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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잔인한 내림-遺傳 공동체 상영 모집

 

 

역사적 상흔의 내림, 사회적 시선의 내림,
질병과 가난의 내림, 무감한 일상의 내림.
그 잔인한 내림을 막는 것이 원폭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탈핵의 시대로 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 '잔인한내림-遺傳' 연출 의도 中
 
 
 
한국원폭2세환우들의 눈물로 엮어낸 삶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잔인한내림-遺傳' 공동체 상영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김환태 감독님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인디톡톡 - 인류를 향한 뜨거운 메시지! 영화 <잔인한 내림 - 遺傳>의 김환태 감독.

원폭 피해자 2세의 삶과 아픔을 다룬 영화, <잔인한 내림 - 遺傳>
그들의 현실은 차갑고 시린 겨울바람과 닮아있었다. 과연 그 끝은 어디에 있을까?
잔인한 내림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대한민국. 우린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가?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우리’를 위해 탈핵의 시대를 바라는 김환태 감독.
이 땅의 평화를 소망하는 그를 만나 나 역시 평화를 꿈꾸게 되었다.

Q.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독님께서 직접 감독님을 소개해주신다면?
김환태 (이하 김)│다큐이야기라는 공간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김환태라고 합니다.

Q. 영화는 언제, 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으셨던 건지?
김│영상을 통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다큐멘터리 작업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98년도 말부터 영상작업을 시작했고요. 다큐이야기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세상과 말 걸기를 하는 것들이 제가 젊었을 때 꿈꾸던 것과 일치하는 것 같아요.

Q. 평화나 소수자 인권 문제를 안고 계시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관심이 생긴 건지 궁금합니다.
김│91년도에 ‘5월 투쟁’이라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10년 되는 해가 2001년도였어요. 그때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다니던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고요. 그런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가 2002년도에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처음 만나게 됐어요. 그 친구들을 만나고 제가 많이 변했죠. 평화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고민들을 하게 됐고요. 그 친구들하고는 여전히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그런 작업의 연장 속에 있다 보니 원폭 피해자 분들도 알게 되고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평화 문제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된 것 같아요.

Q. <잔인한 내림 - 遺傳>이 이번 국내신작전 섹션에 올라왔는데요, <잔인한 내림 - 遺傳>은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되셨나요?
김│2005년도가 1945년,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지 60년이 되던 해였어요. 그때 한국에선 광복 60년 행사를 많이 했거든요.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걸로 생각해보면 원자폭탄으로 인해 한국이 해방됐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원자폭탄으로 인해 피해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던 거죠. 그러다 2005년도에 그런 피해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고 피해자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원폭 60년, 그리고> 라는 작품을 했었어요. 그 이후에도 그분들을 만나오는 과정들이 있었죠. 7년 정도 계속 만나면서 찍고 쌓아왔던 것들이 있었고 그렇게 하다가 작년 2012년에 합천에서 <비핵•평화대회>를 하게 됐는데 그때 조그만 영상물을 상영했으면 좋겠다 라는 이야길 들었어요. 그때 그 영상물과 함께 한국원폭2세환우회의 한정순 회장님의 삶을 담아내면 의미가 있겠다 생각해서 만들게 됐어요.

Q. <잔인한 내림 - 遺傳>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부끄럽지만 처음엔 신내림? 같은 것을 말하는 영화인가 싶었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잔인한 내림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정곡을 찌르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지으신 건가요? 어떻게 생각하게 되신 거예요?
김│제가 지었습니다. 내림이라는 단어가 저한테 어느 순간 딱 다가왔었는데요, 유전이라는 것을 사실 일본과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원폭 2세 환우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까 유전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아픈 모습을 보니까 제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요. 그래서 유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그분들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관심을 가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잔인하다는 말을 굳이 붙였던 것은, 사실 이 표현 때문에 볼 사람도 안 볼 거라는 얘길 들었거든요. 너무 제목자체가 세서. (웃음) 그럼에도 붙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원폭이라는 피해가 진짜 13~14대까지 계속 유전될 수도 있다고 하고, 한 대에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걸러서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하니까 답이 없어보이더라고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제목을 골랐어요.

Q. 영화 속 내레이션은 감독님의 목소리이신가요? 내레이션을 사용하신 이유와 감독님께서 직접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한정순 회장님과 제가 번갈아가면서 얘기하려고 했고요. 회장님은 본인의 상황을 얘기하는 상태로 풀어가려고 했고 전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했습니다. 제 목소리 안 같나요? 목소리를 너무 깔아서... (웃음) 핵에 대한 문제나, 이 문제가 어떤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지 찾아가다보니까 제 시선으로도 같이 넓혀서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시선으로 보는 얘기도 담아냈죠.

