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지도부는 반혁명인가 위선인가.
나아가는자
1.
2016년 겨울. 그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 한국에서 친일-독재-친재벌의 길을 걸어온 극우반공주의 세력의 당당한 후계자였던 새누리당은 ‘내시환관당’이라는 모욕을 겪으며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리하여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로운 행정부가 수립되었다. 우리가 바로 몇 년전 몸으로 체험한 ‘촛불혁명’이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4.19 혁명은 이승만을 쫓아낸 다음 곧바로 개헌과 총선을 실시하여 이승만을 떠받들었던 반공세력인 자유당을 국회에서 몰아냈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개헌이나 총선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그 결과 촛불혁명의 기대를 받고 태어난 문재인 정권은 기대한 만큼 한국사회를 바꿔내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이 망가뜨린 한국사회를 정상사회로 복구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진정한 개혁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된 원인이 문재인 정권의 무능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게 개혁을 충분히 실현할 힘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 국회의 상당수 의석은 여전히 박근혜의 ‘내시환관당’, 곧 자유한국당이 차지했다. 자유한국당은 개혁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으며, 안철수가 만든 국민의당과 같은 어설픈 중도정당은 개혁에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결국 과반수에 훨씬 못미치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의석으로는 개혁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촛불혁명은 입법부 권력교체가 지연되었기 때문에 반쪽짜리 혁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 이 지연된 혁명이 혁명으로서 승화될지, 아니면 하나의 운동에 그칠지는 2020 총선에 달려있다. 이번 총선에서 독재, 학살, 고문, 탄압, 검열, 감시정치를 행해온 적폐 정치세력인 자유한국당 세력을 100석 밑으로 몰아내야만 한다. 그래야 입법부에서 촛불혁명이 제대로 실현되고, 좌초되어 왔던 촛불혁명의 배가 다시 순항할 수 있다.
2.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엄중하다.
촛불혁명이 지연되면서, 혁명에서 모여졌던 시민들의 기대는 달성되지 못했다. 혁명의 열기는 식었고, 시민들의 마음은 광장에서 집으로 돌아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개혁이 주춤하자 극우반공세력은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촛불혁명 이후 흩어졌던 극우반공세력은 미래통합당이라는 깃발아래 새로 뭉쳤다. 범죄자 박근혜는 당당하게 옥중서신을 보내 그들을 지도하고,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였던 황교안은 미래통합당의 대표로서 그 옥중서신에 화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을 도둑질하려고까지 한다. 현재의 구도대로 간다면 비례 47석 중에 미래한국당이 25~27석을 가져갈 것이라 예상된다.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낮은데도, 비례의석은 7석이 예상되는 민주당보다 20석을 더 가져가는 것이다. 현재까지 민주진보진영에서는 위성정당 전략을 본격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 간다면 박근혜의 환관들이 20석을 도둑질해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지역구 선거에서마저 극우반공세력은 하나로 뭉쳐진 가운데, 진보-민주 진영은 분열되어 있다. 민주당 이외에 정의당, 민생당 등 여러 정당들이 나서고 있기 때문에 표가 분산될 예정이다. 결국 지역구 선거에서마저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
이대로 선거가 진행된다면 박근혜의 환관들인 미래통합당이 120석 이상을 얻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120석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120석의 의석만 확보하면 거의 모든 법안처리를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16년의 촛불혁명은 지금껏 좌초해왔다. 미래통합당이 120석 이상을 차지한다면, 촛불혁명은 또다시 좌초하고 말 것이다.
만약 잘못되어 미래통합당이 150석이상, 곧 과반의석을 차지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야말로 촛불혁명은 전복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의 촛불혁명은 모두 뒤집어지고, 문재인 탄핵과 박근혜 석방이라는 구호가 공공연하게 국회에서 떠들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그나마 한걸음 떼었던 개혁들은 모두 후퇴할 것이다.
촛불혁명은 작게는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크게는 한국을 압제해온 적폐세력인 극우반공세력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극우반공세력이 120석 이상을 차지하여 또 다시 한국정치의 운전대를 잡게된다면, 촛불혁명의 의미는 무너진다. 그런의미에서 미래통합당의 총선승리는 곧 촛불혁명에 대한 반혁명이다.
