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양평군위원회

  • 20191015 몽양여운형기념관 윤경로 관장님 만남
2019년 10월 15일 몽양여운형기념관 신임 윤경로 관장님 만남 









분즉도합필립(分則倒合必立) 나뉘면 쓰러지고 합치면 반드시 일어난다. 

몽양 여운형, 1944년 신년 김문갑에게 써준 자필



 

윤경로 몽양여운형기념관장 취임 기념. 유상진 정의당여주양평위원장 대담 내용.

2019.10.15.(화) 장소 : 몽양여운형기념관

 

 

유 : 안녕하세요? 윤경로 신임관장님께서 몽양기념관에 새로 오셔서 오늘 인사차 찾아뵈었습니다. 저는 정의당 여주양평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상진입니다.

윤경로 관장님은 제가 예전에 서울YMCA에서 실무자로 일할 때 YMCA 시민논단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계셔서 이미 여러 번 뵌 적 있습니다. 윤경로 총장님이 양평에 오시게 되셔서 다시 만나뵙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고맙습니다.

 

윤 : 저도 반갑습니다.

 

유 : 저는 서울에 있을 때는 몽양 여운형 선생님에 대해서 그저 독립운동가이고 우리나라의 진보적인 정치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깊이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양평에 살게 되면서 신원리에 몽양기념관이 있는 것을 보고 특히 더 깊이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말하기는 부끄럽기는 한데 몽양 여운형 선생을 다시금 살펴보니까 저랑 좀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요. 보니까 몽양선생이 평양신학교를 나왔는데, 제가 학부를 장로회신학대학교를 나왔어요. 장로회신학대학교가 6.25 전쟁 전에는 원래 평양신학교였는데 전쟁 후에 남한으로 내려와서 장로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로 갈라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주 고학번의 대선배님이시더라고요. 후배된 자로서 그 분의 발꿈치도 못 따라가는 거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또 한편 몽양선생님은 YMCA에서 운동부장을 하셨어요. YMCA 야구단을 이끌어가기도 했고 제가 알기로는 영화에서 송강호 역할의 모델이 아마 몽양선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또 직장 선배이기도 했어요. 또 한편으로는 진보적인 정치인으로서 따지고 보면 이념이나 성향에 있어서도 정의당과 가깝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저하고도 인연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윤 : 미남이라는 것도 아주 닮았네요.

 

유 :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대중 앞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연설가이자 건강하고 당당한 풍채, 이런 모습은 정말 멋있기도 해서 닮고 싶습니다.

 

유 : 윤경로 관장님은 최근 근황은 어떠신가요?

 

