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안 최종안도 전국위에서 추인 받았으니 이제 여기 게시판도 끝물이고 폐쇄를 할지 지워버릴지 모르겠으나 혁신위가 출범한지 석 달 정도 기간을 지켜보며 막판의 재밌는 장면 두가지를 꼽아본다.
장면 1
혁신안 기자회견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을 놓고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에서 혁신위원들 모였지만, 거의 대부분 위원장만 발표했다. 위원장이니 그럴 권한과 책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혁신위원장 장혜영은 그동안 여러번 말했던 당원들의 의견이 중앙당에 제대로 전달되고, 법률로 발의 될 수 있는 '소통'을 강조했다. 정작 본인의 공식 페북에 댓글은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하는 폐쇄적인 SNS 소유자인 장혜영은 의원 개인의 소통에도 인색하면서 당차원의 소통이 원활하게 만들겠단다. 누가 그소리를 믿을 지 모르겠다.
위원회 내에 의견 충돌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충 뭉개려다, 혁신위 내에 단 한명 반대의견을 냈던 성현 위원이 마이크를 잡으려고 하자, 혁신 위원장은 제지했다.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youtu.be/UWT8Bo6kT5M
당내 합의 과정의 껄끄러웠던 장면을 대외비로 하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일 수 있다. 내부에서는 시끄러웠지만 언론 앞에서는 단일대오로 똘똘 뭉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거칠었던 토론 과정을 폭로할려는 소수 의견자의 입을 막고 싶었을 그 심정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랬으면, 혁신위는 석 달 가까운 시간에 잠 안자고, 밥을 굶더라도 끊임 없이 단일안에 대한 모든 위원들의 동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한다. 장혜영이는 모든 위원들이, 만장일치 라는 말을 종종 했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었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지지든 볶든 전체 위원들이 수긍할 안을 마련했어야 하지만, 어쨌거나 소수자인 성현 위원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혁신위의 회의록을 공개할리 만무하나 예상컨데, 혁신위원장을 비롯한 다수파는 솔직히 소수파의 의견에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기는 했을까 싶다. 어쨌거나 모두가 인정할 단일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한 것은 혁신위고, 그 책임은 오롯이 위원장 장혜영에 있다. 그렇게 만든 안을 내놓는 자리에서 대외적으로 민망해지기는 싫으니, 결국엔 소수파의 입을 막기로 한 모양이다.
그러나 성현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고, '혁신위는 실패했고 혁신위는 심대표의 총선 실패 책임 면피용 기획이었다' 라는 의견을 세웠다. 위원장과 위원장파 위원들의 제지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18명의 위원의 만장일치가 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있을 수 있는일이고, 그 의견이 팽팽했다면 결국 단일안을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정의당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다수자들인 남성, 기성세대, 가진자, 비장애인 들로 굴러가니, 우리는 여성, 청년, 빈민, 장애인의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주장하는 정당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온 세상이 박원순이 그래도 인권운동가로 여성 인권신장에 기여한 바가 크니 다수가 추모한다 하더라도, 어디선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연약한 소수자 고소인의 옆에 서겠다며, 평생의 업적을 쌓아온 고인을 고소장 하나로 성추행범으로 낙인 찍었던 정의당이다.
그랬으면, 17명이 찬성했어도, 반대하는 한명의 목소리, 소수자인 성현의 의견을 막지 말았어야 한다. 위원회의 혁신안을 발표하는 자리에 혁신위원의 발언이 어째서 '적절하지 않은지' 장혜영이 설명할 수 있을까? 정당 내의 소수의견에 대해서는 입을 틀어 막는데, 무슨 수로 세상의 소수자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는가? 마치 장혜영이 자신의 페북 댓글을 페친에게만 열어놓으면서, 세상과 소통하겠다고 얘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장혜영이는 성현의 짧지 않은 결연한 반대의견을 서둘러 틀어막고 '우리 위원회에 총의를 모아가는 과정을 무시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견해만 강변하고자 하는 이런 해프닝이 있다' 라면서 소수 의견을 돌려까기 까지 했다. 해프닝이라니..
장면 2
전국위원회
성현이의 의견에 '혁신위는 총선 실패를 뭉개고 넘어가려는 심대표의 꼼수'라는 말은 심블리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난 전국위원회 실시간 유툽을 처음부터 끝가지 풀로 지켜봤다. 정의당 당원이 지금 현재 몇명 인지 모르나, 정의당의 전국위원회 실시간 스트리밍은 시청자가 60 명에서 왔다 갔다 했다. 초등학생이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는 먹방을 해도 수 천명이 보기도 하는데, 공당의 주요 행사에 60 명이라는 시청자라는 것 자체는 지금 정의당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다 생각한다.
어쨌든 난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중간에 돈 문제에 관해 민감한 사안이 나왔을때 심대표의 '야 방송 꺼봐' 라는 부분도 기억에 남고, 전국위 마치면서 '식사는~' 로 끝나는 부분까지, 이 재미 없는 긴 방송을 난 실시간으로 봤다.
혁신안의 토론 마지막에 또 성현이 발언권을 신청한다. 그때 심대표는 이리 말한다.
'발언권 안드리겠다' 심블리는 성현이를 알고 있었다. 며칠전 성현의 발언을 들어보지 못했을리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혁신안 토론에 혁신위원의 발언권을 주지 않는가? 대표를 깠기 때문에?
youtu.be/DcZV3F1FZyQ?t=7026
방송에는 안들렸지만, 왠지 모르나 성현이는 혁신안 반대나 폐기가 아니라, 위의 장면 1에 대해 사과하겠다고 굴복하고서야 마이크 앞에 섰다. 난 이장면에서 정의당에 남아있던 작은 촛불 같은 위태로운 마지막 희망이 꺼졌다고 생각한다. 연단 앞에 나온 성현위원은 혁신안의 부적절함을 설명하지 못하고, 내가 표현이 거칠었고, 내 판단력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북한식 자아비판이 있고 나서야 혁신위원장과 당 대표의 얼굴은 한층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전국위가 끝난지 몇분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마지막 남은 소수자를 숙청해버린 혁신위 대변인은 굳이 브리핑이라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박제'하고, 소수자를 밟아버렸다.
www.justice21.org/newhome/board/board_view.html?num=133924&page=1
지금 뱃지를 달고 있는 젊은 국회의원들이 정의당에 입당하기 훨씬 이전부터,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정의당은 권위와 서열, 완장을 내세우는 정당이 아니었다. 낮은 당직자도 회의에서 말하고 싶은 의견을 내는데 거침 없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들어주던 정당이었다. 대표나 위원장이라는 완장 앞에서 무명 당원 혼자서도 맞짱을 깔 수 있는 기개있는 인물들이 각 시도당에 수두룩 했다. 밖에서 보면 산만하고 잡음, 분란으로 비하될 수 있는 장면이지만, 대화와 타협의 과정을 그 어느 정당보다 중시 여겼었다.
그러나 이번 전국위에 그런 추억을 가진 마지막 인물조차 거듭 사죄를 하며 몸을 바짝 낮춰야만 마이크를 쥘 수 있는 꼰대 정당이 되버렸다. 끝없는 토론과 대화보다는 권위에 기대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는 질서를 선호하는 정당이 되버렸고, 이는 수해현장의 깔끔한 장화만큼이나 내가 알던 정의당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당원들은 빠져 나가고, 재정이 위태하다는 것을 걱정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의당의 위기는 그런 숫자가 문제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