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게시판에 07/30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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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의 부고를 듣고나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일종의 의무감이었습니다. 그 분의 인생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는 그런 의무감이었습니다. 노 의원께서는 워낙 유명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과거 '노유진의 정치카페' 팟캐스트를 통해서 2년가까이나 매주 목소리를 들었었고, 최근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도 계속 목소리를 들어왔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잘 알던 분같이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분의 삶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먼저 인터넷을 찾아서 그분을 삶을 연표로 만들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별로 알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 진보운동의 역사를  좀더 공부하지 않고서는 노 의원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작년에 입당 후부터 여기 저기서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진보의 역사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또 인터넷을 찾아가며 진보운동의 역사를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려고 노력했고,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노 의원의 삶을 나름대로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몇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역사와 사회문제에 무식한 공돌이 출신 IT 종사자로서 진보운동을 겪어본 적 없는 1년 반 남짓한 신입 당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깜냥으로 진보운동사를 살피고 감히 노회찬 의원을 삶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이유는, 현재 정의당의 당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놓고 진부한 추모사만 읽을 뿐, 정작 그 분의 유지를 잇기 위한 진지한 성찰이나 노력이 전무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깊은 실망과 좌절을 느낍니다. 이 점을 당 지도부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 한국 진보운동사 간략 개관

앞에서 이야기하였듯이 노회찬 의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진보운동사를 대략적으로라도 살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가 인터넷을 찾아가며 조사한 한국 진보운동사를 아래와 같은 하나의 도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한국의 진보운동사는 여러개의 줄기를 따라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역사이기 때문에 사건들의 병렬적 진행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어야만 어느 정도라도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보운동계의 수많은 세력들의 이합집산의 과정이 너무 복잡하여 이것을 눈으로 따라가며 확인하지 않는다면 역시 이해하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 한국 진보운동사 간략한 도표 ]

(* 이 도표는 편집자가 임의로 그린 것으로 부정확합니다. 대략적 흐름 파악을 위한 참고용으로만 적합합니다)

제가 부족하나마 이해하기로는 197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 진보운동의 역사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이루어졌다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흐름은 노동운동입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도화선이 된 노동운동은 특히 1980년대 초반, 많은 대학생들이 위장 취업을 통해 노동 현장에 침투하여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운동을 통해서 크게 성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구로 동맹 파업(1985) 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다시 전노협의 창설(1990), 그리고 드디어 민주노총의 창설(1995)이라는 성과를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심상정 의원, 노회찬 의원께서도 1980년대 위장 취업을 통한 노동운동으로 진보운동을 시작하신 바가 있습니다.

두번째 흐름은 민족주의 운동 또는 통일 운동입니다. 분단국가라는 민족적 특수성에 속에서 수많은 재야 인사들이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을 전개하였습니다. 문익환 목사 등 많은 분들의 노력 끝에 범민련의 설립(1990)과 범민족대회의 개최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또한 진보운동계 내부적으로도 북한에 대한 입장차이에서 기인하는 노선 충돌로 분열하여 사실상 민간 영역에서의 통일운동은 실패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세번째는 한국 진보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학생운동입니다. NL과 PD의 대립으로 많이 알려진 학생운동은 앞에서 이야기한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이라는 두 가지 흐름이 그대로 학내로 옮겨온 것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먼저 학내 노동운동 계열은 소위 PD라고 부르는 계열로서 주로 사회주의적 이상을 목표로 두고 노동 계급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였던 이론적이고 학구적인 계파입니다. 반면에 통일운동을 중요시했던 학생운동 계열은 NLPDR 또는 NL이라고 부르는 계열로서 이른바 자민통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민족해방과 제국주의 타도 등을 주장했던 보다 활동적이고 적극적이었던 계파입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학생운동의 주도권은 완전히 NL로 넘어갔으며, PD계열 학생운동가들은 대부분 노동운동계로 자리를 옮겼고 학내에서는 그 세력이 거의 소멸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NL계 학생운동은 범민련 등의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등 통일운동을 비롯한 정부투쟁을 전개하였지만, 1996년 연세대 사태 등을 겪고 또한 학생들의 진보운동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등의 변화 속에서 쇠퇴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통해서 배출된 진보 운동가들은 현재 민주당, 정의당 등 정치권은 물론,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운동을 지탱하는 주요 인재들이 되었습니다.