지금, 촛불혁명은 혁명을 유지할 것인가, 반혁명에 의해 무너질 것인가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와있다.
3.
촛불혁명이 유지되느냐 무너지느냐의 갈림길을 본 촛불시민들은 극우반공세력의 의석 도둑질을 막아낼 지혜들을 짜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해 줄 것을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세력들에게 요구했다. 이른바 연합비례정당은 그런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어제(3월 8일) 정의당의 지도부와 전국위원회는 연합비례정당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에 나타난 정의당 지도부의 논리는 이렇다.
“첫째, 반칙과 반칙이 난무하는 정치를 만들어 국민을 등 돌리게 하고, 결국 투표율 저하로 귀결 될 것이다.
둘째, 진영과 진영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기득권 양당에 지쳐 망설이는 유권자들에게 투표할 이유를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셋째, 다양성이 보장된 제도 아래서 가치에 맞는 정당에 투표하려는 사람들의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은 정당한 주장일까?
이 세가지 이유를 하나 하나 따져보자.
첫째, 현재의 구도로 가면 미래통합당이 반칙을 통해 비례의석을 대규모로 도둑질할 수 있고, 민주당의 비례표는 사표가 된다는 것이 명확하다. 이는 촛불시민들의 투표율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둘째, 유권자들은 기득권 양당에 지쳐있기 보다 촛불혁명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상황에 지쳐있다. 유권자들은 촛불혁명의 대의를 실현할 수 없는 이번 총선에 투표할 이유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셋째,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현재와 같은 구도에서는 자신의 비례표가 사표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에 맞는 정당에 투표하기가 어렵다. 이는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연합비례정당이 “스스로를 부정하며, 변화의 열망을 억누르고 가두는 졸속정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연합비례정당에 참여를 거부하는 정의당 지도부의 판단이야말로, 촛불혁명의 대의를 부정하고, 촛불혁명으로 표출된 변화의 열망을 억누르고 가두는 졸속정치에 불과하다.
그러면 왜 정의당 지도부는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 정의당의 정당지지율은 4~5%에 불과하다. 이는 2016년 총선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총선에서 대략 7%의 비례표를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수치이다.
지난 3월 2일에 있었던 리얼미터의 총선 비례투표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35%, 미래한국당은 30%, 정의당은 9.8%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일부 지지층이 정의당에 이른바 전략투표를 할 의향을 밝힌 것인데, 이를 감안해도, 의석수는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7석, 미래한국당 25석, 정의당이 8석, 국민의당 4석, 민생당이 3석씩 가져갈 것”으로 예측되었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200302041600001?input=1179m )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를 근거로, 연합비례정당을 안하고 현재의 구도로 가도, 민주당 7석, 미래한국당 27석, 정의당 13석을 얻을 거라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출처: https://news.v.daum.net/v/20200307030939518 ) 즉, 이대로 가도, 미래한국당에 내주는 의석은 크지 않고, 정의당의 의석은 극대화될거라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들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민주당의 지지층이 정의당을 찍어줄 것이라는 계산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전자의 계산에서는 정의당이 10%를, 후자의 계산에서는 정의당이 12%를 득표할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의당의 지지율의 2배에 이르는 수치이다. 결국 민주당 지지층의 ‘전략투표’에 기댄 계산인 것이다.
결국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당 지지층의 전략투표에 기대어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4.
나의 이런 주장에 대해 누군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좋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보자.
1)
정의당이 민주당 지지층의 전략투표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지지율만으로 이번 선거에 임한다면, 7%내외의 득표를 얻을 것이다. 물론 정의당 지도부의 선거연대 거부로 인해서 기존 정의당 당원과 지지층의 상당수가 흔들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도 후한 평가이다.
정의당의 지지율을 10%로 계산했을 때, 비례의석 8석을 얻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만약 7%라고 한다면, 비례의석은 5~6석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 자유한국당 세력은 25~27석을 차지하여 사실상 비례의석을 독식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진보진영은 20석의 의석을 자유한국당에 그대로 헌납하게 된다. 참고로 전라도(전남+전북+광주) 전체의 의석수가 28석이다. 수백만명을 대표할 정도의 의석을 그대로 자한당에게 주는 꼴이다.
