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심상정 대표, 고(故) 김대중 대통령 서거 6주기를 맞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6주기를 맞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했지만, 온통 경고음이고 곳곳에 빨간불입니다. 그래서인지 김대중 대통령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이었나를 새삼 깨닫습니다.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얼마 전 비무장지대 지뢰폭발 사건에서 보듯 물리적 충돌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장병들과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 받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후퇴도 뚜렷합니다. 국가정보기관이 불법 프로그램으로 국민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자행된 불법적 선거개입으로 그 수장이 재판을 받는 와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정보기관을 비롯해 공권력의 정치개입과 인권침해는 민주사회와 양립될 수 없는 군사독재의 유물입니다. 민생은 어렵다 못해 절망스럽습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팍팍하다 못해 말라 갑니다. 죽도록 일한 결과가 그렇습니다. 청년들은 아예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해 절망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와 인권, 민생경제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일평생 싸워왔던 과제였습니다.
투옥, 연금, 망명으로 점철된 고인의 삶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에 직면했지만 결코 독재정권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는 정치인 김대중이나 소속 정당의 정치적 승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한국이 민주화 이행을 최종적으로 완료했다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 사건입니다. 인권 향상과 증진을 위한 노력 역시 재임기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 뒤늦게나마 억울한 죽음들을 위로했습니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합법화 했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부를 설치했습니다. 또 재임 중 사형집행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민족화해에 대한 고인의 집념이 없었다면 한반도 냉전구도의 해체는 한참 늦춰졌을 것입니다. 고인은 일찍부터 3단계 통일 반안 등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그 산물이 바로 분단 반세기 만에 이뤄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었습니다. 2000년 6월 역사적 만남은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은 대사건이었습니다. 고인이 받은 노벨상은 이런 노력에 대해 세계 시민사회가 보내는 경의와 감사였습니다.
민생경제에 대한 관심과 깊이도 남달랐습니다. 고인은 일찍부터 서민과 소외계층을 경제의 중심에 두는 대중경제론을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중경제론은 정부출범과 함께 했던 IMF 위기로 제대로 실천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4대보험실시 등 사회 안정망 확충을 추진해 향후 복지 사회로 가는 초석을 놓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대의 거인(巨人) 김대중을 생각하다 보면 자주 잊는 사실이지만, 그는 정치일생 대부분을 소수파로 지냈습니다. 고인이 발 딛고 있는 정치적 토양은 무척 척박했습니다. 군사독재정권으로 부터 ‘빨갱이’ ‘좌파’로 매도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과 박해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고난과 역결을 불굴의 의지로 극복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업적과 성취는 그래서 더욱 값진 것입니다.
오늘 정의당은 압력단체의 시대를 끝내고 교섭단체의 시대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 앞으로 가야한다”는 고인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국민과 함께, 반 발짝 앞서가기. 오늘 진보정치와 정의당이 새겨야 할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 민생경제,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정의당에 맡겨진 몫을 다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2015년 8월 18일
정의당 대표 심 상 정