윤 : 네, 아주 바쁘게 잘 지내요. 지난 2년 반 동안 몽양기념관이 내홍이 좀 있었다고 할까 비정상 운영되었다가 정동균 군수님께서 다시 정상화시켜주셨습니다. 제게 관장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처음에는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6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오는데 그게 참 좋아요. 경치도 아름답고 공기도 맑은 곳에서 좋은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유 : 정동균 군수님이 새로 양평 군수님이 되시고 몽양기념관을 정상화시킨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고 감사했어요. 그런데 저는 더더욱 놀랍기도 하고 기쁜 소식이 윤경로 총장님을 양평에 모셨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정동균 군수님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너무 잘됐습니다. 이제 정상화되고 누가 이끌어 가느냐가 정말 중요한데 근현대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시고 가르치시고 정말 그 맥을 바르게 짚고 계시는 대한민국의 손에 꼽는 분을 양평에 모셨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 몽양 선생은 어떠한 분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윤 : 제가 역사학도 아닙니까? 우리 역사를 하는 특히 현대사 관련된 학자들에게 몽양이 새로운 분은 아니고 역사적으로 훌륭한 분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극심한 좌우 대립과 전쟁, 반공독재를 거치는 과정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은 우리 역사에서 왜곡되고 일반국민들에게 잊혀진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더구나 몽양이 태어난 고향에서도 올바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몽양 선생은 유상진 위원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일찍이 기독교에 귀의해서 입교하고 승동교회에서 6,7년 동안을 지금으로 말하면 전도사 역할을 했고, 그래서 평양신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셨습니다. 상해로 망명을 떠날 때도 사실은 신학을 할 생각으로 갔던 그런 기본에는 그분이 기독교적인 정체성이 강했던 평생을 기독교적인 정신과 사상이 깊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일찍이 자기 집안의 노비들을 다 해방시켰죠. 이분의 일생이 평민들을 중심으로 민주적인 바탕에 사상을 갖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 유위원장님 같이 기독교적인 내면 가운데 깊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뒤늦긴 해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그분에 대한 서훈도 이루어지고 우리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도 자리를 잡게 되고 그래서 이제는 많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 몽양선생이 상해에서 처음 만든 신한청년당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새롭게 조명되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었죠. 3.1운동이 국내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동포들이 사는 일본이나 중국, 미국에서 여러 곳에서 자주독립을 위해서 궐기할 수 있었던 시발이 바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 만든 신한청년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바로 우리 양평 출신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양평 주민들은 큰 자부심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유 : 관장님은 어떻게 몽양기념관과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윤 : 3.1운동 발단의 중심에 몽양 선생이 있었던 때문인지 양평 지역의 3.1운동 또한 전국 어느 곳보다 광범하고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때문에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양평에서도 많은 행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강연과 포럼에 제가 몇 차례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양평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제가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해서 이렇게 관장으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유 : 여운형 선생은 양평이 낳은 최고의 인물로 우리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거 같은데요. 저도 국회에 가보니까 국회 로텐더홀 벽면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단체사진이 있는데 거기 가운데 몽양여운형 선생님 딱 앉아 있어요. 우리 양평에서 배출한 인물이 우리 대한민국 국회 한 가운데에 계시는데 정작 우리 양평 사람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여기 강 건너편에 상심리라고 있습니다. 그 마을에 상심리 교회라고 100년이 넘은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가 몽양 선생님을 평양신학교에 보냈다 하더라고요. 교회 앞에 가면 비석이 있습니다. 내용도 적혀 있고, 이렇듯 곳곳에 몽양선생의 흔적이 양평에 남아 있습니다.

 

윤 : 그러니까 이 분의 호가 몽양 아닙니까? 어머님이 치마폭으로 태양을 품는 태몽으로 태어난 분이 몽양선생입니다. 태양을 품은 상당히 큰 인물인데, 원래 큰 인물이 고향에서는 빛을 못 보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그랬어요. 예수님도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고 핍박 받았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몽양은 1886년에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집안이 원래 동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몽양 때에 와서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시기 기독교는 우리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파이프 라인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 한국 근대사를 개척한 인물들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많았어요. 이승만도 그렇고 김구, 김규식, 여운형 심지어 김일성도. 한국의 근대사를 연 대표적인 인물들은 거의 예외없이 기독교적인 세계를 갖습니다. 기독교적인 정신을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같이 가져갔었죠. 그러한 정신과 연결시키는 인물로 대표적인 인물이 몽양과 김규식을 들 수 있습니다.

  몽양은 특히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는 이런 이념적인 것을 뛰어넘는 정신을 강조했어요. 사실 기독교는 이념을 뛰어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이데올로기 아니겠습니까? 사회주의 같은 대개 이념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몽양은 뛰어넘었죠. 그래서 사실 해방공간에서 좌우간에 충돌이 심할 때 좌우로 분열되었을 때 어떻게든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기독교적인 정신이 저변에 깔려있었기 때문이었지 않는가라 생각합니다.

 

유 : 오늘의 기독교가 사실 많이 보수화되면서 몽양선생이 처음 받아들였던 기독교의 초심이 많이 변질되고 상실되어 안타까움이 큰 데, 그때의 그 초심이 대한민국에 다시 되살아나야 하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봅니다.

 

윤 : 저는 지금 한국의 기독교가 너무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한국전쟁으로 민족 간 분열과 대립이 일어나고 특히 북쪽에서 공산주의의 핍박을 받고 그 분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굉장히 반공주의에 매몰되었는데, 이제는 예수 정신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어요. 기독교 정신을.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가치관이 기울어진 이런 현실에서 기독교가 균형을 다시 잡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좀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3.1운동에 있어 의미있는 백주년이 되는 해에 더욱 현재 태극기집회가 기독교 중심으로 되고 있는데 이를 넘어섰으면 하는 바람과 안타까움이 있어요.