결국 정의당만의 독자노선은 민주진보진영의 의석을 극우반공세력인 미래통합당에게 퍼주는 자살행위로 귀결된다. 당연히 촛불혁명을 순항시킬 만한 의석은 기대할 수 없다. 미래한국당은 최소한 120석, 많으면 과반의석을 노릴 수 있다. 촛불혁명은 좌초되거나, 전복된다. 이것이 무엇인가? 반혁명(反革命)이다. 지금 정의당의 자살행위는 반혁명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정의당 지도부가 선의를 내세운 것이라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 정치는 책임이다. 정치세력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한다. 지금 정의당의 계산없는 독자노선은 반혁명으로 귀결될 뿐이다.
2)
이번에는 정의당 지도부의 숨은 내심인, 민주당 지지층의 전략투표에 기대는 전략을 고려해보자. 나름 성과가 있을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의 1/4만 와도, 정의당은 15~17%를 득표할 수 있다. 만약 민주당 지지층의 1/2이 온다면 정의당은 25~27% 득표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미래한국당이 득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30%에 거의 근접한다. 민주진보진영의 의석수는 크게 손해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이제 불가능하다. 민주당의 선거연대에 대해 손을 뿌리친 것이 바로 정의당 지도부이기 때문이다. 민주진보진영이라는 진영으로 묶이는 것도 거부하고, 민주당을 기득권 양당이라 공격한 것도 정의당 지도부이다. 민주당 지지층이 왜 정의당에 비례표를 준다는 말인가?
결국 여기서 나오는 것은 치킨게임이다. 기차가 달려오는 상황에서도 가장 오래 철길에서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치킨게임. 곧 정의당 지도부는 이 구도대로 가면 민주당 지지층이 비례표를 사표로 버리는 것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정의당에 투표해줄거라는 계산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위선(僞善)이다. 정의당은 분명 연합비례정당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는 명분으로, 비례대표제는 자신의 가치에 맞는 정당에 투표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연합비례정당이 유권자들의 가치 투표를 방해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구도대로 가면, 민주당 지지층이야 말로 가치투표를 하기 어렵다. 이른바 심상정 대표가 말한 ‘집단지성’이나, 혹은 ‘전략투표’는 사실은 가치투표가 아닌, 사표 방지용 울며겨자먹기 투표이다.
정의당 지지자들은 사표를 방지하고, 자한당세력을 막기위해 오랫동안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를 해왔다. 정의당 지도부는 그것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역으로 진행되어 민주당 지지자들은 사표를 방지하고, 자한당세력을 막기위해 정의당에 비례표를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정당하다고 보는가?
정당 지지율대로 득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정반대인 전략투표에 의존하려는 이런 주장은 위선일 뿐이다.
5.
정의당 지도부는 연합비례정당을 거부했다. 민주당과의 선거연대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이 없다.
정의당의 지지층과 당원들은 정의당 지도부에 여러차례 연합비례정당을 요청했고, 많은 당원들이 정의당 지도부의 태도에 불만을 품고 탈당했다.
왜 당원들이 탈당하는가?
그것은 바로 정의당 지도부가 반혁명 아니면 위선의 길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핑계로 진행되는 정의당 지도부의 계산없는 독자노선은 촛불혁명을 입법부에서 실현시키켜야 한다는 책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촛불혁명에 대한 반혁명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핑계를 대면서 실제로는 전략투표에 기대려는 정의당 지도부의 노선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게 표를 찍게 만드는 압박이다. 이것은 자신이 정한 원칙을 흐트러뜨리는 위선이다.
촛불혁명의 주체. 곧 촛불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당원들과 지지자들은 이 반혁명과 위선에서 탈출하기 위해 탈당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정의당 지도부는 대답해야 한다.
정의당 지도부는 오늘의 정의당을 어디로 향하게 하고 있는가. 반혁명인가, 위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