한편 이과같은 진보운동과 별개로, 1990년 초반부터 진보운동계 일부 에서는 진보운동이 재야운동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제도권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1992년에 백기완 후보, 1997년에는 권영길 후보를 진보 후보로 추대하는 등의 활동으로 나타났으며, 2000년에 드디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는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이에 진보운동계의 커다란 두 흐름이던 노동운동계와 통일운동계는 민주노동당이라는 하나의 무대에서 서로 만나 함께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는 안타깝지만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두 세력은 수많은 충돌과 분열을 겪게 되었습니다.

* 노회찬 의원의 삶

이제 앞에서 살펴본 진보운동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회찬 의원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노 의원께서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중이던 시절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취득(1982)하였고, 인천지역 노동현장에서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천지역 노동운동은 이른바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동맹)'의 창립(1987)으로 이어졌고 노의원께서는 인민노련의 상임위원 및 기관지인 '격주간 사회주의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이 때가 30대 초반의 시절입니다.

한편 인민노련 활동 중 노회찬 의원께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1989)되어 2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거치셨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삶을 앞에서 만들었던 진보운동사 도표에 역임하셨던 직책을 위주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노회찬 의원이 역임하셨던 직책 기록 ]


혹자들은 노의원의 삶을 일컬어 '빈민, 투명인간과 함께하는 삶이었다'라는 식으로 추모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께서 실제로 노동자들, 빈민들, 투명인간들을 위해서 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투쟁하셨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위의 도표를 만들기 위해서 데이터를 수집하며 확인할수 있었던 것은, 노회찬 의원께서는 '투쟁가' 보다는 '전략가, 행정가, 협상가, 중재자'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수많은 단체들에서 사무총장, 본부장, 위원장, 부대표,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그는 필드 플레이어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걸쳐 추진했던 프로젝트는 바로 '진보정당 건설과 발전'이었다는 사실이 위의 도표를 그리면서 제가 알 수 있었던 유일한 결론입니다.

노 의원의 삶의 전반기인 1990~2000년 사이에 그가 활약한 단체들은 인민노련, 백기완 선거대책본부,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진보정치연합, 그리고 국민승리21 입니다. 이 시절은 노동운동계가 1987년 대투쟁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격렬하게 투쟁하던 시기였고 전노협(1990)과 민주노총(1994)이라는 결실을 맺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통일운동계에서는 문익환 목사님을 필두로 범민련(1991)을 결성하고 방북을 포함하여 민간 차원에서 통일운동을 위한 대북 접촉을 포함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던 시절입니다.

또한 수많은 재야 민중 운동의 에너지를 결집한 총합체인 전국연합이 발족(1991)하였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보운동계 내부가 일치 단결하였던 시절은 존재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전국연합은 범민련의 노선을 놓고 서로 분열하였습니다. 수위를 넘은 상호 비방과 중상모략에 가까운 비난 등 극심한 내부 헤게모니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전국연합은 분열하였고 97년 대선에서 양측은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한편 노회찬 의원께서는 1990년 초반부터 진보운동의 나갈 길은 재야의 운동에너지를 제도권 정당으로 실체화 시키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1992년 백기완 선거대책 본부를 시작으로, 1992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1995년 진보정치연합, 1997년 국민승리21 에서 핵심 직책들을 역임하신 그의 활동이력은 노 의원의 관심과 목표가 오로지 진보정당의 건설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창준위를 거쳐 2000년 드디어 민주노동당이 탄생하였습니다. 민주노동당 이후의 시기를 노회찬 의원의 생애 후반기라고 본다면, 그 후반기는 실체화된 진보정당을 안정화시키고 집권세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삶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의 노력은 다시 세 번에 걸쳐서 산산조각 납니다. 민주노동당은 곧바로 내부 투쟁의 소용돌이로 말려들었습니다. 국민승리21 시절 진보정당 창당 운동을 외면했던 NL계 활동가들은 '군자산의 약속(2001)'을 통해서 목표 노선을 수정하더니 뒤늦게 민주노동당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노동당 내부는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파들간의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2007년 노회찬 의원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정파들을 향해서 정파 투쟁을 멈춰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가 원했던 진보정당은 정파간 투쟁을 멈추고 서로 통합하여 국민과 소통하는 대중정당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채 10년도 넘기지 못하고 결국 분열하였습니다.(2008) 그러나 노회찬 의원께서는 다시한번 진보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고 통합진보당이 탄생하였습니다.(2011) 그러나 통합진보당 역시 당내 정파들 간의 당권 투쟁이 재현되며 다시한번 철저하게, 오히려 이전의 민주노동당 시절보다 더욱 철저하게 박살이 났고 진보운동권은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몰락하였습니다.

