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띠 토론회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화 :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시민들의 목소리'> 발제문, “참사 이후 정치, 우리는 왜 달라지지 못했을까?”
- 일시 : 2022년 12월 20일(화) 19시
- 장소 :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 hall 80(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115)
국가는 없었다
지난 12월 1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국정조사 특위의 간담회 자리에서 고 이지한씨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진실을 밝혀달라며 울부짖었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그 간절함과 절박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앞집 개가 죽어도 위로를 하는데 하물며 나라 어버이로서 158명 자식들이 죽었는데···”라는 유가족의 이야기는 이태원 참사를 마주하는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는 없었고, 참사 이후에도 추모와 애도의 과정에서 국가는 무책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바로 다음 날인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근조 리본을 착용했고, 축제 등 문화공연도 자제하라는 권고가 있었다. 동시에 ‘참사’가 아니라 ‘사고’,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10월 30일은 아직 구조 및 의료 업무가 진행 중이었고, 희생자 숫자조차 확정되지 않은 시기이다. 죽지도 않은 사람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국가가 공식적으로 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이다. 정부에게 국가애도기간은 참사에 대해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닌, 망각을 유인해 참사의 성격과 의미를 축소하려는 의도가 투영된 것에 불과했다.
참사 이후 정부가 유가족들을 대했던 모습은 윤석열 정부의 속내를 더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참사 다음날 희생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병원의 응급실을 쫓아다녀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 14시간 만에 나온 사체검안서 때문에 이틀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이야기 등 상조회사만도 못한 정부의 행정절차로 인해 유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더욱 커져갔다. 더욱이 정부는 유가족들이 서로 소통하고 위로하기 위한 만남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범죄자도 아닌데 같은 유족 만나는 걸 왜 이리 은밀히 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참사 유족 간 접촉을 못 하게 하라고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았다”라며 토로했다. 윤석열 정부가 유가족들을 정치적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잘못된 정치는 왜 반복되는가
참사 직후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과 슬픔은 단순히 참사의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8년 전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참극을 다시 떠올렸다. 더욱이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에 대한 혐오부터 국가행정의 무책임한 태도와 꼬리 자르기 행태에 이르기까지, 현 정부의 대응과정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면면은 세월호 참사 때보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2014년 4월 27일, 세월호 참사 이후 열흘이 조금 넘은 시기에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는 사임을 표명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건 수습을 이유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았고, 두 달 뒤 내각 개편 과정에서 마땅한 후보자가 없자 총리 유임을 결정해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사과를 하는 등 공식적 사과를 집요하게 피했다.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1주기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좌절하지 말자”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보였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이상민 행안부 장관 파면은 법적 책임이 드러나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규모 참사에 대해 정부와 여당 그 누구도 책임감을 통감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중 한 분은 자신이 ‘2찍’이라고 말씀하시며 통곡을 했다. 지난 대선에서 2번을 찍었다는 것이다. 자신도, 배우자도, 희생자인 아들도, 온 가족이 ‘2찍’이었는데, 어떻게 정부가 이럴 수 있냐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어쩌다 우리 정치가 이 지경이 됐는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확하게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말 한 마디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문제를 양당의 적대적 공존에 기반해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태원 참사 이전과 이후, 거대양당의 정치는 달라진 것이 없다. 이태원에서 158명이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하고 있을 때, 거대양당은 민생은 뒤로 한 채 김건희 특검과 이재명 특검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참사 이후에도 전 국민이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데, 법무부 장관이 청담동 술자리에 갔느니 마느니, 캄보디아에서 영부인이 조명을 썼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진실공방을 하고 있었다. 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국가와 정치가 국민들을 지키지 못했는지, 그 진실에는 양당 모두 무책임했다. 이 모든 것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행위가 정치의 전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추모가 퇴진’이라는 두 번째 비극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비극으로만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두 번째 비극은 참사에 대응하는 정치와 언론, 시민사회의 모습이 세월호 당시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고 신고 시각에 대한 보도 이후, 국가 책임을 묻고 행정책임자 파면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퇴진’을 구호로 매주 진행된 촛불집회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라는 구호가 하나 더 추가된 것에 불과한 정치적 행위가 추모로 둔갑해있다. ‘퇴진이 추모다’라는 피켓들 사이에 간간히 보이는 ‘김건희 특검’ 피켓은, 한국정치의 파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정치와 언론, 시민사회 일부는 세월호 당시 사회적 경험을 과도하게 이태원 참사에 투영하고 있다. ‘막을 수 있었다, 국가는 없었다’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국가부재에 대한 질문은 세월호 당시 담론을 그대로 가져온 셈이고, 국정조사-시민사회 연대체 구성-촛불집회-퇴진 구호 등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프로세스가 단 기간에 완성된 것 또한 세월호에 대한 학습효과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중들의 정서가 이와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참사부터 퇴진까지 일직선으로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대중들은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세월호를 통해 경험했다. 이 괴리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의 대화가 필요하고, 이를 사회적 담론으로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대화와 토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을 너무나 일찍 생략(포기)해버렸다. 세월호 당시, 박근혜 퇴진 촛불 정세와는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퇴진은 추모가 아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책임여부 혹은 퇴진에 대한 동의여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적어도 지금 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의 정치-추모의 정치화는 퇴진 구호와 달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국가책임을 묻는 것이 정권에 대한 책임 요구로 축소되거나 수렴될 수 없다. 정권교체만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순 없기 때문이다.
재난과 참사 이후, 사회는 ‘반성과 성찰’을 기반으로 변해야 한다. 불평등이 재난으로 심화되지 않아야 하고, 참사를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코로나 재난 속에 비대면-원격사회로 전환을 대안으로 내놓고, 이태원 참사 직후에는 정권교체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반성과 성찰’이 없는 대안들이다.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에게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 권리는 정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추모와 애도에서 정치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모와 애도가 정권에 대한 분노로만 귀결된다면, 안전 사회-대안 사회는 누가 만들 수 있는가?
추모에서 정치로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구속해야 정국을 운영할 수 있고,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왜 이 두 개인을 둘러싸고 우리 정치는 소모적인 논쟁만 거듭해야 하고, 시민사회 일부도 이 개인 간의 싸움을 정치투쟁으로 곡해하고 있는 것인가? 이 이분법적 정치의 구도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추모가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 앞에 서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틔우고자 해방의 공간을 찾아간 158명의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참사였다는 것을 전 국민이 확인했다는 것이다.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그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하고 일종의 ‘사회재계약’을 고민해야 한다.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에게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그 권리는 정치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추모와 애도에서 정치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권에 책임을 묻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추모의 대화’를 사회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기성국가-기성정치-기성사회를 거부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산발적으로나마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퇴진이 추모’라는 구호는 이 모든 과정과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회 전반의 무력감을 해소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 퇴진운동이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참사를 마주하지 말자. 어떤 결론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추모하고 대화하고 연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아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