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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유세 유세문

  • [당대표] [부산울산경남] 직무급제, 왜 필요한가?, '노동의 평등'을 위해서입니다.

 

"직무급제, 왜 필요한가?,
'노동의 평등'을 위해서입니다."

 

정의당 대표 후보 조성주, 부산울산경남유세 (22. 10. 1.)
 

사랑하는 부산시당· 울산시당·경남도당 당원 동지 여러분.
당대표 후보 조성주입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전국 유세에서 저는 당원 여러분께서 주신 질문에 답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제는 6411 버스에서 내리자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직무급제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김윤기 후보님께서 SNS를 통해 제가 제안한 '직무급제 도입'을 비판해 주셨습니다. 이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가, 그동안 우리가 꺼내놓지 못했던 주제를 가지고 뜨겁게 토론하는 선거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미, 이동영, 정호진 후보님들도 각자의 견해를 밝혀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인천의 유리공장에서 일하셨습니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었습니다.

87년 노동조합이 생기고 제 가족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임금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매해 올라 단칸방에서 반지하로, 다시 13평짜리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작은 소형차도 생겼습니다. 저와 쌍둥이 동생은 대학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87년 인천에서 마산에서, 창원에서, 옥포에서, 울산에서 노동자들이 일어섰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벗어나자고 말하는 ‘연공급 호봉제’가 오늘의 저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저와 제 가족의 삶을 만든 그 임금은 더 이상 모든 노동자의 무기가 아닙니다.


전체 14%밖에 안되는 호봉제이지만, 100인 이상 기업은 54.9%, 1,000인 이상은 69%로 호봉제는 사실상 어지간한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의 임금체계입니다. 입사 때와 퇴사 때 받는 임금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그 기업은 외주화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더 많이 씁니다. 그리고 그 비정규직의 다수는 여성으로 채웁니다.

대기업 정규직이 100을 받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은 62를 중소기업 정규직은 57을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42를 받는 이 불평등의 구조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었던 그 임금이 어느새 누군가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두꺼운 벽이 되었고, 어떤 시민들을 주변으로 내쫓아버렸습니다. 누군가의 울타리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네, 맞습니다. <연공임금>은 우리 노동자들이 만든 성과입니다.

연공임금 안에서 노동자들은 평등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14%의 평등을 만들자고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했습니까? 우리의 꿈이 그렇게 작았습니까?

부울경은 조선·자동차·기계·화학, 대한민국 제조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노동자들은 산업화를 이끌었고, 자신의 일터와 지역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했습니다. 하지만 발전을 이끌었던 대공장들은 더 이상 신규 채용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여영국 전 대표님이 다니셨던 통일중공업, 지금은 SNT 중공업의 조합원 평균 나이는 57세입니다. 정년까지 다닐만한 괜찮은 일자리는 지방공기업 정규직 일부가 아니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임금 고강도의 위험한 하청 일자리는 청년의 몫이 됐습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도, 숙련이 높아져도 임금은 제자리입니다. 여성청년들은 그 제조업에 취업조차 하기 힘듭니다. 사장 마음대로 임금 후려치는 사무직이나, 서비스업에서 파트타임을 합니다. 동남지방통계청은 경남·부산·울산 등 동남권 청년 10명 중 6명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권역으로 떠난다고 보고했습니다. 

<직무급>은 완벽한 임금체계가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직무급은 사용자가 주는 대로 받는 임금이 아니라 나의 숙련과 경력, 노동의 강도, 업무의 가치에 따라 보상받는 임금체계, 바로 '평등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방송작가라면 MBC에서 일하건, KNN에서 일하건 KBS에서 일하건 숙련 정도에 맞춰서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거제에서 보았습니다. 배를 만드는 22년 차 조선업 숙련공이 받는 임금이 하청 노동자 월급 220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런데 우리는 애써 못 본 척했습니다. 훨씬 안전하고 수월한 지원업무를 하는 원청 직원은 그 두 배가 넘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진실을 말입니다. 이걸 바꾸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방 제조업이 첫 일자리인 청년들도 숙련을 쌓는 노력을 하면, 적절한 삶의 계단을 밟아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지극히 평범하지만 작은 성공의 사다리를 밟을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기업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개별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대표조직인 ‘산별노조’에서 결정해서, 노동조합이 명실상부한 산업의 주도자가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을 산별교섭에 나오게 해야 합니다.

경영자단체라는 이름으로 위장해서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해 각종 기구에 사용자로 참여하는 경총, 전경련, 무슨 협회 같은 조직들은 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단체’로 만들어 초기업별 교섭을 활성화할 것입니다. 불가피해지는 정년 연장을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직무급을 도입하기 위한 기회로 만드는 계획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지금부터 논의하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우리의 이상, 그리고 우리 당의 강령을 실현하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직무급 도입이 아니라 산별교섭으로 해결해야 한다.” 반문하시는 분들을 만납니다. 

?엉뚱한 대답입니다. 저는 산별교섭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산별노조가 '어떤 임금체계'로 산업의 평등을 만들어야 하는지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산별노조는 기업별 교섭을 할 수 없고, 기업별 임금체계인 호봉제로는 산별교섭을 할 수 없습니다. 산별교섭은 처음부터 그 산업에 존재하는 노동의 가치 기준을 세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사용자와 대등하게 맞서, 그 직무의 가치를 입증해 내는 것이 바로 노동조합의 자랑스러운 역할입니다.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대기업 노동조합을 설득할 수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냉소의 목소리도 듣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연구자들과 학자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래서 여러분은 연구자이고, 학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는 정치하는 사람들입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바로, 정치가 존재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건강보험 통합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주 5일제 도입도, 노동시간 52시간 상한제, 대한민국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모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였습니다. 누군가가 그게 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말할 때, 그런데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정치입니다.

지금 우리의 진보정당의 존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윤석열 정부의 노사정위원장으로 복귀한, 한때는 노동운동가였던 김문수 씨는 한국에서 진보정당은 100년 내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걸 실현한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가 여기 서서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독일노동운동이 해낸 일, 우리라고 못 하겠습니까?

91년 통일 직후, 절반에 불과했던 동독 지역 노동자들의 임금을 20년 만에 95%까지 끌어올린 독일노동운동의 저력은 끈질긴 사회적 직무급을 통한 산별교섭,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내부 설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북한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자고 말씀드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같은 공장, 같은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 딸뻘 되는 노동자들이 겪는 임금의 불평등을 바꾸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깨는 이 일은, 20대도 30대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젊은 패기만으로 산업화와 경제발전, 노동운동이라는 현대사 그 자체가 뒤엉켜 만들어낸 이 '기막힌 불평등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 미래세대의 노후보장을 위한 연금 개혁이 결국 현재세대인 우리의 몫이듯, 노동의 미래를 바꾸는 이 길에 선배 세대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노동자대투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든 선배님들은 아직 물러날 때가 아닙니다.

선배님들은 여전히 역사를 만들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노력했지만 여기까지라고. 이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는 다음 시대의 숙제라고 남기기에는 아쉽지 않으십니까?

위대했던 과거를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역사라고 추억하며 젊은 정치인들의 미숙함에 가끔 충고하고, 때로 응원하며 사라지기에는 아직은, 정말로 아쉬움이 남아 있지 않으십니까? 가슴 한 켠에 끝내는 버릴 수 없는 노동과 평등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한 번 더 일어서주십시오. 다시 한번 역사를 만들어주십시오.
후배 세대와 손잡고 대한민국에 평등과 해방의 길을 향한 마지막 역사를 만들어 주십시오.

저 조성주가 앞에 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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