노회찬 의원을 중심으로 진보운동권은 가까스로 진보정의당을 창당(2012)하여 다시한번 진보운동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1%의 지지율을 간신히 10%가지 회복하는 과정에서 노회찬 의원은 진보의 아이콘으로 TV방송은 물론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등을 종횡무진 활약하며 정의당 지지율 상승의 가장 큰 역할을 하셨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 개인은 2013년 국회의원직 상실이라는 아픔을 겪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노회찬 의원의 삶을 보면 그가 평생을 걸쳐 추구하던 꿈은 '진보정당의 건설과 발전'이었으며, 그 꿈은 실현의 단계에서 번번히 좌절을 겪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좌절의 원인들은 특이하게도 정부의 탄압과 같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바로 그의 동료들, 동지들 때문이었습니다. 진보정치꾼들의 내부 권력 투쟁들은 노회찬 의원의 꿈을 번번히 무산시켜왔습니다.

노회찬 의원께서 삶의 마지막 노력을 투사하셨던 정의당이 노회찬 의원의 2007년 바람처럼 정파정치에서 자유롭고 대중과 소통하는 진보정당으로 발전하였다면 그의 말년도 평화롭고 보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제가 지난 1년 반여간 정의당에 입당하여 읽었던 자료들과, 또한 직접 겪었던 사건사고들을 통해서 알게된 정의당의 모습은 노회찬 의원의 말년이 결코 행복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 정의당과 정파정치

이제 정의당은 노회찬 의원의 꿈을 이루기에 충분한 정당이었는지, 즉, 정파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정당이었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정의당은 진보운동권의 분열과 이합집산 속에서 PD계열인 통합연대, NL계열인 인천연합, 그리고 참여계가 주축이 되어서 만들어진 정당입니다. 각 정파들이 거쳐온 흐름은 위에서 만들었던 도표의 화살표를 따라가면서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정의당 정파 구성표]

정파	의견그룹
인천연합	- 이정미(당대표), 윤소하(국회의원), 김종민(서울시당위원장)
광주전남연합	- 윤소하(국회의원), 강은미(부대표)
통합연대	- 심상정(前당대표), 노회찬(원내대표)
참여계	- 천호선(前당대표), 한창민(부대표)
평등사회 네트워크 (진보결집+)	- 나경채(前공동당대표), 강상구(교육연수원장)
노동정치연대	- 노동운동계 정치 조직으로 출범하였다가 4자 통합당시 정의당에 합류후 해산
국민모임	- 김세균 교수(前공동당대표), 손호철 교수(미래정치센터 이사장)

PD계의 대표 정치인인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8년간 근무했던 레전드 운동가로서 2004년에 민주노동당에 비례후보 1번의 대우를 받으며 영입되어 정치를 시작하셨습니다. 시작부터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라는 든든한 정파적 배경이 있으셨던 것이죠. 그러나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이후 통합진보당과 현재의 정의당에서도 항상 당내 다수정파는 NL계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 의원을 비롯한 PD계파는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매번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한편, NL계는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연합들인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전남광주연합, 부울경 연합 등 여러 계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통합진보당에서 경기동부연합이 사단을 일으킨 이후, NL계도 서로 분열되어 그 중에서 인천연합, 광주전남연합 정도만 현재 정의당으로 합류하여 있는 상황입니다. NL계는 과거 민주노동당, 통진당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통일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북한과의 입장 정리 문제에서 항상 부침을 겪어왔고, 그 과정에서 이정희와 같은 대중 정치인을 잃었습니다. 대중앞에 내세울 정치인의 부재를 겪어왔다는 것이죠. 인천연합도 마찬가지 입니다. 숫자로 따지면 정의당내 최대 정파로 볼 수 있지만,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항상 심상정, 노회찬 같은 타 정파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이정미 대표께서는 아직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으시니까요. 어찌보면 PD계파와 정 반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PD계는 단일 정파라고 하기에는 사회주의 운동 ~ 노동운동계의 폭넓은 스펙트럼과 그 이론 중심적 성향으로 인해서 심상정 계와 같은 단일 정파로 분류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특히 과거 민주노동당 내 PD계파는 진보신당, 노동당 등을 거치면서 재차 분열을 겪었으며, 구 사회당과 노동당의 통합 과정에서도 당권파, 비당권파간 충돌을 겪었습니다. 그중 노동당 당권파가 다시 분열하여 진보결집+라는 이름으로 현재 정의당에 입당(4자통합, 2015)한 상황이며, 노동당 비당권파 중에서도 일부 분들이 개별적으로 정의당으로 합류하여 있습니다.

