㆍ학술적 논쟁에 치우쳐 제도적 개선과 보완을 위한 대안 모색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를 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정당정치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현행 정당공천제의 제반 문제점들을 심층적으로 파악하여 개선ㆍ보완하려는 현실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정의당은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유지가 당론이다.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제정당 및 시민단체와 더불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2013년 7월 3일
진보정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