Q. 일종의 다큐멘터리임에도, 시간의 나열이기 보다는 한 장면, 한 장면이 굉장히 세련돼 보였어요. 간간히 깔리는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재미위주의 영화가 아님에도 재미있게 구성이 잘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루하고 교육적이기만 할 것이라는 다큐멘터리의 선입견이 깨진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추구하는, 이를테면 감독님의 스타일일까요?
김│좋게 봐주셔서 고맙고요. 스타일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변화해가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게 잘됐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는 지루하지 않게 갔으면 좋겠다, 지루하지 않은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그건 다 스타일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음...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제 느낌대로 갔던 것 같아요. 몰입할 수 있게 여러 장치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촬영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들고 찍거나 이런 것보다는 이미지도 찍고, 이미지에 대한 것도 많이 주고. 트라이포드를 내려놓고 찍자는 생각도 했었고요. 예전엔 사실 현장이나 이런 것들을 중시하기 때문에, 들고 많이 팔로우하고 그랬는데 이번엔 그런 걸 조금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Q. 핵, 원폭피해... 이 부분에 대해 대부분이 냉담한 것이 현실이고 사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난 후에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갑갑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탈핵에 공감하게 되어버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감독님께서 저와 같은 관객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김│전 사실 원폭 피해 2세 환우 분들을 만나면서, 이 문제는 잘 안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게 과연 쉽게 풀릴까? 예를 들어 이 분들이 영화에서도 얘기하지만, 드러내는 것 자체가 힘들거든요. 내가 원폭 피해자 2세라고 애기하는 순간 사회적인 시선이 안 좋아지는 게 사실이니까요. 원폭 피해자 2세라고 얘기하고, 그것이 유전된다고 얘기하면 얼마만큼 동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을 못하겠어요. 어려운 문제이고 힘들어요. 잘 안 풀릴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너무 갑갑한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에 대한 생각은 두 가지예요. 일단 원폭 피해자분들을 국가에서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국가에서 아픈 2세 분들에게 치료비를 줘서 책임져야 하는 건 명확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핵문제, 원자력문제 또한 국가적인 문제인데 정책을 바꿔야 해요. 대체에너지, 재생에너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탈핵으로 정책 자체를 바꿔야한다고 생각하고요. 일반 사람들은 에너지에 대한 고민자체를 바꿔야할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사소한 건데, 과잉되고 있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실천들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 속에서 이것을 성장한 야만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Q. 그럼에도 원자력 개발을 찬성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사실 원자력을 개발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어요. 그 위험성에 대한 것을 망각하고 사는 거죠. 내 주변에서 그것으로 인해 피해 받은 분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못할 것 같아요. 전 당장 없애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전문적으로 얘기할 순 없지만 재생에너지나 대체에너지를 어떤 식으로든 개발한다면 그것은 가능성 있는 이야기예요. 원자력 개발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이나 폐해에 대해 귀닫고 있는 거겠죠. 이 문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만 공감하게 되면 그런 얘긴 정말 못할 것 같아요.

Q. 2012년 10월 경 시사회를 통해 영화 상영이 시작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감동적으로 봤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몰랐던 걸 알았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걱정해주시는 분도 있었어요. 사투리가 많이 있어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자막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분도 있었고요. 다양하게 만나봤어요. 이제부터 시작이라 많은 분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해요.

Q. 한정순 회장님 이하 출연하셨던 분들도 영화를 보셨을 텐데 그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그분들은 우시더라고요. 시사회 했을 때, 영화 끝나고 나와서 우시는데 가슴이 아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 것 같아서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낸 것 같긴 하지만 이 문제가 과연 잘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이 많아서... 답답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것 같아요.
Q. 촬영하면서 가장 힘드셨던 점을 꼽으신다면?
김│사실 제가 이 작품을 만들면서 100% 만족하진 못했어요. 원폭 피해자 2세 환우 분들을 좀 더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좀 더 많은 분들을 만나서 더 많은 얘길 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는데 시간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문제가 있었어요. 한정순 회장님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그분에 대해 깊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좀 더 많은 분들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제가 알지 못 하는 다양한 층의 2세 환우 분들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Q. 아픔을 갖고 있는 영화라, 조금 모순되는 질문일 수 있지만, 촬영하면서 그래도 행복했다 싶으셨던 적이 있었나요?
김│환우 분들을 위해 제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어요.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그런 측면인 것 같은데, 사회에서 여전히 소외받고 아픔가지고 있는 분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관객과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매개역할을 한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Q. 김환태 감독님이 꿈꾸는 세상이 궁금합니다.
김│(웃음) 무슨 꿈을 꾸시나요?
데일리팀 정란진│(당황+부끄) 전 그냥 크게 말해서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김│저도 그래요. 행복에 대한 관심들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할 수도 있고 잘 먹고 잘 살아서 행복할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행복의 가치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전 적어도 제 일상이 평화로웠으면 좋겠어요. 일상이 평화롭다라는 의미는 내가 생활하고 고민하는 삶속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그게 일상의 평화인 것 같아요. 누구는 아프고 힘들게 살아가는데, 누구는 아무런 아픔 없이 정말 잘 먹고 잘 살아간다면 그것은 모순되는 현실인 것 같거든요. 그걸 마냥 나쁘게 말할 순 없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김│인디다큐페스티발이 잘 돼야 하는데요. 제가 인디다큐페스티발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 영화제가 2001년도에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 제가 처음 만들었던 작품이 첫 상영을 했거든요. 그래서 저한텐 고마운 영화제라고 많이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저도 약 2년 전 쯤까지는 이 영화제에서 일도하고 그랬었어요. 제가 받은 것만큼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점점 잘 되고 있어서 상영관도 늘었다고 하지만 막상 그 속엔 힘든 것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안정됐으면 좋겠고 계속 지속되고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초심 잃지 않고 예전에 했던 생각들을 지켜가면서 다큐를 만들어갔으면 좋겠고요. 인터뷰 하시는 자원 활동가 분도 뜻하시는 모든 꿈을 이루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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