 

유 : 기왕에 말씀이 나온 김에 지금 조국 전장관으로 인해서 어제 사퇴했지만 우리나라가 너무 분열된 상황 아닙니까? 광화문 집회, 서초동 집회 하면서 양쪽이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오히려 정치가 국민들을 더욱 양극단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몽양선생님은 독립 이후 어떻게든 대한민국을 하나로 끌고 가고자 했고 본인의 생각과 이념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서 좌우합작을 하면서 통합의 정신을 몽양선생이 보여주셨는데 몽양정신으로 지금의 분열된 대한민국을 바라봤을 때 어떤 대안이나 방법이 있을까요?

 

윤 : 만약 몽양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한마디 하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혈농어수(血膿於水)’ ‘피는 물보다 진하다’ ‘우리는 하나다’ 이런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여운형 선생처럼 통 큰 입장으로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그런 지도자나 정치인이 있어야 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는 정치다운 정치를 해서, 시민을 거리로 내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유 : 요즘의 한일 국면에 대해서도 한 말씀해 주세요.

 

윤 :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에 일본의 일방적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지소미아 종료 등으로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양국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일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아직도 제국주의적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국격이 달라졌습니다. 이번에 일본 천왕 즉위식에 총리가 다녀왔는데 저는 대통령이 갔어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이 쫌스럽게 나온다면 우리는 더 통크게 보여줘야 합니다. 몽양이 1919년 적지 일본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쳤던 대담함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100년 전 대한민국이 아님을 확실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유 : 몽양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자 더불어 대표적인 체육인이셨습니다. 스포츠를 통해서 위축되었던 우리민족의 자존감을 살리고 전인적인 교육을 꾀하셨습니다. 체육인으로서 몽양을 생각할 때 기념관 운영에 있어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신지요?

 

윤 : 몽양은 독립·통일운동가였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스포츠맨이셨습니다. 축구, 야구 등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신체를 단련시켜야 한다고. 스포츠야 말로 좌우를 넘을 수 있습니다. 몽양 선생님은 해방 후에 초대 조선체육회 회장과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체육인으로서의 업적도 상당히 큰데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손기정 선수와 여운형 선생의 인연은 굉장히 깊습니다. 앞으로 손기정 마라톤대회처럼 몽양을 기념하는 체육행사나 학술대회를 통해 체육인으로서의 몽양을 재조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유 : 양평에 야구 동호회가 많은데 몽양 선생님이 야구 보급에 힘쓰셨다는 것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기가 그랬지만 현재도 여전히 청년들이 암울합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비정규직이라는 불평등을 겪고 있고요. 몽양 선생님이었더라면 오늘의 청년들에게 어떤 위로나 격려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윤 : 몽양 선생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할 때나 해방 후 통일정부수립을 할 때나 미래의 주역인 청년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힘썼고 이들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경쟁도 너무 심하고 계층에 따른 장벽도 높습니다. 하지만 여운형 선생이 계신다면 오늘날의 청년들에게도 일제강점기 청년들에 하셨듯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장래의 세계는 청년의 세계다’, ‘나는 청년은 내 남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무릇 청년은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 불가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유 : 양평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기념관을 통해 특히 계획하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윤 : 양평은 정말 산과 물이 좋습니다. 몽양기념관에 매주 2~3회 오면서 저 스스로 수양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념관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선 몽양의 정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작업을 하면서 지역 속에서 몽양 정신을 확산시키는 센터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와 같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며 기념관이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방안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요즘 경기도교육청에서 경기도 8개 지역으로 교장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특별강연회를 다니고 있는데 몽양 기념관 팜플렛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교장들에게 배부하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초중고 학생들에게 몽양을 각별히 알리고, 관람객을 많이 유치하고자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몽양은 남북을 뛰어넘는 통일된 나라를 지향하셨습니다. 이러한 몽양의 정신을 가진 청년들을 육성하기 위한 ‘여운형 청년 평화센터’ 건립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얼마 전 안민석 국회의원도 다녀갔는데 이러한 내용의 브리핑을 했습니다.

그리고 몽양에 대한 자료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데, 현재 기념관에는 일부만 있습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에 산재되어 있는 국외 연구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모아서 자료전집을 발간을 비롯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한데 양평군뿐만 아니라 경기도, 중앙정부에도 많은 지원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국 수준의 기념관으로 알려지고 제대로 된 교육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 : 네, 앞으로 우리 지역의 몽양기념관을 통해 몽양정신을 이어받는 청년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라 정말 큰 기대가 됩니다. 오늘 유익한 시간 내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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