한편, 현재 정의당내 정파들의 역학관계는 최근들어 여성주의 운동, 소수자 운동을 표방하는 정체성 정치 세력의 대두와 함께 더욱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정의당내 정파세력들은 과거 통진당 시절의 경기동부연합처럼 드러내놓고 폭력적 과격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각자 계파들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면서 필요에 따라 연합하거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격한 투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정파 정치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랬동안 유지되어왔던 정파 정치의 폐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반목과 협력을 주고받으며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런 내부 정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당내 각 정파 세력들이 당 내부에서 수상한 손익관계를 주고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정황은 다양하게 발견됩니다. 예를들어 지난 3기 당직선거에서 심상정 의원이 1차투표 -> 2차투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상식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표의 집결 현상을 통해 노회찬 의원을 역전하여 당선되었던 과정이 그렇습니다. 또한 지난 2018 지방선거 서울시의원 비례후보 선정 과정에서는, 내부 정파 세력들이 무려 비례후보들간의 후보 단일화라는 초유의 상황을 연출하여 1번의 순번을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외부에서 확인불가능한 내부 정파들 간의 담합과 합종연횡은 당원들의 참정권을 훼손하며 당내 민주주의의 해치는 사례라고 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민주주의 정당으로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편, 정의당내 정파정치는 당내 기구의 공정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많은 사건들을 일으켰습니다. 2017년에는 평당원이 당내 특정 세력을 비판하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 무려 당으로부터 당의 평판을 해쳤다는 이유로 고소고발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특정 정파의 어떤 당직자는 고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서 '애미 뒤진 대중이'라는 막말을 SNS에 올려서 당내외의 공분을 샀지만 불과 6개월의 당권정지 처분을 받는 것에 그쳤습니다. 최근에는 평당원들이 게시판에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게시물을 작성하였는데, 그 게시물 중에 성소수자를 향한 거북한 표현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유만으로 당기위에서 여러 평당원들을 무더기로 제명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어떤 당내 계파조직은 지난해에 자기들의 단톡방에서 노회찬 의원을 향해서 '게시판에서 비판해도 반격하지 못할 것이다, 당게시판 논쟁에 이용하자'라는 정치공작적 모의를 주고받은 것이 밝혀졌지만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는 등, 정파주의 앞에서 당내 기구들의 공정성은 기대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처럼 당내 정파들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담합 사례들은 정의당을 불투명하고 의심스럽게 만들며, 또한 이러한 불투명성은 당내 문제의 내부적 자정작용을 방해합니다. 결과적으로 당을 타락시킬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미래에 있습니다. 정의당은 현재 10%의 지지율을 얻을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만약 정의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의 확대 방안까지 성공하게 된다면 정의당이 확보할 수 있는 비례의원의 수는 수십석에 이르게 되죠. 이것은 정파 정치의 문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이권과 권력이 걸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 2018년 서울시 비례후보 선정과정에서 불과 시의원 1석을 놓고 벌어졌던 정파 조직들의 부끄러운 움직임을 떠올려보면 앞으로 정의당 내부에서 벌어질 이권다툼의 심각성이 어떠할 것인가, 진보운동계는 결코 도덕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과거 통진당 사태가 발생했던 것은 불과 6년전입니다. 정파 정치의 문제가 당내에 여전히 남아있는 한 정의당의 앞날이 과연 순탄할지 의문입니다. 통진당의 문제를 일으켰던 정파 세력들과 현재 정의당내 남아있는 정파 세력들이 과연 얼마나 다른가, 한번 각자 반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다시 노회찬 의원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 정의당과 노회찬 의원

노회찬 의원께서는 대외적으로 PD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 의원께서는 노동운동을 통해서 진보정치에 입문하셨을 뿐만아니라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도 PD계와 그 정치적 입장을 함께해오셨기 때문에 PD계로 보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회찬 의원께서는 당내에서 계파가 없으셨던 분이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진보정당내 정파조직들이 서로 갈라서서 펼쳤던 당권 투쟁의 역사들을 생각하면, 정파가 없는 홀홀단신의 정치인이라는 것은 사실상 당내 영향력이나 입지가 크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노회찬 의원의 받았던 국민적 지지와 당내 공헌도를 고려하면 이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 노회찬 의원께서는 정파가 없는 외로운 처지이셨던 것일까, 항상 궁금했던 점입니다.

