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민과 이기는 페미니즘! ; ① 도망칠 수 없다면, 잘할 수밖에
- 2020-02-20 14:17:02
- 조회 439
<조혜민과 이기는 페미니즘!>
'내 탓'하며 움츠려왔던 저는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외침 덕분에 용기 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당의 90년생 페미니스트 국회의원, 조혜민의 핵심 가치는 '이기는 페미니즘'입니다.
이기는 페미니즘이 어떤 가치인지, 이를 어떻게 고민해왔는지 4편의 글을 통해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조혜민과 이기는 페미니즘!> 시리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도망칠 수 없다면, 잘할 수밖에

단국대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섰던 2010년의 조혜민입니다. 마이크는 무조건 제 꺼...! (화질은 포기한다)
학부 시절, 단과대 회장을 맡았다. 어느 날, 누군가 학생회실에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과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건 그 학우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성추행 피해호소인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날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 성추행을 공론화하는 대자보를 붙였더니 학교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내용을 담았다며 대자보가 떼어졌다. 어떤 이들은 내가 정치적인 이득을 보기 위해 대리인이 되었다고 나를 비난했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고 잘못된 싸움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똑똑했다면, 내가 현명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데 도망칠 수 없었다. 내 주변에서는 일상처럼 폭력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의 피해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왔고,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폭력과 차별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못 본 척,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칠 수 없다면 잘할 수밖에”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정면돌파’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여성학을 전공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모두가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도래하기 전이었다.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재학 시절! 동문들과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있다.....☆
여성학을 공부하며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다. 내가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고민과 연구의 나날은 내가 더 탄탄하게 여성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졸업하고나면 모든 질문에 멋지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여성학을 공부하니, 오히려 궁금한 것이 자꾸만 많아졌다.
나는 더 많이 질문하기로 했다. 때로는 제자리걸음 하듯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들에 구구절절 답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되물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질문하는 방법과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라는 여성단체의 활동가로 일하며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사회에 되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졸업식.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내 탓'하며 움츠려왔던 저는 "미투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외침 덕분에 용기 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렇기에 정의당의 90년생 페미니스트 국회의원, 조혜민의 핵심 가치는 '이기는 페미니즘'입니다.
이기는 페미니즘이 어떤 가치인지, 이를 어떻게 고민해왔는지 4편의 글을 통해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조혜민과 이기는 페미니즘!> 시리즈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① 도망칠 수 없다면, 잘할 수밖에

단국대 총학생회장 후보로 나섰던 2010년의 조혜민입니다. 마이크는 무조건 제 꺼...! (화질은 포기한다)
학부 시절, 단과대 회장을 맡았다. 어느 날, 누군가 학생회실에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가 성추행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과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건 그 학우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성추행 피해호소인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날부터 어려움이 시작됐다. 성추행을 공론화하는 대자보를 붙였더니 학교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내용을 담았다며 대자보가 떼어졌다. 어떤 이들은 내가 정치적인 이득을 보기 위해 대리인이 되었다고 나를 비난했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고 잘못된 싸움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똑똑했다면, 내가 현명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두렵고 무서웠다.
그런데 도망칠 수 없었다. 내 주변에서는 일상처럼 폭력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의 피해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왔고,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폭력과 차별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못 본 척,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칠 수 없다면 잘할 수밖에”라는 다짐을 하게 됐다. ‘정면돌파’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여성학을 전공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모두가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도래하기 전이었다.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재학 시절! 동문들과 훈훈한 시간을 보내고있다.....☆
여성학을 공부하며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다. 내가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고민과 연구의 나날은 내가 더 탄탄하게 여성운동을 시작할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졸업하고나면 모든 질문에 멋지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여성학을 공부하니, 오히려 궁금한 것이 자꾸만 많아졌다.
나는 더 많이 질문하기로 했다. 때로는 제자리걸음 하듯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들에 구구절절 답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되물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질문하는 방법과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라는 여성단체의 활동가로 일하며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사회에 되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졸업식. 간신히 졸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