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방말고 집에 살고 싶다 _
부모 찬스 없이 지옥고 탈출은 운명이 허락해야 가능한 걸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습니다. 예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재수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대신 돈을 벌었습니다.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첫 월급 130만원. 어리다고, 대학 졸업장 없다고, 비정규직이라고 무시도 많이 당했지요. 꿋꿋이 버티며 모았습니다. 울면서도 출근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별 수 있나요. 치사해도 그래야지요.
그렇게 2년 가까이 모아 달동네 쉐어하우스로 독립했습니다. 마을 버스 종점에 그마저도 끊기면 족히 20분을 걸어야 했던 오르막 끝자락. 계약서를 쓰던 날 월세를 1만원이라도 깎고 차라리 보증금을 올리겠다는 저를 보며 집주인은 "어차피 돈은 부모님이 내주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내는 건데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깎고 또 깎은 금액.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15만원. 한겨울 패딩 점퍼를 입고 매트리스에 누워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외풍이 심했던 구옥이었습니다.
그래도 집에 손 안 벌리고 스스로 독립했다는 자부심을 동력 삼아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사람 대접 받아보려고 용 많이 썼습니다. 무시 안 당하려고, 무시 당해도 당당하려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떤 청년에게 1500만원은 '주식 코인'에 태우는 한탕이었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 그 돈은 자존심을 지탱하는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1년 채 안 되어 나라에서 대출을 해준다고 해서 신림동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자존심을 지탱하던 전부에 또 자존심 구겨가며 쥔 돈 얼마를 보태 20%를 채우고, 80% 대출을 받았습니다. 보증금 9천만원. 3m 줄자로 모두 측정 가능한 작은 방. "이 정도면 정부 지원 대출로 훌륭한 수준"이라는 중개보조원 말에 기가 죽어 계약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장이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닐 테니까요.
빛을 못 봐서 죽어가는 건 식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빛을 보는 일이 줄어드니 죽어가더군요. 살고 싶어서, 반지하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지하 전세 계약기간 중 사회주택 입주를 결정한 이유입니다. 없는 살림에 발품을 뛰어 마련한 돈으로 겨우 계약금을 치렀습니다. 뛸 듯이 기뻤습니다. 8평짜리 분리형 원룸에 3층이라니. 창도 크고 채광이라는 말을 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햇볕 드는 내 방. 서울 하늘 아래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던지요.
그런데 반지하에 대신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출을 돌려 막아 잔금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지만 이렇다 할 묘수는 없었습니다. 서울시에서 '이사시기 불일치 대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잠깐 눈을 반짝였으나, 1인 가구에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존 전세대출자도 해당되지 않았지요. 그때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 지옥고 탈출은 운명이 정해주는 거구나.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에 운명처럼 더 나은 집이 나와주어야만, 비로소 탈출할 수 있는 지옥고. 계약금을 잃을 수 없으니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급기야 하루는 집주인에게 장문의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제발, 제발. 하면서요. 집주인은 전화를 걸어와 젊은 사람이 힘들게 번 피 같은 돈을 잃어서야 되겠느냐면서도, 일단 세입자 구하는 일에 더 힘을 써보자고 했습니다. 전세 대출 심사를 당장 받아야 하는데. 집주인은 말 끝을 흐리기 바빴습니다. 몇 번을 더 사정한 끝에 결국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런 배려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제가 사실은 너무 비참했습니다.
지옥고 탈출을 운명이 정해주는 사회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부모 찬스, 집주인 배려 찬스 없이 내가 원하고 필요할 때 지옥고 탈출을 감행하는 것은 욕심인 걸까요? 더 이상 존엄한 주거 환경을 위해 참고 기다리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용기를 내어 제 이야기를 꺼내 보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모여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부모 찬스 없이 지옥고 탈출은 운명이 허락해야 가능한 걸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습니다. 예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재수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대신 돈을 벌었습니다. 돈이 필요했으니까요. 첫 월급 130만원. 어리다고, 대학 졸업장 없다고, 비정규직이라고 무시도 많이 당했지요. 꿋꿋이 버티며 모았습니다. 울면서도 출근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별 수 있나요. 치사해도 그래야지요.
그렇게 2년 가까이 모아 달동네 쉐어하우스로 독립했습니다. 마을 버스 종점에 그마저도 끊기면 족히 20분을 걸어야 했던 오르막 끝자락. 계약서를 쓰던 날 월세를 1만원이라도 깎고 차라리 보증금을 올리겠다는 저를 보며 집주인은 "어차피 돈은 부모님이 내주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내는 건데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깎고 또 깎은 금액.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15만원. 한겨울 패딩 점퍼를 입고 매트리스에 누워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외풍이 심했던 구옥이었습니다.
그래도 집에 손 안 벌리고 스스로 독립했다는 자부심을 동력 삼아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사람 대접 받아보려고 용 많이 썼습니다. 무시 안 당하려고, 무시 당해도 당당하려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떤 청년에게 1500만원은 '주식 코인'에 태우는 한탕이었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 그 돈은 자존심을 지탱하는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1년 채 안 되어 나라에서 대출을 해준다고 해서 신림동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자존심을 지탱하던 전부에 또 자존심 구겨가며 쥔 돈 얼마를 보태 20%를 채우고, 80% 대출을 받았습니다. 보증금 9천만원. 3m 줄자로 모두 측정 가능한 작은 방. "이 정도면 정부 지원 대출로 훌륭한 수준"이라는 중개보조원 말에 기가 죽어 계약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장이 있을지언정 거짓은 아닐 테니까요.
빛을 못 봐서 죽어가는 건 식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도 빛을 보는 일이 줄어드니 죽어가더군요. 살고 싶어서, 반지하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지하 전세 계약기간 중 사회주택 입주를 결정한 이유입니다. 없는 살림에 발품을 뛰어 마련한 돈으로 겨우 계약금을 치렀습니다. 뛸 듯이 기뻤습니다. 8평짜리 분리형 원룸에 3층이라니. 창도 크고 채광이라는 말을 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햇볕 드는 내 방. 서울 하늘 아래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던지요.
그런데 반지하에 대신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대출을 돌려 막아 잔금을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백방으로 방법을 찾았지만 이렇다 할 묘수는 없었습니다. 서울시에서 '이사시기 불일치 대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잠깐 눈을 반짝였으나, 1인 가구에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기존 전세대출자도 해당되지 않았지요. 그때 다시 깨달았습니다. 아, 지옥고 탈출은 운명이 정해주는 거구나.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에 운명처럼 더 나은 집이 나와주어야만, 비로소 탈출할 수 있는 지옥고. 계약금을 잃을 수 없으니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급기야 하루는 집주인에게 장문의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제발, 제발. 하면서요. 집주인은 전화를 걸어와 젊은 사람이 힘들게 번 피 같은 돈을 잃어서야 되겠느냐면서도, 일단 세입자 구하는 일에 더 힘을 써보자고 했습니다. 전세 대출 심사를 당장 받아야 하는데. 집주인은 말 끝을 흐리기 바빴습니다. 몇 번을 더 사정한 끝에 결국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런 배려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제가 사실은 너무 비참했습니다.
지옥고 탈출을 운명이 정해주는 사회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부모 찬스, 집주인 배려 찬스 없이 내가 원하고 필요할 때 지옥고 탈출을 감행하는 것은 욕심인 걸까요? 더 이상 존엄한 주거 환경을 위해 참고 기다리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때문에 용기를 내어 제 이야기를 꺼내 보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모여 변화의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청년주거를 청년이 이야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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