그러나 지난 몇일 간 앞에서 보여드렸던 도표를 그리면서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심상정 의원이나 이정미 의원같은 경우는 투쟁 조직인 민주노총이나 전국연합 내 지역조직 등에서 정파 동지들과 함께 투쟁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하셨습니다. 덕분에 정치 입문 초기부터 소속 투쟁조직으로부터 정파적 뒷받침을 항상 받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노 의원께서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필드 플레이어라기 보다는 진보정당 추진위와 같은 단체에서 전략가, 행정가로서 세력들을 중재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항상 해왔기 때문에 그 정치적 배경을 어떤 특정 세력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였다고 생각합니다. 노의원 개인은 스스로의 행정능력이나, 이론가로서의 능력은 물론이고 특히 토론 등 언변에서의 탁월한 역량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정파적 지원이 전혀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진보의 아이콘으로서 위상을 얻으셨습니다. 각 단체나 정당의 주요 요직도 두루 거치셨습니다. 만약 필요했다면 정파적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정파와 거리를 두고 있으셨고, 그 진짜 이유를 아래 김가님의 글 중 다음의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노회찬 의원 본인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의 뜻이 그러했다고 할 지라도, 정의당이 노 의원의 헌신과 공헌에 걸맞는 대우를 해드려야 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과연 정의당은 그렇게 했는가, 당 지도부에게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

2012년 진보정의당이 막 성립되었을 때 노회찬 의원은 공동대표로서 1년여간 당의 초기 혼란을 수습하는데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2013년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한 판결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습니다. 야인으로 돌아가셨죠. 지지율이 필요했던 당은 '노유진의 정치카페'라는 당 홍보용 팟캐스트 방송을 기획했고, 노 의원은 평당원 두 명과 함께 2년여간 이 방송을 진행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팟캐스트는 초대박이 났고 초기 정의당의 지지율 상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노 의원께서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당에 헌신하는 와중에 3기 당직선거가 있었습니다.

2015년의 일입니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심상정 의원은 1차에서 노 의원에서 뒤졌지만 2차 투표에서 대단히 이례적인 몰표를 받고 노회찬 의원을 역전하여 당대표로 선출됩니다. 당시 노 의원께서는 심각한 충격을 받으셨고 노유진 팟캐스트 녹화에 불참하십니다. 노유진의 광팬이었던 저는 이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요. 물론 당시 2차 투표의 결과가 정파 정치의 야합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좋습니다. 따로 더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삼성 X파일이라는 국가적 문제에 대한 용기있는 폭로, 그 결과로 국회의원을 상실하여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으셨음에도 끊임없이 당에 헌신하던 노 의원에게 당대표 정도의 직책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만약 노 의원께서 든든한 정파적 권력을 가지고 계셨다면 당시 선거에서 심 의원에게 역전당하는 일은 겪지 않으셨을 것이라는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의당은 노회찬 의원을 합당하게 대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노 의원께서 의심스러운 정치자금을 받아야 했던 것은 2016년 3월의 일입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2016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 노 의원께서는 정치자금을 받아야만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으셨다는 것이며, 이것은 정의당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임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다시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노회찬 의원의 말년의 삶에서 비극이 초래된 직접적이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정의당'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각 정파들의 수장인 심상정, 이정미, 그리고 기타 각 정파의 알려지지 않은 비선 세력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의 정파주의가 노의원에 대한 홀대를 초래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노 의원의 말년을 외롭게 했던 원인이 아닌지 정말 진지하게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을 따지는 것은 오히려 덜 중요한 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회찬 의원이 평생을 걸쳐서 추구했던 진보정당의 꿈이 또다시 정파정치에 의해서 좌절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정파 정치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정의당에 불투명성, 불공정성, 비민주성을 초래하며 또한 당의 대중성, 즉 국민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원인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의당은 결국에는 내부에서부터 고여서 썩어갈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이제 안계십니다만 그가 평생을 추구했던 목표가 실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파정치는 노회찬 의원을 평생동안 괴롭혔던 적폐입니다. 정의당에서 이것을 청산하는 것이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부터 정의당이 얻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당 지도부 및 주요 정치인들이 말하는 '투명인간들을 위한 삶을 사셨다'는 추도사는 부족합니다. 당 지도부는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부터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심각하며, 훨씬 더 진지한 무엇인가를 성찰해내고 그것을 목표로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